2025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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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위로와 격려의 말 건네기

오현철 신부(예수회, 이주노동자지원센터 김포이웃살이 의료·복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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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들을 무작정 불쌍한 이들로 사람들에게 전달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우리가 어떻게 소개하느냐에 따라 듣는 이들도 그에 맞춰 그들에게 다가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봉사자들에게도 이주민들과 만날 때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품되, 덮어놓고 불쌍하게만 바라보지 말아 달라고 당부드리곤 한다.

특히 이주민들과 함께 병원을 동반해주시는 봉사자들에게는 이주민들이 아직 한국어가 서툴기 때문에 의사 선생님이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표정 관리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이주민분들이 봉사자님 얼굴만 바라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늘 잊지 말아달라”고 덧붙인다.

나는 어머니이신 교회가 나에게 맡겨준 사도직이 진정으로 위로의 사도직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얼마 전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희년을 상징하는 다섯 개의 성문 가운데 하나를 로마 소재 레비비아 교도소에서 두 번째로 개방하셨다는 소식을 뉴스로 접했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바로 전에도 그곳을 재방문하셔서 재소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저는 이런 장소에 들어갈 때마다 ‘왜 내가 아니라 저들이 갇혀있는가’ 스스로 묻습니다.”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말씀이었다. 단순히 “지난 과오를 뉘우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하세요”와 같은 훈계의 말씀이 아니셨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마음이 깨끗해져 주님을 알현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길이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을 때가 아닐까 싶다. 그리스어로 위로는 ‘파라클래시스(παρ?κλησις)’라고 하는데, “가까이(παρα)”라는 말과 “부르다(καλ?ω)”라는 말이 서로 결합하여 “곁에서 불러주는 자” 또는 “위로하는 자”를 의미한다고 한다. 놀랍게도 이는 성령(παρ?κλητος) 하느님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군가에게 기꺼이 자신의 곁을 내어주며 ‘위로’하고 ‘격려’하며,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행위는 매우 훌륭하고 거룩한 행동이라 할 수 있겠다.


오현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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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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