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수도회 총장 재임 중 첫 사목방문한 레오 14세 교황이 인천 본원에서수련자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제공
레오 14세 교황은 2001년 수도회 총장으로 12년간 역임하면서 전 세계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회원들과 소통했다. 특히 한국 지부에는 2002년·2003년·2005년·2008년·2010년 5차례나 방문하면서 각별한 인연을 맺어왔다.
교황은 총장으로서 사목방문 및 총회, 아시아 태평양지역 수도회 모임 참석차 방한해 수도회 영성에 따른 방향성을 설정하는 등 한국 지부 성장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주로 인천 본원에 머무르면서 강화 신학원과 연천 분원도 방문했다. 연천에서는 5사단 관할인 열쇠전망대를 찾아 분단 상황의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조우형(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지부장) 신부는 “수도회가 열쇠부대 주일 미사를 나갈 당시 미사를 함께 봉헌하셨다”며 “기본적으로 한국 군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으시다”고 말했다.
교황은 수도회 영성을 심화시키면서도 경직되지 않은 유연한 모습으로 다가갔다. 한국 지부장에 평수사가 뽑히는 이례적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런 모습이 돋보였다. 김대호(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신부는 “행정적으로 성직수도회이기 때문에 관구는 물론 지부에서도 신부가 장이 돼야 한다”며 “하지만 당시 총장이었던 교황님은 교회법 전공자답게 평수사도 지부장을 할 수 있도록 현명하게 해결하셨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만약 그때 허용이 안 됐으면 우리에게도 상처로 남았을 것”이라며 “평소 성직자보다 수도자로서 정체성을 강조한 교황님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2010년 수도회 총장 재임 중 방한한 레오 14 교황이 한국 진출 25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제공
수도회 한국 진출 25주년 행사 참석차 방한한 2010년에는 최기산·이한택 주교와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선교사로서 한국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강남 봉은사도 찾았다. 익숙지 않은 좌식이었지만 스님들과 함께 바닥에서 차를 마시고, 능숙한 젓가락질로 국수를 먹는 등 한국 문화와 분위기에 맞췄다. 이동할 때엔 의전 차량을 마다하고 젊은 수사들과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레오 14세 교황을 수도자와 사제로서 가까이서 만났던 이들은 하나같이 겸손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간직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한국 지부 비서 장대건(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신부는 “지난해 비서 교육을 받기 위해 로마에 갔을 때, 당시 주교부 장관이셨던 교황님을 만났다”며 “무엇보다 수도회를 더 사랑할 것을 당부하면서 일일이 눈을 맞추고 사진도 찍어주셨다. 잠깐이었지만, 부드러우면서도 겸손한 모습이 강하게 남아있다”고 말했다.
레오 14세 교황이 수도회 총장 재임 시절인 2005년 아시아태평양지역 수도회협의회 모임에 참석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제공
방한 때마다 만난 김대호 신부는 “2003년 당시 부제로 총회 개·폐막 미사에 함께했는데, 총장님이 옆에 계시니까 떨려서 실수도 많이 했다”며 “그때마다 저에게 ‘괜찮아’ ‘천천히’ ‘편안하게’ 하라고 격려해주셨다”고 전했다. 또 “가방을 대신 들어주겠다고 하면 기어코 사양하시며 당신이 직접 다 챙기고 메고 다니셨다”면서 “상대를 배려하려는 자세가 몸에 밴 분”이라고 말했다.
2008년 호주 시드니 세계청년대회에도 당시 총장이었던 교황과 동행한 김 신부는 “남다른 친화력으로 모든 일정을 청년들과 함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침묵 속에 절제하는 모습을 잃지 않으셨다”며 “그런 중용(中庸)의 카리스마가 빛을 발휘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밝혔다.
토빗 11장 17절 그때에 토빗은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눈을 뜨게 해 주셨다는 사실을 그들 앞에서 밝혔다. 이어서 자기 아들 토비야의 아내인 사라에게 다가가 그를 축복하며 말하였다. “얘야, 잘 왔다. 얘야, 너를 우리에게 인도하여 주신 너의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빈다. 너의 아버지께서 복을 받으시고 내 아들 토비야도 복을 받고, 그리고 얘야, 너도 복을 받기를 빈다. 축복 속에 기뻐하며 네 집으로 어서 들어가거라. 얘야, 들어가거라.” 그날 니네베에 사는 유다인들도 모두 기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