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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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물러남의 은총

조남대 (미카엘) 수필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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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희를 넘겼다. 몸은 아직 건강하고 마음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때때로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는 몸의 신호를 느낀다. 불과 일이 년 사이에도 그 변화는 확연하다. 언젠가는 나도 주님의 부르심 앞에 겸허히 응답할 순간이 오리라. 그런 생각이 마음 한구석을 조용히 두드린다.

나는 다른 이들보다 늦게 세례를 받았다. 유교 전통이 깊은 집안에서 자라며,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에는 성당에 나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제사와 차례는 해마다 열 번이 넘었다. 그러나 결혼 후 따로 가정을 꾸리며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부모님 그림자에서 조금씩 멀어지자 새로운 믿음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아내는 친척 중 가톨릭 신자가 많아 자연스레 신앙의 향기를 먼저 품었고, 그녀의 기도와 삶을 통해 나 또한 서서히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흔 중반, 인생의 반환점에 다다를 무렵 주님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신앙의 언어도, 교회의 규범도 잘 몰랐지만, 마음속에는 뜨거운 열정이 솟구쳤다. 성당 일이라면 무엇이든 기꺼이 감당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레지오 마리애에 들어갔고, 서기에서 시작해 단장까지 맡으며 구역장·지역장으로 봉사의 길을 걸었다.

교적을 옮긴 후에는 빈첸시오회 아 바오로회 활동으로 이어졌다. 총무와 부회장·회장직을 거쳐 분과위원장·사목위원까지 맡았으며, 성체분배 봉사는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겼다. 주님의 몸을 손에 모시는 그 두려움과 경외의 순간마다 나는 한없이 작아지는 동시에 주님 앞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모든 봉사에는 끝이 있다. 규정상 70세까지만 가능하다는 조항에 따라 성체분배 봉사도 내려놓아야 했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마침 봉사자들이 40명 가까이 되어 내 빈자리는 조용히 흡수되었다. 그 사실에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이제는 빈첸시오 평회원으로만 활동하고 있다. 책임에서 벗어난 자유와 평안 속 한편으로는 허전함이 고개를 든다. ‘이렇게 지내도 괜찮을까’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곧 깨닫는다. 나의 봉사는 직책이나 역할이 아니라 마음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다잡고, 평회원 자리에서도 진심으로 활동하고자 한다.

사람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착각이자 교만이다. 젊은이들이 아직 미숙해 보일지라도 그들에게는 새로운 시선과 생기가 있다. 실수와 시행착오 속에서 성장하며 더 나은 길로 이끌어갈 수 있다. 우리는 그저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며 격려하고 뒤에서 받쳐주는 존재로 남으면 되는 것이다.

이제 안다. 물러남은 패배가 아니라 완성이다. 봉사의 자리에서 한걸음 물러서며 나는 새로운 순명을 배운다. 침묵 속의 기도, 뒷모습으로 드러나는 겸손, 그리고 조용히 손을 내미는 사랑.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깊은 봉사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이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를 묵상한다. 과거의 열심은 땀과 발걸음으로 표현되었지만 앞으로는 기도로, 침묵으로, 따뜻한 시선 하나로 드러날 것이다. 이 또한 주님이 허락하신 또 다른 모양의 사랑이며 순명이 아닐까!


조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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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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