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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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사진으로 봉헌한 부활의 빛

주님이 주신 재능과 은총으로기쁘게 봉사하며 살아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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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공허함 속에서 길을 잃은 듯한 나날을 보냈다. 한평생 쉼 없이 달려온 직장생활 뒤에 맞이한 자유는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이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라는 물음이 들기 시작한 2017년 어느 날 서울주보에서 눈을 사로잡는 한 광고를 보았다. ‘가톨릭 영 시니어 아카데미 교육생 모집, 대상 : 55세에서 67세 신중년’. 기타·사진·연극·글쓰기·하모니카 등 다채로운 분야가 소개되어 있었고, 특히 ‘사진’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꽂혔다.

오랜 기다림 끝에 하느님께서 내미신 또 하나의 기회처럼 느껴졌다. 본당 주임 신부님의 추천서를 받아 면접까지 보게 되었을 때 마치 젊은 시절 처음 사회에 발을 내딛던 순간처럼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면접을 마친 후 합격이라는 소식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선도 수련 중 허벅지 뼈가 부러져 철심을 박는 수술 끝에 목발을 짚는 신세가 되었다. 바쁘고 복잡한 출근 시간에 목발을 짚고 버스 계단을 오른다고 눈총을 받으면서도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까지 매주 빠지지 않고 수업에 참여했다. 오전에는 100여 명이 함께 영성과 인생의 지혜를 나누는 강의를 듣고, 오후에는 열댓 명이 모여 사진의 기초부터 현장 실습까지 하나하나 배워갔다. 처음엔 셔터를 누르는 일쯤이야 간단하다고 여겼지만, 점점 사진이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시선과 마음의 훈련임을 깨달았다.

2년간의 여정을 마치고 2020년 아카데미를 졸업하며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 1898 갤러리에서 첫 작품 전시회를 열었다. 그 후 ‘영 시니어 아카데미 사진연구회’에 가입해 일주일에 한 번씩 출사하고 강의를 들으며 지속해서 실력을 갈고닦았다. 가을마다 열리는 단체 전시에도 참여했고, 사진연구회 회장을 맡아 봉사의 기쁨도 누렸다. 나아가 상위 단체인 ‘가톨릭사진가회’에도 가입해 신앙 안에서 사진을 통한 소통과 나눔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올해 부활절을 앞두고 본당으로부터 뜻밖의 부탁을 받았다. 부활절 미사와 행사 사진을 촬영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개인 또는 단체로 출사만 다녔을 뿐 신앙 공동체 안에서 내가 배운 사진을 통해 봉사한 적은 없었다. 마침내 배움과 실천이 하나로 연결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촬영은 쉽지 않았다. 파스카 성야 미사 초반 성당 불이 모두 꺼지고 신자들이 촛불을 들고 입장하는 장면은 매우 성스러웠지만, 사진가로서는 어둠과의 싸움이었다. 플래시 하나 터뜨릴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카메라와 휴대폰을 번갈아들고 순간들을 포착했다. 처음 맡은 일이다 보니 어디까지 접근해도 되는지, 어느 각도에서 촬영해야 예의와 경건함을 해치지 않을지 조심스러웠다. 제대 앞을 에둘러 다니며 가능한 한 소리 없이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다행히 중요한 순간들을 무사히 담아내 본당 사무실에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베드로의 첫째 서간 4장 10절의 말씀을 떠올렸다. “저마다 받은 은사에 따라, 하느님의 다양한 은총의 훌륭한 관리자로서 서로를 위하여 봉사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내게 사진이라는 은사를 통해 새로운 길을 열어주신 것이 아닐까. 앞으로도 주님께서 허락하신 재능이 공동체에 유익하게 쓰이기를 바라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조용히 그러나 기쁘게 봉사하며 살아가고자 한다.


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4/29/qzD1745908093528.jpg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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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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