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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받는 성녀 키운 건, 가족의 신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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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은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1873~1897) 시성 100주년이다. 성인은 성 비오 10세 교황(1835~1914)이 ‘현대 최고의 성인’이라며 존경을 표하고, 성 마더 데레사(1910~1997)가 수도명을 그녀에게서 따오는 등 특별히 추앙받았다. 


그녀는 1925년 시복 2년 만에 시성된 뒤 선교의 수호성인이 됐다. 선종 100주기인 1997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1920~2005)은 여성으로서는 3번째로 성인을 교회 학자로 선포했다.


이렇게 위대한 성인을 키워낸 가정은 겉으로는 평범했지만 내적으로는 특별했다. 성인의 부모가 한 날 시성 됐고, 성인을 포함한 다섯 자매 모두 수녀회에 입회했기 때문이다. 특히 성가정을 이루는 데는 성 데레사의 부모인 성 루이 마르탱(1823~1894)과 성 젤리 마르탱(1831~1877) 부부의 역할이 컸다.


부부는 평신도로서 결혼 성소의 모범을 잘 보여준다. 사실 이들은 모두 수도 성소를 꿈꿨다. 그러나 하느님의 크신 계획 안에서 각각 거절당한 두 성인은 알랑송에서 만나 1858년 결혼한 뒤 자녀 모두를 주님께 바치겠다고 약속했고, 훗날 그 꿈을 이루었다.


성 마르탱 부부는 서로에게 신앙의 힘이 됐다. 하느님에 대해 자주 대화하며 깊은 기도에 함께 잠겼다. 매일 새벽에 미사를 참례하고 성체 조배를 했으며 성지 방문과 자선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자녀 훈육에는 엄격했다. 바른 품행과 정리 정돈, 시간 엄수, 부지런함 등을 강조하며 나쁜 버릇을 교정했다. 자녀들은 부모가 몸소 행한 신앙의 모범과 교육을 자연스레 따르게 됐다.


성 데레사가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잃자, 아버지는 모성애까지 더해주려고 노력했다. 게다가 성 데레사가 요청한 ‘리지외의 맨발의 가르멜 수녀회’ 입회가 14세라는 어린 나이 때문에 거절당하자, 아버지는 교구 주교를 직접 찾아가 입회를 부탁했다. 이에 더해 그들은 레오 13세 교황(1810~1903) 알현 순례에 참가해 교황에게 직접 입회 허락을 청할 정도로 지극 정성을 보였다. 부녀 간의 극진한 사랑은 생애에 걸쳐 이어진다. 성 루이 마르탱이 노년을 요양원에서 보낼 때 성 데레사는 비록 수녀원에 있었지만, 그 마음은 극진했고 늘 아버지를 위해 기도했다.


성 마르탱 부부 시성식은 ‘교회와 현대 세계에서 가정의 소명과 사명’을 주제로 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기간 중인 2015년 10월 18일 열렸다. 프란치스코 교황(1936~2025)은 시성식에서 “이 성스러운 부부는 늘 가족을 위해 봉사하면서 신앙과 사랑의 환경을 창조했다”며 “바로 그것이 성 데레사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교회 역사상 최초로 동시에 시성된 부부는 결혼생활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됐다. 성 마르탱 부부의 축일도 그들의 결혼기념일인 7월 13일이며 프랑스 리지외성당에 함께 안장돼있다. 부부의 묘비명에는 성 데레사의 “하느님께서는 땅보다는 하늘만큼 값진 어머니와 아버지를 제게 주셨습니다”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들의 성가정을 본받고자 광주대교구 가톨릭목포성지 산정동성당 제대 좌우에 성 데레사와 성 마르탱 부부의 유해가 함께 안치돼있다.



박효주 기자 phj@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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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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