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미사 전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언덕 위의 작은 성당에서 장명숙 안젤라 선생님을 만나기로 했다. 소셜미디어에서 ‘밀라논나’로 불리며, 많은 이에게 사랑을 받는 분이었다. 선생님(이하에서는 밀라논나님으로 칭함)을 부르는 애칭 밀라논나는, ‘밀라노 할머니’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에서 비롯됐다.
“제가 머리가 하얗잖아요. 하루는 그 방송을 만드는 친구들이, ‘밀라노 논나’라는 채널명을 제안했어요. 거기에 대고 ‘할머니 소리는 싫어’ 하기도 우습고, 그런 것에 저는 자유롭거든요. 그때부터 이 애칭을 쓰게 됐어요.”
영상을 보는 이들은 밀라논나님의 가식 없는 이런 모습들을 좋아했다. 나는 요양원에 계신 엄마가 잠시 떠올랐다. 누군가 엄마를 ‘할머니’라고 불렀을 때의 거북했던 기억과 함께, 몸만큼이나 이 호칭은 엄마를 더 멀리 느껴지게 했다. 그러고 보니 엄마의 세례명도 안젤라였다.
패션의 도시 밀라노에서 밀라논나님이 공부를 시작했을 때 느꼈던 문화적 차이에 대해 먼저 가볍게 물었다.
“우선 이탈리아 사람들이 자유롭게 애정 표현을 하는 것에 저는 무척 놀랐어요. 그리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의 이름을 그냥 부르는 모습에서 ‘평등한 관계가 이렇게 시작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러니 세월이 지나도 서로 트집 잡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는 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내가 살던 밀라노에 이미 계셨구나…’ 우리는 이미 밀라노 중심 스칼라 극장 건너편 있는 고풍스러운 카페에 앉아 있는 듯했다. 질문을 준비하면서 밀라논나님이 출연하신 영상과 책을 먼저 읽었다. 책에서는 장기기증에 관해 쓰신 문구 ‘나의 죽음이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기를’ 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궁금해졌다.
“저는 이제 살아온 만큼 더 살지는 못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달려만 가던 생각들에서 멈칫 서서는,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를 더 고민하게 되었지요."
나이가 드니 생각도 바뀌는 느낌. "나이 듦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역시 소탈한 표정으로 답하셨다.
“저는 그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나이를 어떻게 안 먹나요?! 떡국을 안 먹는다고 나이를 안 먹나요. 잠을 안 잔다고 세월이 안 가는 것도 아니고, 물결 따라 가는 거지요. 인생을 역행한다는 게 얼마나 흉해요. 사람들이 그래요 ‘염색하면 더 젊어 보일 텐데…’ 젊어 보이면 어쩔 건데요? 연애할 것도 아니잖아요. 이대로의 내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염색을 안 하니까 제일 화를 내시는 건 어머니였어요. 당신은 염색을 하셨거든요. 딸이 당신보다 나이 들어 보이니까 그러신 거지요.”
어머니에 대해 언급하셨을 때, 사제 아들을 두고 서로 당신들을 더 닮았다고 농담하시는 부모님이 생각났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무도 닮지 않았다고 차갑게 답했던 기억. 받은 것은 많으나 작은 가시 하나가 늘 아픈 법이다. 이럴 때는 왜 엄마가 더 미웠던 것일까.
“’하느님 아버지’를 부를 때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평소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던 밀라논나님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는 알고 있었다. 저편에서 기억을 길어 올리는 듯한 얼굴.
“제 아버지는 은행원이셔서 바쁘셨지만, 저를 사랑하셨어요. 울타리 같은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기도 중에 ‘하느님 아버지’를 말할 때 오히려 든든했지요. 저는 할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저를 보며 ‘어떤 때는 네가 얄미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맨날 못생겼다고 구박하셨고. 지금은 다들 스타일이 있다고들 하는데 그때는 그러셨거든요. 아마도 우리 할머니가 며느리에게 굉장히 엄격하셔서 시집살이를 모질게 시키신 거 같아요. 신교육을 받은 어머니는 저를 그래서 귀찮아하신 거 같고요. 게다가 어릴 때 제가 할머니를 많이 닮아서 더 그러셨나 봐요.”
밀라논나님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프랑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했던 예술가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의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그의 사진에는 부드러우면서도 말없이 타인의 내면을 감싸줄 것 같은 응시가 있다. 내면의 상처를 작품에 형상화했던 예술가 루이스 부르주아. 그녀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나약했고, 남편과 가정교사의 오랜 불륜을 보고도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던 인물로 그려졌다.
작가는 ‘덧없음’과 ‘안정’이라는 감정에 깊이 파고들었다. 느닷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기억의 덧없음은, 상실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이었다. 동시에 보이지 않더라도 어딘가에 존재하는 영속성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했다. 그랬다. 낳아 준 존재를 미워한다? 고맙고, 밉고, 사랑하고, 분노하고….
우리는 가족에 대해 말하면서 ‘상처받은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다. 친부에게 성범죄를 당한 아이들의 이야기. 밀라논나님은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가출 소녀 쉼터’에서 20여 년 동안 봉사활동 중인 이야기를 여러 차례 했다.
“거기 애 중에는 아버지에게 성범죄를 당한 애들이 참 많아요. 그 아이들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할 때마다 손끝에서부터 몸서리를 치는 거 같아요.”
꽝 하고 마음의 문이 닫히는 소리. ‘이해와 용서’라는 단어가 강요될 때, 피해자는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에 갇힌 채 곪아 간다. ‘엄마’라는 이름, 태어나서 처음 만난 존재이며 사랑, 사랑하면서도 아픔을 주는 관계. 중증 치매로 요양원에 계시는 나의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든든한 울타리이자 찌르는 가시관이었다.
예술가 루이스 부르주아는 그녀의 작품 전반에서 ‘엄마’라는 존재를 ‘양가감정’으로 다루었다. 즉 엄마에 대한 분노와 함께 사랑하는 존재로, 존경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이 그의 작품에는 공존했다. 강하면서도 무기력했던 존재의 이름. 내가 오히려 엄마를 아프게 한 적이 더 많은데, 식지 않은 미움은 어찌할 것인가.
밀라논나님은 공감하듯 말을 이었다.
“저의 어머니는 따뜻한 분이 아니셨잖아요. 그래도 묵주기도를 할 때면 제 마음이 따뜻해져요. 저는 엄마에게서 따뜻한 손길을 받은 기억이 없었어요. 어머니는 돈을 잘 주시고 제가 부탁한 것은 절대로 거절하지 않으셨지만, 마음에는 살가운 온기가 없던 분이셨어요. 그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용서를 청하셨어요. 그 후로는 ‘성모님’을 부를 때마다 오히려 마음이 훈훈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내 영혼은 설명할 수 없는 기억을 향해 돌을 던지며 묻고 있었다. 그 존재를… ‘엄마’라는 이름을 다시 사랑할 수 있냐며.
글 _ 박홍철 다니엘 신부 (서울대교구 삼각지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