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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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 (32)그 많던 달팽이는 다 어디로 갔을까? (전성호 베르나르도, 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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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 비가 오는 날의 학교 건물 앞 넓은 화단은 어디서 왔는지 모를 달팽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있었다. 느릿느릿 움직이던 달팽이들은 짓궂은 남학생들에게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장난감 신세가 되었다. 교실 칠판에 달팽이 여러 마리를 붙여놓고 어떤 달팽이가 제일 먼저 높이 기어오르는지 내기를 하곤 했다. 그 후 세월이 흐르고 한참 동안 달팽이를 제대로 볼 기회도 여유도 없었는데, 얼마 전 비가 내리던 날 집 주변 화단에서 너무나 오랜만에 달팽이를 보았다. 그것도 한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씩이나! 너무 반가워서 우산을 쓰고 한참 동안 달팽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날따라 달팽이의 나선형 껍질은 음악 악보의 높은음자리표처럼 보였다. 하늘에서 직선으로 곧게 내려오는 빗줄기는 투명한 공간에 그려진 오선 악보였으며, 빗방울들은 오선 위의 음표가 되고 빗소리는 그대로 음악이 되었다. 자연이 만든 아름다운 화음과 풍경에 한동안 넋을 잃고 있었을 때 문득 고등학생 때 보았던 달팽이들이 생각났다. 느리지만 꾸준히 제 갈 길을 가던 달팽이들. 그 많던 달팽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달팽이는 뼈가 없는 연체동물로 배가 발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복족류(腹足類)다. 모든 생물은 자극에 반응한다. 동물은 자극을 받아들여 이에 적합한 반응이 나타나게 하는 신경계를 가지고 있으며, 신경계는 이를 구성하는 신경세포를 기본으로 한다. 신경세포에는 자극이 이동하는 축삭돌기가 말이집(신경 세포의 신경 돌기를 말아 싸고 있는 덮개)이라는 지질 성분으로 둘러싸인 말이집 신경(유수신경)과 말이집이 없는 민말이집 신경(무수신경)이 있다.

말이집 신경은 축삭돌기에서 도약전도라는 방식으로 자극을 이동시켜 그 속도가 매우 빠르다. 사람의 경우 말이집 신경을 통한 자극 전달 속도가 1초에 100m 정도이지만 달팽이의 신경은 신호 전달 속도가 매우 느린 민말이집 신경이라 1초에 1m 정도밖에 안 된다. 그만큼 외부 자극에 느리게 반응하고 움직인다.

느리지만 꾸준히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달팽이를 바라보며 그동안 나는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해져 급하게만 살아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패스트푸드, 총알 택시, 빠른 인터넷 속도, 신속한 음식배달 시스템, 저녁에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 도착을 보장하는 택배 서비스 등 우리 주변에는 ‘빨리빨리’를 최고로 인정하는 인식이 깔린 듯하다.

그러나 빠른 발걸음이든 느린 발걸음이든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달팽이가 껍질을 등에 지고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을 보며, 사람도 누구나 자신만의 소명을 달팽이 껍질처럼 또는 십자가처럼 등에 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그 소명은 개인에 따라 달라서 어떤 이에게는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버텨야 하는 무거운 껍질일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자발적인 책임과 희생·헌신을 바탕으로 기꺼이 짊어진 십자가일 수도 있다.

달팽이의 껍질과 몸이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내게 주어진 개인적 소명의 껍질을 등에 진 십자가로 여기고 기쁜 마음으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것처럼.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전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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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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