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예술영화 전용 극장에서 찰리 채플린 주연의 ‘시티 라이트(city lights, 1931)’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가난한 떠돌이 주인공이 거리에서 꽃을 파는 눈먼 소녀를 우연히 만난 후 그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병원비를 마련할 목적으로 고군분투하는 내용의 흑백 무성영화였다.
눈먼 소녀는 그의 도움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고 가난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 주인공을 결국에는 알아본다는 내용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를 알아본 소녀를 향한 찰리 채플린의 수줍은 미소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다.
영화 제목 ‘시티 라이트’는 밤의 어둠을 밝히는 도시 가로등을 의미하지만,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따뜻한 빛은 결국 가난한 떠돌이 주인공이었음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깨닫게 된다. 도시의 가로등은 어둠을 밝혀 사람들에게 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혹시 있을 주변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해준다.
역사적으로 최초의 가로등은 로마 시대에 공공장소와 주요 도로에 설치되었던 횃불이다. 18세기에 이르러 런던·파리·암스테르담 등 유럽의 주요 도시에는 고래기름을 사용한 가로등이 도시의 밤을 밝혔으며, 1807년에는 런던의 팔 몰(Pall Mall) 거리에 세계 최초의 가스등이 설치되어 19세기 초까지 밤거리를 밝혔다.
에디슨의 백열전구 발명 이후 1878년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는 세계 최초의 전기 가로등이 설치되었다. 전기를 이용한 가로등은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으며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지금은 백열전구 대신 LED가 가로등에 사용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가로등 불빛은 노란색이 많이 사용되었다. 노란색 빛은 나트륨 가스를 방전시켜 빛을 내는 나트륨등에서 발생한다. 빨간색 다음으로 파장이 길어 멀리까지 빛이 전달되므로 안개나 스모그·먼지가 많은 기상 상황에서도 눈에 잘 띄는 장점이 있다. 자동차의 안개등이나 방향 지시등이 노란색인 것도 그 때문이다.
물체의 색을 잘 식별하게 해주는 백색등과 달리 노란색 가로등 빛의 단점은 물체의 색 구별이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야간 운전 시 반대편에서 오는 차의 색깔보다는 안전을 위해 차의 크기와 모양만 확인하면 되므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요즘은 전력 소모가 적은 백색 LED 등으로 교체되고 있다. 2025년 5월 8일 콘클라베에서 선출된 새 교황 레오 14세는 9일 첫 미사에서 강론을 통해 “교회가 이 세상의 어두운 밤을 밝힐 수 있길 바란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아직 세상에는 가난과 굶주림, 빈부격차, 인권 문제, 전쟁, 각종 범죄 등 어둠이 많이 존재한다. 새 교황의 메시지처럼 가톨릭교회가 그러한 어둠을 몰아내고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기를, 세상의 시티 라이트가 되기를 소망한다. 또 가톨릭 신자 한 명 한 명이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도록, 교회가 밝힌 빛이 꺼지지 않게 하는 광원(光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4-16)
전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