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계란 프라이 모양의 개망초꽃이 벌써 한 해의 절반이 되었음을 알려준다. 자연의 시간은 어느덧 봄을 지나 여름으로 가고 있다. 퇴근길에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나를 우주로 이끈다.
2008년 2월 4일 NASA(미국항공우주국)의 제트 추진 연구소는 팝 그룹 비틀스의 노래 ‘Across the universe’를 지구에서 431광년 거리에 있는 북극성을 향해 보냈다. 이날은 NASA 설립 50주년 기념일인 동시에 비틀스가 이 곡을 녹음한 지 40주년 되는 날이기도 했다. 비틀스의 노래는 세 곳의 국제 우주탐사 안테나를 통해 빛의 속도와 가까운 초당 29만 7600㎞라는 엄청난 속도로 전파를 타고 우주로 날아갔다. 비틀스의 노래가 지구를 출발한 지 올해로 17년이 되었으니 약 414년 후에는 노래 제목처럼 우주 공간을 가로질러 북극성에 도착할 것이다.
해가 진 저녁 퇴근길에 길을 가다 멈추고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창세15,5)라는 성경 구절처럼 저 넓고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에 얼마나 많은 별이 있을지 생각해본다.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나는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다. 나도 비틀스의 노래 제목처럼 우주를 가로질러 어디론가 가고 있다.
모든 생명체는 지구 자전과 함께 하루 한 바퀴 서쪽에서 동쪽으로 원을 그리며 회전한다. 지구 자전 속도는 초속 460m로 1초에 축구장 4개를 가로지르는 빠르기다. 또 지구는 자전하며 태양을 한 초점으로 하는 타원궤도를 따라 1년에 1회 공전하는데 그 속도는 초속 29.8㎞로 대략 서울에서 인천까지 1초 만에 가는 빠르기다. 지구가 속한 태양계 역시 초속 230㎞로 우리 은하 중심을 공전한다. 이는 서울에서 대구까지 1초 만에 가는 속력이다.
우리 은하도 안드로메다 은하를 포함한 약 1300개의 은하로 구성된 처녀자리 초은하단의 중심을 향해 초속 600㎞의 속도로 이동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글을 읽기 시작한 지 약 1분 30초가 지났으므로 그동안 우주 공간을 5만 4000㎞ 가로질러 이동한 셈이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우주의 무한한 시공간을 가로질러 인간은 아주 짧고 한정된 시공간 안에서 잠시 살다 간다.
우주의 시간을 알려주는 초여름의 전령 개망초꽃을 보며 ‘나는 한 해의 절반이 지나는 동안 내가 사는 세상을, 그 속의 작은 우주인 생명체들을 얼마나 돌아보았는가?’ 생각해본다. 인간의 수명은 길어야 100년, 그 시간은 지구가 태양을 백번밖에 공전하지 못하는 짧은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어린아이는 자라 어른이 되고 꽃은 피고 지며 자연의 모습은 섭리에 따라 순환한다.
시인 김지하(프란치스코)는 그의 시 ‘축복’에서 “우주는 신의 몸 / 네 죄는 삼라만상을 사랑하지 않는 죄 / 사랑을 넘어 차라리 이젠 미물조차 공경하므로 / 용서받으라 또한 축복을!”이라며 자연과 세상 속에 깃든 생명의 의미를 갈구했다. 나의 삶도 우주를 가로지르는 동안 영원의 가치를 갈구하기를 소망해본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이사 40,8)
전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