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EoC 기업 문화창조놀이터 ETC를 운영하며 여섯 자녀를 키우고 있는 박성백(모세)·김지현(요비타)씨 부부.
지역 예술가 경제적 자립 목표로 출발
조합원 이탈·대출금 홀로 부담 등 위기
관계 소중함 깨닫고 관계 회복 집중
사회적 프로젝트로 새로운 길 모색
사람책·향촌 수제화 골목살리기 등
지역 어르신·청년 위한 프로젝트 추진
관광·치유·웰에이징으로 영역 넓혀
문체부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참여
청년 치유여행·웰에이징 운동 전개
여섯 자녀 품에 안고 EoC 활동
남편은 대표·아내는 이사, 도예가 부부
하느님 계획 따라 여섯 자녀 출산
사회서 소외된 이들 관계 회복 실천
ETC는 라틴어 et cetera의 줄임말로, 한국어로는 ‘그리고 기타 등등’을 뜻한다. 대구시 중구 경상감영길에서 문화콘텐츠생산자협동조합 ‘문화창조놀이터 ETC’를 운영하는 박성백(모세, 57)·김지현(요비타, 53, 대구 계산본당)씨 부부를 만났다. 남편은 대표, 아내는 이사로 여섯 명의 자녀를 키우는 도예가 부부다. 협동조합 이름에 붙인 ETC(이하 놀이터)에는 다양한 문화콘텐츠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자유로움이 담겨 있지만, 부부는 오직 하나의 중심축을 붙잡고 10년 세월을 건너왔다. 그 중심축은 바로 ‘가정의 가치와 가족 관계의 회복’이었다.
부부는 2015년 27명의 문화예술가가 지역 문화와 디자인을 기반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고 예술인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기 위해 ‘놀이터’를 설립했다. 박 대표는 20년 가까이 대학에서 도자기를 가르쳤지만, 예술로 먹고살 수 있는 제자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협동조합은 지역 문화예술가들이 경제적 자립을 통해 가족 관계를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돕는 데 목적이 있었다. 예술가가 일상을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창작 활동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합원 17명이 출자해 카페와 음식점, 그리고 작품을 판매하는 매장까지 갖췄다. 학생 시절부터 포콜라레 회원으로 활동한 박 대표는 놀이터를 EoC 기업으로 출범시켰다. 그러나 2년이 지나면서 놀이터에서 성공한 문화예술인들이 하나둘 조합을 떠나기 시작했고, 결국 남은 대출금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제가 살아온 50년 중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함께 정했던 규칙이나 정관 같은 것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고, 월세조차 내지 못한 채 대출금을 떠안게 됐죠. 처음으로 ‘이렇게 해서 사람이 죽는구나’ 싶은 자괴감도 느꼈습니다. EoC 기업으로서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이윤의 1라도 가난한 이웃을 위해 내놓는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문화예술인을 위한 ‘놀이터’는 방향을 전환했다. 예술인들의 생계를 돕기 위해 이윤을 창출하는 방식은 쉽지 않았다. 박씨 부부는 남은 조합원들과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다. 인근 경상감영공원에 나오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기록해 책으로 펴내는 ‘사람책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또 100년이 넘은 원도심의 낡은 골목 작업실에서 한국전쟁 이후 수십 년간 수제화를 만들어온 장인들과 함께 ‘향촌 수제화 골목 살리기 프로젝트’도 추진했다. 그 당시 월세를 내지 못해 자살하는 수제화 장인 할아버지도 있었다.
박씨 부부는 현대정몽구재단 지원을 받아 도시 재생사업 일환으로 수제화 학교를 설립했다. 수제화 장인인 할아버지들은 청년들과 협업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냈고, 향촌 수제화 골목은 점차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매일 오후 5시만 되면 어두컴컴하던 골목엔 밤 9시까지 불이 밝혀졌고, 청년 카페와 뜨개질 공방 등 가게들이 들어서며 골목은 다시 살아났다. 어르신과 젊은이들이 관계를 맺고 함께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동네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우리가 사실은 굉장히 부유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예술가들은 그래도 자신들이 선택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거리에는 자신이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저희가 첫 번째 미션으로 삼게 된 건 ‘관계’였습니다.”
놀이터는 2019년부터 3년간 문화체육관광부가 진행한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사업에도 참여했다. 대구·안동·영주·문경 4개 도시의 관광 활성화를 위한 소규모 관광 여행상품을 기획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고통과 불안·우울·대인기피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과 청년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림 수필집 「백씬 북」(100 Scene book)을 출간했다. 이들의 마음 근육을 단련하는 충전·치유·회복 여행상품인 ‘트래블 테라피’도 개발했다. 놀이터는 지자체 지원을 받아 도시 재생사업, 지역 사람과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활동 영역을 꾸준히 넓혀가고 있다.
박 대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사제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신학교 입학에 실패한 뒤 포콜라레 성소 준비자로 이탈리아 로피아노에서 지내던 중 뇌종양 진단을 받고 급히 귀국했다. 6개월간의 치료 후 뇌종양이 오진이었나 싶을 정도로 깨끗하게 나았다. 신학교를 포기하고 미대로 진학해 1995년 같은 도예학을 공부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2003년 필리핀에서 열린 새가정학교와 제4차 세계가정대회에 참석한 부부는 “하느님 사랑으로 부부에게 맡겨주실 생명에 대해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는 교황의 말씀을 듣고 ‘우리 가정을 하느님께 봉헌하자’고 결심했다. 부부는 인위적인 피임을 멈추고, 자연피임으로 돌아섰다. 1997년부터 2013년까지 두 살 터울로 여섯 명의 자녀를 출산했고, 그 사이 자연 유산으로 두 아이를 떠나보냈다. 첫째는 올해 28세, 막내는 중학교 1학년이다.
웰에이징 문화운동 안내 포스터.
문화창조놀이터 ETC는 도시 재생사업, 지역의 사람과 문화, 예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문화창조놀이터 ETC 제공
박성백·김지현씨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모습. 박성백씨 제공
아내 김씨는 “넷째를 가졌을 때부터 경제적 논리로 ‘대책 없는 부모’로 바라보는 주변 시선이 많이 느껴졌다”며 “그럼에도 우리 부부는 한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하느님 사랑의 손길과 은총을 경험해 기쁘고 행복했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들지는 않아요. 한두 명 키우는 부모들처럼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해줄 순 없지만 아이들은 우리 부부의 사랑 안에서 안전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신앙을 물려주는 것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다고 생각해요. 주일학교와 포콜라레 젠 모임에는 빠지지 않게 하고요.”(김지현씨)
부부는 “우리 바람은 하느님이 아이들 삶에 세워놓으신 계획이 온전히 드러나는 삶을 살도록 우리 부부가 방해하지 않는 것”이라며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각자의 꿈을 이뤄가며 삶 속에 하느님 사랑을 전하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부는 새가정운동 대구 소지역 책임자로도 활동 중이다.
여섯 자녀를 품에 안고 활동 영역을 넓혀온 ‘놀이터’는 지난해부터 웰에이징 문화운동을 시작했다. 박 대표는 “나이 드신 분들이 당당하고 행복하게 나이 듦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도록 돕고 싶다”며 “어르신들의 삶은 박물관처럼 풍요롭고, 그것을 젊은이들이 고스란히 물려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놀이터’는 이윤 일부를 가난한 이들을 위해 기부하는 방식보다는 지자체 도움을 받아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관계를 회복하는 방식으로 EoC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 ‘모두를 위한 경제’를 부탁해
경제를 통해 공동선과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기업들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한국 EoC위원회와 함께 사람과 생명을 중심으로 기업을 경영하면서 그 이윤을 사회의 나눔 문화 확산에 기여하는 따뜻한 기업들을 탐방합니다. EoC는 선한 영향력을 가진 기업들이 중심이 되어 가난과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취지로 1991년 시작된 글로벌 경제사회 운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