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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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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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루카 10,3)

루카 복음(10,1~5 참조)에 따르면 예수님은 제자 72명을 지명하시어 가시려던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고 하시면서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라고 말하여라”고 하셨다.

언제나 처음 시작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제자들이 당할 핍박과 고난을 모르실 예수님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을 믿고 주님의 일을 맡긴 것은 그저 일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예수님께서 짊어진 짐을 사람들과 나누어 지었다는 것은 그들을 주님과 버금가게 여겼다는 뜻이다.

모름지기 제자를 거두는 것은 삶과 생각과 업을 이어주기 위해서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존중하고 신성시하는 이유다. 성경에서도 예수님께서 그분의 제자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곳곳에 묘사되어 있다. 제자들의 실수와 잘못을 눈감아 주시기도 하고 꾸짖기도 하시며, 중요한 순간에 잠이 들어버린 제자를 긍휼하게 여기시기도 한다.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의 입장은 미성숙한 개체를 성장시킨다는 면에서 양육에 가깝다. 괜히 스승의 자리를 부모와 동격에 두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정성을 다해 기른 이들이 처음 자신의 할 일을 하도록 떠나보내는 심정은 스승의 입장이 아니고는 알기 힘들 것이다. “가거라. 나는 이제 너희를 보낸다”라는 말씀 행간에 예수님이 느끼는 자랑스러움과 우려가 절절히 와 닿는다.

음악에서만큼 사제 관계가 두드러지는 영역은 찾기 힘들다. 특히 ‘도제관계’라 불리는 이 특이한 1:1 교육 시스템은 예술과 몇몇 장르에서는 처음부터 정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대에도 스승이 제자를 들여 함께 살며 자식처럼 기르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지금 넷플릭스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승부’는 국수 조훈현이 제자 이창호를 무릎제자로 들이며 성장시키는 과정을 감동스럽게 그린 실화 바탕의 영화다. 이전과 달라진 것은 제자가 내야 하는 대가다. 중세에는 제자가 스승의 기예를 이어받는 대신 스승의 집안일을 하며 추후 봉양까지 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17세기 음악가 마렝 마레가 스승과의 인연과 갈등을 그린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1992)에서 당시 모습을 잘 구현하고 있다.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인 마렝은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시 유명한 음악가 쌩뜨의 제자가 되기를 바란다. 스승의 음악을 얻었지만 끝내 스승과 스승의 딸을 배신한 마렝은 마지막 스승의 비전을 훔치기 위해 스승의 움막에 숨어들어 간다. 하지만 몰래 훔쳐 듣는 그 순간에도 결국 스승의 음악에 빠져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운명보다 강한 음악적 만남은 세기적 음악가인 두 천재를 또다시 경이로운 만남으로 이끌고 이들의 삶과 사랑은 푸르른 햇살의 음악으로 승화한다. 스승은 제자를 떠나보낼 때 안타까움과 기쁨을 느끼며, 제자는 그늘을 벗어난 후 나무의 존재를 그리워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아침 중 마렝 마레의 꿈꾸는 소녀

//youtu.be/duSyps8521s?si=OBUL6lRLUeNnLwYS

류재준 작곡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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