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탁베르크 순례 성당은 해발 704m에 위치해 트라운 계곡이나 엥스 계곡, 심지어 맑은 날에는 60km 떨어진 린츠에서도 실루엣을 뚜렷이 볼 수 있어서 ‘눈에 보이는 순례지’로 유명하다. 출처=셔터스톡
존탁베르크 순례 성당 전경.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와 성 미카엘 대천사에게 봉헌된 성당으로 1964년 성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준대성전으로 지정됐다. 현재 자이텐슈테텐 베네딕도회 수도원의 수도자들이 순례 및 본당 사목을 펼치고 있다.
니더외스터라이히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연방주(聯邦州)로, 북쪽의 보헤미아 숲에서부터 도나우강 중류를 따라 남쪽 알프스 자락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중 남서쪽 구릉 지대는 배와 사과로 만든 발효 음료인 ‘모스트’ 산지로 유명하지요.
이 평화로운 전원 풍경의 한가운데,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두 개의 첨탑이 눈길을 끕니다. 해발 704m에 자리한 존탁베르크 순례 성당으로 맑은 날이면 린츠나 슈타이어 같은 도시에서도 실루엣이 보입니다. 아침에 운무를 뚫고 솟아오른 모습은 마치 천상의 성소처럼 보는 이의 마음을 끌어당기지요.
오스트리아에는 “존탁베르크가 눈에 보이는 한, 어디로 가야 할지 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독일어로 ‘존탁’은 ‘주일’을, ‘베르크’는 산을 뜻합니다. 바쁜 일상 중 주님의 날에 천상과 가까운 곳에서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쉬는 곳이란 의미가 깃든 이름입니다. 실제 이곳 마을 사람들에게는 수백 년 전부터 주일마다 이 언덕 위에 올라 미사를 함께 봉헌하는 전통이 있었고, 그 전통은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존탁베르크 순례 성당의 천장 프레스코화. 다니엘 그란이 1738년부터 1743년까지 그린 그림으로 본랑 천장은 성 미카엘 대천사와 교회의 승리, 제단 천장은 성부의 아담과 이브의 창조, 측랑 천장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성령의 강림, 돔 천장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공경을 묘사했다.
삼위일체 신심의 산 존탁베르크
예전에는 산 아랫마을에서 존탁베르크까지 4㎞ 오르막길을 한 시간 남짓 걸어서 올라갔습니다. 지금은 완만한 경사로에 길까지 잘 닦여 있고 차량이나 자전거로 순례할 수도 있기에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이곳에 찾아옵니다.
아름다운 전원 풍경 속 웅장한 바로크 양식의 성당에 다들 감탄하는데요. 이곳의 시작은 언덕 위의 조그만 돌이었습니다. 야곱의 사다리가 연상됩니다만, 양치기가 그 돌을 베고 쉬다가 꿈 속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을 뵈었다는 소문이 퍼집니다. 1440년에 여기서 15㎞ 떨어진 자이텐슈테텐 수도원의 베네딕토 1세 아빠스가 소성당을 세우면서 순례가 시작됩니다. 자이텐슈테텐 수도원은 1112년 세워진 베네딕도회 수도원으로 지금도 이곳을 포함해 교구 내 14개 본당을 맡아 사목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여느 순례처럼 그 중심에는 세상의 십자가에 짓눌린 이들의 간절한 마음이 있었고, 순례자의 발길도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1490년에는 성당을 후기 고딕 양식으로 증축했습니다. 그러나 종교 개혁은 수도원뿐 아니라 존탁베르크 순례에도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이곳이 개신교 지역이 되면서 아빠스가 개종하고, 지역 영주가 순례를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17세기에 이 지역이 다시 가톨릭으로 바뀌면서 수도원 중심으로 신심 활동 고양과 성당 건축이 시작되는데, 그 중심에는 존탁베르크가 있었습니다. 지역 공동체의 신심, 삼위일체 신비에 대한 믿음, 지리적 위치 등 여러 면에서 가톨릭 신심 부흥에 이상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이텐슈테텐 수도원은 이 언덕을 교리와 은총이 함께하는 삼위일체 신비의 학교로 만들었고, 그 모습은 지금의 순례 성당에서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존탁베르크 성당의 주제대. 멜키오르 헤펠레의 설계에 따라 1757년에 만들었다. 1614년에 제작한 삼위일체 기적을 상징하는 ‘은총의 권좌’(우측) 패널이 정중앙에 있다. 기둥의 12개 홈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한다.
천상의 학교 존탁베르크 순례 성당
곡선형 양파 모양의 지붕을 가진 3층의 종탑과 중앙에 큰 창문들이 있는 정면은 남부 독일과 오스트리아 지역의 전형적인 바로크 절정기 양식을 보여줍니다. 수도원의 후원을 받아 1706년부터 1732년까지 야콥 프란츠 프란트타우어와 요제프 무겐나스트가 지었는데, 이들은 멜크 수도원·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을 비롯해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수도원과 교회를 설계한 바로크 장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손을 거쳐 존탁베르크는 신비와 감동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공간으로 거듭났지요.
성당에 첫발을 들이면 장엄한 제단 공간과 화려한 천장 프레스코화가 방문자를 압도합니다. 제단 중앙에는 ‘은총의 권좌(sedes gratiae)’라고 불리는 삼위일체화가 보입니다. 이 패널은 1614년 개신교 세력이 성호석을 파괴할 것을 막기 위해 당시 아빠스가 삼위일체의 상징을 그려 돌에 부착해 놓았던 구리판입니다.
고개를 들어 올리면 성 미카엘 대천사와 교회의 승리와 삼위일체 공경을 주제로 한 천장 프레스코화가 펼쳐집니다. 존탁베르크 성당이 거룩한 삼위일체와 성 미카엘 대천사에게 봉헌된 성당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지요. 맑고 밝은 고음과 중후한 베이스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18세기 파이프 오르간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우리 영혼이 천상으로 고양되는 듯합니다.
튀르켄브루넨 소성당. 전승에 따르면, 1683년 오스만 제국군이 이곳을 지날 때 많은 사람이 성당으로 피신했는데, 이곳 샘에서 솟아난 물로 땅이 진흙탕이 되면서 기병들이 쳐들어오지 못해 무사했다고 한다. 1745년 샘 주변에 바로크 양식 소성당을 건축했다.
걸음의 미학 걸음의 신앙
지금까지 존탁베르크 순례를 이끌어 온 동력이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그 속의 웅장한 성당만은 아닐 겁니다. 그 밑바닥에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걸음의 신앙’이 있었습니다. 매년 이 언덕을 향해 뚜벅뚜벅 올라오는 순례자들이 있으며, 위기의 순간에 하느님께 봉헌했던 약속을 지키고자 단체로 순례하는 마을 공동체도 있습니다.
1683년 푸르크슈탈 마을은 오스만 제국의 위협 속에서 마을을 보호해달라고 기도하며 순례를 서약했는데, 그 후로 지금까지 성 미카엘·성 가브리엘·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에 공동체가 존탁베르크를 순례하지요. 성당에서 오스만 제국군의 침공에서 무사한 데에 대한 감사 표시로 300년 전 푸르크슈탈 시장 시민들이 봉헌한 성화도 볼 수 있습니다. 전에(2025년 1월 12일 자) 소개한 마리아첼 본당도 오는 6월 말 제346회 순례를 앞두고 있습니다. 마을 공동체가 깃발과 십자가를 앞세운 행렬을 이뤄 수십 ㎞를 도보로 이동하며, 길 위에서 공동체 정체성과 신앙을 재확인하지요.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신앙 체험, 일상의 한복판 하느님과의 만남이 이 언덕 위에서 이뤄집니다. 그래서 존탁베르크는 어쩌다 한 번 들르는 순례지가 아니라, 여러 번 되찾아 가고 언젠가 모두가 머물게 될 천상의 집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순례 팁>
※ 빈이나 잘츠부르크에서 자동차로 2시간. 기차 : 암슈테텐을 거쳐 존탁베르크 역까지 이동(1시간 30분), 그 후 성당까지 도보 순례하거나 택시 이용(4㎞). 가족 단위나 고령 순례자들도 걷기 쉬운 포장된 산길(1시간 10분 소요).
※ 성당 동쪽 숲 속의 튀르켄브루넨 소성당도 순례자가 꼭 방문하는 곳. 순례 성당 박물관에서 이곳 역사를 좀더 살펴볼 수 있다.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부터 10월 31일까지 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