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오스트리아의 칼 란트슈타이너는 서로 다른 환자들의 혈액을 섞었을 때 일어나는 응집반응을 통해 사람의 혈액을 A형·B형·C형(현재는 O형) 세 가지로 구분했다. 그 후 1902년 AB형이 추가되면서 지금의 ABO식 혈액형 분류법이 완성되었다. 혈액형을 판정하는 방법은 적혈구 표면의 응집원과 혈액의 액체 성분(혈장) 속의 응집소가 결합해 적혈구가 엉겨붙는 응집반응을 이용한다. 과거 17세기 의사들은 동물의 피를 사람에게 수혈하려고 시도했으나,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인간의 혈액이 한 종류가 아니라는 것과, 동물과 인간의 혈액은 다르다는 의학적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ABO식 혈액형 판정법 발견으로 같은 혈액형끼리 수혈이 가능해지면서 특히 제1차 세계대전 때 많은 군인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으며 란트슈타이너는 이러한 공로로 193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혈액형을 판정하는 방법은 ABO식 혈액형뿐 아니라 Rh식 혈액형, MN식 혈액형 등 무려 31가지 방법이 있다. 혈액형은 국가별·인종별 차이를 보이는데 우리나라 국민의 경우 A형(34)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은 O형(28)·B형(27)·AB형(11) 순이다.
중국은 전 국민의 48가 O형이며 미국의 경우 백인의 45, 흑인의 49가 O형이고 프랑스와 러시아는 A형이 가장 많다. 특이한 것은 페루 원주민인 인디오들의 혈액형은 거의 100 O형이라는 점이다. 마야인의 O형 비율도 98나 된다. 이는 유전적 요인과 그들이 겪은 가슴 아픈 역사적 배경의 결과로 분석되고 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15세기 무렵 아메리카에는 당시 세계 인구의 10나 되는 6000만 명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유럽 정복자들의 잔혹한 식민통치로 아메리카 원주민 인구는 500~600만 명으로 감소하는데 페루나 마야의 경우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퍼진 전염병이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된다. 천연두나 홍역 같은 유럽의 질병에 면역력이 없던 원주민들이 속수무책으로 감염되어 치명적 피해를 본 것이다.
특이한 점은 O형은 다른 혈액형에 비해 면역력이 다소 우세하여 이들 질병에서 생존율이 높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페루와 마야 원주민들의 혈액형이 O형 한 가지인 이유가 나름 설명되는 부분이다. 페루 원주민들은 긴 식민지배의 결과 아직도 가난과 저개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출신으로 페루 시민권자인 레오 14세 교황은 그곳 빈민가에서 20년간이나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했다. 그들과 함께하면서 사회 정의와 환경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진 교황은 현지인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가난이란 먹을 것, 입을 것, 쉴 곳이 부족한 상태다. 그러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돕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참 신앙인의 자세다. 또 가난은 다른 의미로 불필요한 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마음에서 물욕(物慾)을 비우고 검소한 삶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인이 추구해야 할 자세일 것이다.
가난한 이들의 사도로 활동한 레오 14세 교황을 떠올려보며 그리스도께서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라고 말씀하신 산상설교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전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