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아헨 대성당. 아헨교구 주교좌 성당으로 프라우엔키르헤, 카이저돔이라고도 부른다. 성당의 중심인 팔각형의 궁정 소성당(Pfalzkapelle, Palatine Chapel)은 카롤루스 대제가 아헨에 왕궁을 지으며 같이 지은 건물로 프랑크 왕국 시기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1978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 출범할 때 최초로 등재된 12개 유산 중 하나다.
유럽 국가의 역사를 쭉 거슬러 올라가면 한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흔히 샤를마뉴, 카를 대제라 불리는 카롤루스 마그누스입니다. 프랑스는 ‘프랑크 왕국의 위대한 왕’이라며, 독일은 ‘신성로마제국의 창시자’라며 역사책 앞을 장식합니다. 이탈리아도 마찬가집니다. 지금처럼 국가가 갈라지기 전 8세기의 인물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하지만 그가 실제로 왕국의 수도로 삼고 성당을 지어 말년을 보낸 도시는 단 한 곳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순례할 아헨입니다. 아헨은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에 있는 도시로, 독일·벨기에·네덜란드 세 나라 국경이 만나는 지점에 있습니다. 쾰른·리에주·마스트리흐트에서 1시간 이내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유럽 중심부의 교통 요충지이지요.
아헨 궁정 소성당의 주 제대와 제단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묘사한 11세기 초의 황금 제단 너머로 ‘성모 마리아 성물함’(Marienschrein)이 보인다. 그 뒤로 카롤루스 대제의 유해가 담긴 함도 모셔져 있는데, 카롤루스 대제를 중세에 성인으로 공경했기에 여느 성해함처럼 중시했다.
카롤루스 대제의 수도 온천 도시 아헨
아헨 중앙역에서 아헨 대성당으로 가는 길은 중세와 현대가 어우러져 있습니다. 도중에 웅장한 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온천수가 샘솟는 엘리제 분수입니다. 도심에 웬 온천이냐고요? 네, 아헨은 로마 시대부터 유명한 온천 도시였습니다. 로마인들은 이곳 온천수가 건강과 치유에 효과가 있다고 믿어 군사 병원과 목욕 시설을 갖춘 마을을 조성했습니다. 카롤루스가 아헨을 점찍었던 데엔 온천도 한몫했지요.
카롤루스 대제는 요충지에 일종의 행궁(行宮)인 왕궁 복합시설을 마련해놓고 일정 기간 옮겨 다니며 통치했습니다. 왕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는 궁정백(宮庭栢, Pfalzgraf)이 대신 그곳을 다스렸죠. 아헨도 그런 행궁이 있던 곳인데요, 카롤루스는 800년에 로마에서 레오 3세 교황에게서 황제관을 받은 뒤부터는 거의 아헨에 상주합니다.
카롤루스는 류머티즘이나 통풍 등 만성 질환에 시달렸기에 유황 성분이 함유된 온천이 건강에 매우 도움이 됐을 겁니다. 온천욕을 하면서 나랏일을 봤다는 기록도 있지요. 지금도 아헨은 지하에서 섭씨 70도에 달하는 온천수가 솟아나며, 시내에 온천 풀인 ‘카롤루스 테르멘’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때부터 사실상 아헨은 신성로마제국의 수도 기능을 하지요.
아기 예수님을 감싼 포대기(왼쪽 위), 은총 성모자상(오른쪽 위), 성모님의 옷(아래). 카롤루스 대제가 생전에 모은 성유물이다. 아헨 대성당은 카롤루스 대제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한 성당으로, 성모 마리아께 옷이나 기타 보석을 바치는 전통이 있다. 현재 성모상에 씌운 왕관은 1474년에 부르고뉴 요크 공작부인이 봉헌한 선물이다.
제국의 수도에 구현한 천상의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좁은 자갈길과 고딕풍의 석조건물들 사이로 장엄하게 솟은 아헨 대성당의 팔각 돔과 고딕 첨탑이 모습을 서서히 드러냅니다. 유학 초창기에 그 묵중한 성당을 처음 봤을 때 압도감이란! 아마도 돌만큼이나 깊은 역사와 믿음이 응축된 건물이어서 그렇게 느꼈나 봅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 위로 솟은 고딕 양식의 첨탑과 돔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건축에 관심 있는 이에게는 시간의 층위가 중첩된 좋은 교보재입니다.
카롤루스 대제는 아헨을 제국의 중심지이자 그리스도교 중심지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옛 로마 제국의 주교좌 도시나 수도원이 있던 다른 행궁 도시와 달리 아헨에는 이렇다 할 성당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8세기 말 궁을 지을 때 오늘날 아헨 대성당의 모태인 궁정 소성당(Pfalzkapelle)도 짓습니다. 그런데 콘스탄티노플의 산 비탈레 성당을 모방하지요. 아헨을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변모시키려는 것이었죠. 이를 위해 로마 교회 및 동방 비잔틴 세계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로마·콘스탄티노플·예루살렘 등지에서 수많은 성유물도 모아 궁정 소성당에 모십니다.
비잔틴 건축 양식과 고대 로마 양식이 혼합된 궁정 소성당의 천장 모자이크화(위)와 카를로스 대제의 왕좌(아래). 천장 모자이크화는 요한 묵시록에 등장하는 24명의 장로가 하느님을 찬미하는 장면으로 이곳이 천상과 지상이 만나는 곳임을 드러낸다. 카롤루스 왕좌는 예루살렘의 성묘성당에서 가져온 4개의 대리석 판으로 제작했다. 이곳에서 936년부터 1531년까지 무려 30명의 로마-독일왕이 대관식을 치렀다.
1632년 ‘아헨 성지순례’(위)와 2014년 ‘아헨 성지순례’ 중 독일 가톨릭 대학생연합회 야외미사.
7년마다 열리는 ‘아헨 성지순례’
대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중세 유럽에서 비잔틴 세계로 이동한 것 같습니다. 비잔틴 황실을 연상케 하는 금빛과 대리석 공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중앙에 8각형 구조의 궁정 소성당이 옛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위로는 높이 솟은 돔과 천장 모자이크가 순례자의 시선을 천국으로 이끕니다.
돔 공간을 지나 주 제대 뒤편 가대석으로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오른쪽 측면 제대에 중세부터 현재까지 신자들의 깊은 신심의 대상이 되어 온 ‘아헨의 은총 성모자상’이 보입니다. 제대 뒤에는 13세기에 제작된 고딕 양식의 ‘성모 마리아 성물함’이 보이는데, 그 황금 상자에 들어있는 성유물이 은총 성모자상과 함께 아헨을 유럽 최대 순례지 중 하나로 만든 결정적인 원천이었습니다. 성물함에는 성모 마리아가 입었던 옷, 아기 예수님을 쌌던 포대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둘렀던 허리천, 참수당한 세례자 성 요한의 머리를 감쌌던 수건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1349년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자, 아헨은 신자들의 희망을 북돋고자 성유물을 공개합니다. 바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아헨 성지순례’의 시작이었지요. 그 후 지금까지 7년마다 순례자들에게 성유물을 공개하고 있는데, 아헨 대성당은 중세 순례자들에게는 머나먼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꿈을 여기서 간접적으로 이루면서, 동시에 은총의 성모자상 앞에서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는 장소였지요.
신자석에 앉아 주변을 둘러봅니다. 서쪽 회랑에 돌로 만든 카롤루스 대제의 옥좌가 보입니다.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황제였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보잘것없는 이라며 아무런 장식도 하지 않고 돌로만 만들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성모님께 봉헌한 성당이기에, 1200년 넘게 일상의 위로와 희망을 주는 은총의 공간으로 뿌리내릴 수 있었을 겁니다. 어두운 터널을 나와 이제 새로운 출발선상에 섰습니다. 우리가 교만과 아집에서 벗어나 하느님 앞에 마음이 가난한 이가 될 수 있도록 성모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순례 팁>
※ 쾰른에서 기차로 35~50분, 브뤼셀에서 1시간 45분 소요. 아헨 중앙역에서 대성당까지 1.2km로 도보로 10분 소요. 가는 길에 엘리제 분수에서 온천수를 맛볼 수 있다.
※ 7년마다 열리는 ‘아헨 성지순례’의 다음 순례 일정은 2028년 6월 17일부터 25일까지다. 이때 성유물을 공개하고 성유물 거동 등 수많은 행사가 열린다.
※ 아헨 대성당 미사 시간 : 주일 및 대축일 8:00·10:00·11:45, 18:00, 월~토 7:00· 10:00. 매주 수·금 13:30에 나콜라우스 소성당에서 교회 일치 묵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