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행궁 건너편에 자리한 작은 성당.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시끌벅적한 화성행궁과 달리 아담하고 소박한 북수동성당은 고요하기만 하다. 일제 치하 암흑기와 해방, 6·25전쟁 등 격동기를 거치며 신자들의 피와 땀, 눈물과 굶주림을 보듬으며 세월을 함께한 북수동성당은 오랫동안 수원 지역 신자들의 신앙을 묵묵히 지켜주고 있다.
수원의 어머니 성당
올해로 설립 102주년이 된 북수동성당은 1923년 11월 23일 수원성당에서 출발했다. 설립 당시 성당 터를 잡을 때 천주교인들이 체포돼 심문을 받고 형이 집행됐던 토포청(중영) 자리로 정했다. 성당 건물이 지어진 것은 9년 뒤인 1932년이다. 4대 주임 폴리 데지레 신부가 고국 프랑스에서 건축비를 마련해 수원 지역 최초의 고딕식 성당을 지었다.
고딕식인 옛 성당의 규모는 247㎡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400명에 불과했다. 신자 수가 점차 증가하자 성당은 1979년 지금의 건물로 신축됐다.
성당 입구에 들어서면 황토색 벽돌에 왕관 모양의 건물이 신자들을 맞는다. 주교관(主敎冠)을 본떠 설계한 성당은 흙색으로 지어져 위압감보다는 따뜻하게 신자들을 품어주는 느낌이다. 옛 성당 외벽에 쓰였던 파벽돌을 성전 안 마감재로 재사용했고, 주교관 모양의 끝에 걸린 십자가도 구 성전에서 가져왔다. 소박한 외관이지만 곳곳에 남아있는 100여 년 전 수원 지역 교회 역사의 흔적들은 과거와 현재의 신자들을 연결해 주고 있다.
피와 눈물의 역사는 성전 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제대 뒤 벽에 20위 하느님의 종 명패를 걸어놓고 기도하며 시복시성을 염원한다. 이 중 데지레 폴리(D?sir? Polly, 심응영 데시데라토) 신부, 유영근(兪榮根) 요한 세례자 신부, 장 콜랭(Jean Colin, 고일랑 요한) 신부 등 3명의 사제는 6·25전쟁 때 순교했다.
순교자의 흔적은 성전 밖 곳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성당 입구에서 신자들을 맞는 순교자 현양비는 열두 사도와 수원 순교자들을 상징하는 12개의 침목으로 만들어졌다. 수원화성 치성 구조인 ‘ㄷ’자 형으로 세워진 현양비는 순교자 믿음의 시작은 짧은 침목처럼 미약했지만, 주님 수난과 죽음, 부활을 체험하며 점차 크게 자란 것을 의미한다.
36대 주임이었던 나경환(시몬) 신부는 성당 마당에 야생화를 심어 성당을 도심 속 쉼터로 조성했다. 단풍나무와 느티나무, 조팝나무는 물론이고 야생화 800여 종을 심었다. 무명 순교자와 같은 낮은 자들의 순명과 순교를 보여주고자 야생화와 야생초를 심은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흙바닥이었던 운동장에 잔디를 심어 푸근하고 자연 친화적인 성당을 만들었다. 화성의 봉화대 모양으로 만들어진 묵주기도 길은 이색적인 기도 장소로 꼽힌다.
북수동성당 역사에서 데지레 폴리 신부는 빼놓을 수 없다. 1931년 당시 수원본당에 부임한 폴리 신부는 부인들로 구성된 명도회, 청년 신심단체 돈보스코회, 어린이 교리반을 만들어 전교에 박차를 가하면서 신자 수는 2600명으로 증가했고 관할 공소도 28개에 달했다. 그가 재임했던 시기는 일제 지배 하 암흑기였으나 선교와 교육, 성당 건축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된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들이 한글을 잊지 않도록 1934년 성당 옆에 소화강습소를 열어 아이들을 가르쳤다. 1946년 소화초등학교로 인가됐고 현재는 뽈리화랑으로 바뀌어 성당의 역사와 데지레 폴리 신부를 기억할 수 있는 장소로 거듭났다. 폴리 신부는 6·25전쟁 당시 인민군에게 체포돼 총살형으로 순교했고 성당은 그를 현양하고자 마당 한쪽에 기념비를 세웠다.
피로서 하느님 증거한 순교자들의 자취
수원 화성은 역사·문화적인 가치와 더불어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의 고귀한 넋이 배어있는 장소다. 화성은 박해가 시작되면서 신자들의 처형지가 됐다. 성내 수원 유수부가 한강 이남과 경기도 전역, 충청도 일부 지역까지 관할했는데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 일대에서 체포된 이들이 이곳으로 압송돼 취조와 고문을 받고 순교했다. 이에 수원교구는 2000년 북수동성당과 그 일대를 수원성지로 선포했다. 수원화성에 19개 정도의 순교지가 있다고 전해지나 현재까지 확인된 순교지는 토포청, 형옥, 팔달문 밖 장터, 장안문 밖 등이다.
수원성지는 앵베르 주교와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 김성우(안토니오)의 머리카락과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의 발뼈, 최경환(프란치스코)의 오른쪽 다리뼈 등 한국 순교성인 6위의 유해를 소장하고 있다.
북수동성당에서는 매일 오전 11시 수원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위한 순례미사가 봉헌되며 매주 목요일 미사 전 성체 현시와 미사 후 성체강복이 거행된다.
순교자들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기도하는 달빛순례도 매월 첫째 주 금요일 열린다. 성지에서 시작해 방화수류길을 따라 화홍문, 방화수류정, 장안문(북문), 북서포루, 사형 터, 이아(貳衙) 터를 거쳐 성지로 돌아오기까지 세 시간가량 이어지는 순례를 통해 신자들은 달빛 아래서 순교자들을 위해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