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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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한복판 이주민·난민들의 든든한 신앙의 집

[대구가톨릭근로자회관 설립 50년] 이주민들 모여드는 주일 풍경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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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가톨릭근로자회관 관장 이관홍 신부가 4월 13일 대안성당 마당에 필리핀 신자들이 모인 가운데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미사 전 성지 축복 예식을 거행하고 있다.

주일마다 수백여 명 모국어로 기도

다양한 국적·언어·문화 어우러져

통역 상담·의료·치유회복 등 지원

대구·경북 이주노동자 지원 허브 역할



대구시 중구 중앙대로에 위치한 대구가톨릭근로자회관(관장 이관홍 신부)에 들어서자, 다양한 언어가 뒤섞인 반가운 인사가 오간다. 회관 문턱만 넘었을 뿐인데, 외국에 온 듯 출신지가 각기 다른 이들 수백 명이 화기애애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회관 내 치과 진료실 앞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이들의 표정에 생기와 정감이 가득하다. 한국 사회에서 고향을 떠난 이방인으로 살아가지만, 이곳에서는 차별과 편견 없이 편안하다.

1975년 설립된 이래 반세기 동안 수많은 이주민과 난민·노숙인들의 안식처가 되어온 근로자회관이 지난 3월 19일 설립 50주년을 맞아 신축 건물을 봉헌하고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부활절을 한 달 앞두고 거행된 축복식은 마치 삶의 무게를 내려놓은 이들을 위한 ‘부활의 집’처럼 기쁨에 넘쳤다. 반세기 다양한 이웃과 함께해온 대구가톨릭근로자회관의 주일 풍경에 함께했다.

이관홍 신부 안내로 새 건물 기도실과 경당에 들어서자, 필리핀 성령쇄신팀 ‘엘샤다이’ 회원들이 키보드 반주에 맞춰 성가를 부르며 기도를 바치고 있다. 경당에서는 페루 공동체가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페루 공동체의 주일 미사는 볼리비아 선교를 다녀온 사제들이 돌아가면서 주례하는데, 이날은 연상모(대구가톨릭대 교수) 신부가 주례했다. 남미 문화에 익숙한 연 신부는 늦는 신자들을 여유롭게 기다린 후 미사를 시작했다. 한 주간 일터에서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하느님 앞에서 모국어로 기도했다. 이곳에서 이주민은 사목의 대상이 아니다. 스스로 공동체를 이끄는 신앙의 주체들이다.

대구가톨릭근로자회관은 1975년 오스트리아 출신의 고 박기홍(본명 요셉 플라츠, 1932~2004년) 몬시뇰이 설립했다. 1970년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된 박 몬시뇰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후원받아 가톨릭근로자회관을 지었다. 근로자회관은 설립 초기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열악환 환경에 처한 한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인권 보호와 권리 증진 교육에 집중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는 외국인 노동자가 늘면서 자연스럽게 이주사목이 시작됐다. 이후 1998년 IMF 외환위기로 거리로 내몰린 노숙인들을 위해 성 프란치스코 자활쉼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시대가 바뀌며 ‘소외된 이들의 얼굴’이 달라졌고, 회관 문턱을 넘는 이들도 한국인에서 이주민과 난민으로 바뀌었다. 근로자회관은 시대마다 소외된 이들의 버팀목이자 울타리가 돼줬다. 이주민들과의 동행 여정은 2023년 제35회 아산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필리핀 성령쇄신팀 ‘엘샤다이’ 회원들이 성가를 부르며 기도하고 있다. 
새로 지은 대구가톨릭근로자회관 치과 진료실에서 치과 의료 봉사자들이 이주민의 치아를 치료하고 있다.
 
대구가톨릭근로자회관에서 연상모 신부 주례로 페루 공동체의 주일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필리핀·베트남·동티모르·페루 등 다채로운 국적의 이주민들은 각자의 언어로 미사를 봉헌하며 신앙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근로자회관은 대구·경북 지역의 가장 큰 이주노동자 지원기관으로 허브 역할을 한다. 근로자회관 사제와 수도자·직원들은 주일마다 필리핀 공동체의 영어 미사가 봉헌되는 대안성당과 논공 경당, 베트남어 미사가 봉헌되는 대안성당, 중남미 공동체의 스페인어 미사, 현풍성당 대강당에서 봉헌되는 동티모르어 미사에 찾아가 함께 미사를 봉헌한다. 예비신자 교리를 통해 세례성사를 받고, 혼인성사로 성가정을 이루기도 한다. 신앙은 이주민들에게 단순한 종교를 넘어, 낯선 땅에서 정체성을 지켜내는 정신적 뿌리다.

베트남 공동체 회장 요셉 레 수언 브엉(38)씨는 “베트남 공동체는 800명이 넘는 젊은이가 하띤·꽝빈·응에안·북남 4개 지역 공동체로 나뉘어 활동하고 있다”며 “우리 베트남 공동체만을 위한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베트남 공동체는 매주 인근 성당을 빌려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근로자회관은 통·번역 상담 및 의료지원뿐 아니라 난민 여성 치유회복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가나·나이지리아 등 30여 개국에서 온 난민 40가정도 지원하고 있다. 경북대 의대 의료봉사동아리 ‘한빛’ 출신 의료진을 비롯한 의료 봉사자들은 치과와 내과 진료를 맡아 이주민들의 건강을 챙기고 있다.

필리핀 유학생 카렌(30)씨는 “비록 몸은 필리핀을 떠나 한국에 있지만 모국어로 신앙생활을 하며 신앙을 통해 외로움을 이겨내고 있다”고 말했다. 폴란드 출신의 마리안나(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수녀는 “이주민들이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시간을 내서 신앙 공동체를 이루는 모습을 보면 기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변에 이주민이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편견없이 늘 깨어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원 계좌 : 068-10-000727, iM뱅크, (재)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대구가톨릭근로자회관 관장 이관홍 신부 인터뷰


“이주민·난민의 간절한 신앙, 큰 힘이자 위로”

“차별·편견 넘어 환대의 문 열어줬으면”

 
 대구가톨릭근로자회관 관장 이관홍 신부는 2011년부터 이주민과 난민들의 벗으로 살아왔다.



“이주민과 난민들의 간절한 신앙은 사제인 저에게도 큰 힘이 됩니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기에 하느님을 더 간절히 찾고 신앙 안에서 깊은 위로를 받습니다.”

대구가톨릭근로자회관 관장 이관홍 신부는 한국 교회에서 가장 오래 이주민과 난민 곁에 머물러 온 이주사목 사제다. 이 신부가 이들과 인연을 맺은 건 2003년 군 제대 후 근로자회관에서 필리핀 공동체의 영어 미사에 참여하면서부터다. 2008년부터 3년간 필리핀 예수회가 운영하는 로욜라 신학대학에서 이주신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10년 전부터 수도권에 집중됐던 이주민들의 ‘남하’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공장과 농장이 함께 있는 도농복합형 일자리가 많은 대구 지역에 이주민들이 많습니다.”

2011년 포항·경주 지역에서 이주사목을 시작한 이 신부는 2015년 근로자회관 부관장을 거쳐 2017년부터 관장을 맡고 있다. 그는 성당과 고해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출입국관리사무소·병원·경찰서·공항을 수없이 오갔다. 이주민과 난민들의 삶으로 걸어 들어가 삶의 현 장에서 동고동락했다. 급성백혈병이 걸린 이주 여성을 필리핀까지 데려다 준 일도 있다. 체불 임금과 퇴직금 문제를 호소하는 이주 근로자의 고용주와 통화하는 일은 숱하다. 출입국 관리사무소 직원의 감시를 받으며 양손이 포승줄에 묶인 채 자신의 나라로 추방되는 이주민을 공항까지 배웅한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러나 이주민을 향한 한국 사회와 교회 안에서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차별과 편견에 공통 분모를 둔 이야기들이다.

“이주 노동자의 임금이 올랐다고 왜 도와줘야 하느냐, 한국에서 몇 년 일하면 본국에서 재벌이 된다더라, 왜 국내 이주민 공동체는 독립하지 못하느냐는 말들을 종종 듣습니다. 하지만 이주민들은 대부분 본국에 있는 대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있고, 체류조차 불안정한 상태에서 살아갑니다.”

이주민 공동체를 위한 미사 장소를 빌리는 일조차 쉽지 않다. “이주민들이 다녀가면 냄새가 난다, 화장실이 지저분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참 마음이 아픕니다. 이주민들은 전기세와 수도세를 내고, 청소까지 하고 가는데도 민감하게 반응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이 신부는 “그들이 한국 사회 안에서 신앙생활만큼은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환대의 문을 조금만 열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금 대구가톨릭근로자회관의 주인은 이주민과 난민, 노숙인들입니다. 제가 주인이 아니에요. 주인 행세를 해서도 안 되고요.”

언제나 이주민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하고 웃는 그의 모습이 그 어떤 손님보다도 겸손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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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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