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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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믹스 커피의 무상성(無償性)

오현철 신부(예수회, 이주노동자지원센터 김포이웃살이 의료·복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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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믹스커피를 즐겨 마시고 있다. 그것도 어느 여배우가 광고하는 노란색이 입맛에 제일 맞았고 평소 그것만 마신다. 그런데 어느 새부턴가 사람들이 믹스커피 대신 원두커피를 찾기 시작하더니 나도 주변에서 믹스커피를 함께 마실 사람을 찾지 못하게 되었다.

센터에도 누군가 기증해주신 가정용 원두커피 기계가 하나 있다. 그런데 커피를 내려놓으면 이상하게도 우리 이주민들은 이것을 잘 마시지 않고, 믹스커피만 찾는다. 아마 공장에서 쉬는 시간에 마시는 커피가 그것이기 때문인 것 같다.

언젠가 외국인 한 명이 센터 2층에서 한국어를 배우다 쉬는 시간에 내려와 “선생님, 여기 믹스커피가 떨어졌는데요?”라고 채워놓으라는 듯 이야기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하면 사다놓을까 하다가 문득 다른 생각이 들어 이렇게 답했다. “아, 정말 믹스커피가 없네요. 그런데 가끔 부족할 때도 있고, 아예 없을 때도 있어요. 센터는 후원(나눔)으로 이뤄지는 곳이라서요.”

자신이 원하는 비자로 변경하기 위해 매주 한 번 쉬는 날임에도 나와서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는 그 외국인에게 이러한 설명이 얼마나 통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에게 나눔 정신을 애써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분은 평생 이곳을 그저 무료로 한국어를 배운 학원 정도로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 믹스커피도 센터에서 구매한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도움받은 이들이 뭐라도 감사함을 표시하고자 전해준 선물들이었다. 어떤 이는 무서운 사장님을 대신해 체불된 임금을 받게 해준 것에, 또 어떤 이는 구직기간 머물 곳 없던 중 쉼터를 제공받게 되어서, 또 어떤 이는 의료보험이 없어 막대한 병원비에 쩔쩔매던 중에 도움받게 되어 마음을 표현한 것들이다.

센터는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도와주고 도움받는 곳이 아니라, 후원과 나눔이 무상(無償)으로 상시 일어나는 곳임을 많은 사람이 알아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봉사가 무상으로 제공되더라도 나는 이런 봉사 앞에 무료란 말을 붙이길 싫어한다. 이 세상 모든 하느님 은총이 인간에게 ‘무상(Gratuità)’이라는 말은 반드시 그것이 많은 이에게 이기심에서 벗어나 주님께 대한 찬미와 순종, ‘감사하는 마음(Gratitudine)’을 불러일으킬 것이기에, 공짜(Free)라는 말과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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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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