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14세 교황은 어머니 밀드레드 마르티네스와 아버지 루이스 마리우스 프레보스트 사이에서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래는 큰형 루이스 마르틴 프레보스트(맨 왼쪽)·작은형 존 조셉 프레보스트와 함께 찍은 사진. 존 조셉 프레보스트씨가 ABC뉴스에 제공했다. 출처=ABC뉴스
신심 깊은 부모의 삼형제 중 막내
레오 14세 교황은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친절하며 깊은 연민과 배려심을 지닌 인물로 알려져 있다. 동료 추기경들이 입을 모아 그에 대해 하는 말은 ‘Good listener’(잘 경청하는 사람)이다.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계 혈통으로, 20년 가까이 페루에서 사목하면서 ‘미국인이지만 미국적이지 않은 인물’로도 불린다. 그는 페루의 빈민가와 농촌 지역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며 교회의 사명을 몸소 체득한 선교사다.
레오 14세 교황은 1955년 9월 14일 시카고 브론즈빌의 한 병원에서 어머니 밀드레드 마르티네스와 아버지 루이스 마리우스 프레보스트 사이에서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스페인계 출신의 어머니는 도서관 사서였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혈통을 지닌 아버지는 일리노이주의 브룩우드 학군에서 교육감으로 근무했다.
교황은 시카고 남부 돌턴 지역에서 자라며 성모승천성당의 복사로 활동하며 신앙심을 키웠다. 교육자이자 교리교사로 봉사한 아버지와 요리 솜씨가 뛰어났던 어머니 덕분에 그의 집에는 사제들이 자주 찾아왔다고 외신은 전한다. 대학에서 도서관학을 전공한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성모승천성당 지하에 도서관을 세웠으며, ‘제대와 묵주회’ 회장을 맡고 성가대 단원으로도 봉사했다. 그의 어머니는 매일 미사에 참여했고, 제대와 성당·제의실 청소를 했다. 성모승천성당이 100주년을 맞았던 1986년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 책자에는 1982년 사제품을 받은 로버트 프레보스트 신부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만나는 사진이 실렸다. 이는 그의 가족이 얼마나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는지 보여준다.
미국 시카고 성모승천성당은 1986년 본당 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발간한 책자에 로버트 프레보스트 부제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만남을 기념하는 사진을 실었다.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시카고 착한 의견의 성모 관구 제공
어린 시절 ‘미사놀이’하며 사제의 꿈 키워
그의 형 존 프레보스트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동생은 5~6살 때부터 사제가 되리란 생각을 지녔던 것 같고, 이는 학창 시절 내내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며 “어린 시절 집에서 어머니의 다리미판 위에 식탁보를 깔면 우린 우리만의 미사에 참여했고, 그는 둥근 과자로 성찬례를 하곤 했다. 그의 모든 행위는 가족 안에서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고 전했다.
로버트 프레보스트는 미시간주 홀랜드 성 아우구스티노 소신학교(St. Augustine Seminary High School) 재학 시절, 학생회 서기 및 편집장으로도 활동했다. 이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빌라노바대학교에 진학해 수학을 전공했다. 빌라노바대학교는 1842년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가 설립한 대학이다. 1977년 졸업 후 그는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착한 의견의 성모 관구의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에 입회해 수련기를 시작했으며 1981년 종신서원을 했다.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총장 재임 시절,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만나 악수하고 있는 레오 14세 교황.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시카고 착한 의견의 성모 관구 제공
페루 선교사로 가난한 이들과 20년 동반
27세에 교황청립 성 토마스 아퀴나스 대학교에서 교회법을 전공한 후 1982년 6월 19일 로마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1984년 교회법 석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1985년부터 이듬해까지 페루 피우라 주 출루카나스에서 선교 활동을 했다. 이 시기는 프레보스트 신부가 페루와 깊은 연대를 맺는 계기가 됐다. 출루카나스는 페루 북서부 안데스 산지 인근의 가난한 농촌 지역으로, 그는 이곳에서의 경험이 선교 사목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정글과 산악지대·해안 지역을 두루 다니며 페루에 깊은 애정을 갖게 됐고, 2015년에는 페루 시민권도 취득했다.
1987년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에서 지역 장상의 역할’이란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그해 미국 일리노이주 올림피아 필즈에 있는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착한 의견의 성모 관구의 성소·선교 책임자로 선임됐다. 1988년에는 다시 페루로 파견돼 트루히요 선교지에서 출루카나스·이키토스·아푸리막 대목구의 수도회 지원자들을 공동으로 양성하는 책임자로 활동했다. 그는 10년 동안 공동체 장상·양성 책임자·서원자들의 교사로 활동하며, 성 가롤로와 성 마르첼로 대신학교에서 교회법학·교부학·윤리법학 교수로도 재직했다.
2024년 추기경 시절, 미국 일리노이주 뉴레녹스에 위치한 세인트 주드 성당에서 미사를 주례하기 위해 입당하고 있다.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시카고 착한 의견의 성모 관구 제공
2001~2013년 수도회 총장으로 봉사
1999년 시카고 착한 의견의 성모 관구장으로 선출된 뒤 2001년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총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2007년 총회에서 연임되어 총 12년 동안 수도회 총장으로 봉사했다. 그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가르침을 따라 하느님과의 깊은 관계를 추구하고 공동체 안에서 사랑과 일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2012년 수도회 총장 재임 중 바티칸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인간 경험에 대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통찰력에 대해 이같이 언급한 바 있다.
“오늘날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매우 피상적이거나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들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하느님을 경험하는 것은 자신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며, 진정한 행복의 경험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중략)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죠. ‘나는 하느님을 경험했기에 다른 일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그 사랑을 보여줘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가야 합니다. ‘나는 하느님을 경험했기에 다른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하느님을 진정으로 경험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테니스 애호가인 교황은 미국 프로야구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열렬한 팬이자 페루 축구클럽 ‘알리안사 리마’ 의 팬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어·프랑스어·스페인어·포르투갈어에 능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