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밥상머리 금기어’라고 불리는 주제들이 있다. 자칫 가족 간에도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정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정치 외에도 우리 사회의 민감하고 불편한 주제들은 많다.
이번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 공식은 빗나가지 않았다. 이 나라 국민이면서 기자이기에, 혹여 편향된 사고를 할까 스스로 경계하며 평소 주변에 정치적 견해를 종종 물었다. 특히 최근 뚜렷해진 국민 정서 분열을 이해하고자 사람들의 의견을 자주 구하곤 했다. 그때마다 돌아온 것은 “그런 건 가족과도 이야기하는 거 아니야!” 하는 핀잔 섞인 반응이었다. 아마 다른 의견으로 감정이 상하고, 불편해지는 것을 걱정하기 때문일 터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것이 결코 ‘틀린’ 것은 아닌데, 존중이라는 미명 아래 침묵이 길다.
낙태·고아·조력 존엄사·장애 등 생명과 관련한 각종 민감한 사안도 마찬가지다. 좋은 이야기만 하기도 각박한 세상에서 불편한 진실은 눈을 질끈 감게 만든다. 무엇이 옳은지 알아도 옳다고 말할 수 없다. 말하는 순간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이 불편한 행동을 한 공로로 제19회 생명의 신비상 활동 분야 본상을 받은 프로라이프 유럽 청년들은 그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었다고 한다. “생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나는 들을 준비가 돼 있으니 공유해줄 수 있어?” 이 한마디에 누군가는 남몰래 생명을 지운 고통을 호소하고, 도움의 손길을 청하기도 했다. 자칫 ‘도를 아십니까?’ 같기도 한 이 행동으로 누군가는 다시금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국정 안정을 도모하는 이때, 밥상머리에서도 정책에서도 용기 있는 파열음을 기다린다. 공론화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논의되지 못하고, 그렇게 산적한 국정 과제 속 생명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이 ‘민생’(民生)이란 단어는 힘을 잃는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시금 불편한 대화를 꺼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