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1> 노르베르트 베버, 갓등이성당 학교 어린이들, 1911, 갓등이, 유리건판,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가톨릭 교육은 원초적으로 ‘거룩함’ 지향
가톨릭교회는 모든 이가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가르친다. 아울러 모든 이가 의식주와 보건·노동·문화·적절한 정보·가정을 이룰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인간적 삶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누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 가톨릭교회 기본 가르침이다.
가톨릭교회는 이처럼 언제나 인간 발전을 지향한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 헌장」은 “사물의 안배는 인간 질서에 종속되어야 하며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질서는 진리에 바탕을 두며, 정의 위에 세워지고, 사랑에서 힘을 얻는다”고 가르친다.(8항) 가톨릭교회가 모든 이의 발전을 지향하는 이유는 모든 인간이 존엄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가톨릭 신자들은 교회 안에서 자녀에게 세례를 받게 하고 교육하며 그 신앙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부모는 자녀에게 첫째가는 가장 중요한 교육자다. 부모는 자녀에게 도덕적이고, 영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
가톨릭 교육은 원초적으로 ‘거룩함’을 지향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확고한 신념과 품행으로써 교회 건설에 이바지한다. 교회는 신자들의 거룩함으로 성장하고 확장되고 발전하여, 마침내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045)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든 이가 거룩해질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거룩한 사람이 되고자 주교나 사제나 수도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성덕은 일상생활과 거리를 두고 많은 시간을 기도에 할애할 수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으로 살아가고 각자 어느 곳에 있든 날마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고유한 증언을 하면서 거룩한 사람이 되라고 부름 받고 있습니다.
봉헌 생활자입니까? 자신이 봉헌한 대로 기쁘게 살아가면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혼인한 사람입니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듯 자기 배우자를 사랑하고 배려하면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직장인입니까?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면서 형제자매들에게 봉사함으로써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어머니나 아버지입니까? 할머니나 할아버지입니까? 아이들이 예수님을 따르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가르치면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권위자입니까? 자신의 사리사욕을 버리고 공동선을 위하여 일하면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4)
<사진 2> 노르베르트 베버, 갓등이성당 학교 소녀들, 1911, 갓등이, 유리건판,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미국 개신교 교육 사업 물량 공세에 두려움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개신교 선교사들이 선교 사업의 일환으로 교육 사업에 아낌없이 물량 공세를 쏟아붓는 것에 두려움을 표했다.<사진 1>
“선교 사업의 성취와 더불어 1882년부터 가톨릭 선교사들은 피 흘려 일군 이 땅에서 선교지를 확보하기 위해 미국 개신교의 공격적 전교 활동과 치열하게 맞서야 했다. 조선이 문호를 개방하자 미국에는 절호의 판로가 열렸고, 교육을 통해 전교 활동을 후원했다. 미국 대기업들이 개신교, 특히 장로교 선교사들을 꾸준히 지원했다. (?) 미국 개신교는 한국에 엄청난 물량을 쏟아붓는다. 부인과 자녀 둘을 부양하는 장로교 선교사 한 사람 급여가, 한국의 프랑스 선교사 46명의 급여를 합친 것보다 많다. 게다가 그들은 자선·종교·문화 사업에 엄청난 규모의 자금을 운용한다. 곳곳에 고급 병원과 명문 학교와 화려한 교회를 짓고, 재원을 풍족히 확보하여 가난한 신자들에게 분배해 주기도 한다. (?) 형편이 이리도 다르니,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지 몇 년도 채 되지 않은 미국 개신교가 가톨릭 선교 활동의 성과를 이미 추월했다는 것이 놀랍지도 않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134~136쪽)
하지만 베버 총아빠스는 격랑의 위기 속 가톨릭 신자들의 굳센 신앙심과 선교사들의 끝없는 희생에서 희망을 보았다. “집집마다 신자들의 기도 소리가 새어 나왔다. 새벽 5시, 자명종이 울릴 때도 열심한 신자들의 기도 소리는 끊일 줄 몰랐다. 사제는 셋인데 제대가 하나뿐이라 이른 시간에 미사를 드려야 했지만, 좁은 경당은 벌써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미사 내내 싱그러운 목소리로 소리 내어 기도했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241쪽)
베버 총아빠스는 1911년 4월 1일 경기도 첫 본당인 갓등이성당을 방문했다. 유서 깊은 갓등이 교우촌에는 본당이 운영하는 학교가 있었다.<사진 2> 베버 총아빠스 일행은 이곳에서 한국말 표현들을 배웠다. “‘먹다’라는 동사에서 수많은 표현이 파생된다. 밥을 먹는 것은 물론이요, 한국인들은 물도 먹고, 담배도 먹는다. 귀머거리는 귀먹고, 상중에는 슬픔도 먹는데 이것은 슬프다는 뜻이다. 냉혈한은 악한 맘을 먹고, 노한 사람은 분한 맘을 먹는다. 험담꾼이 남의 체면을 먹으면 성을 먹는 것이고, 나이 든다는 것은 살을 먹는 것이다. 이런 예문이 끊이지 않는다. 표현과 관용구가 부족한 경우는 없다. 한국말은 참으로 풍요로운 언어다. 어휘와 말뜻과 관용구가 엄청 풍부하여 능통해지기가 정말 어렵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240~241쪽)
<사진 3> 노르베르트 베버, 황해도 매화동성당 봉삼학교 여학생들 소풍, 1911, 매화동, 유리건판,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황해도 최초의 사학인 매화동본당 봉삼학교
베버 총아빠스는 또 1911년 5월 27일 황해도 매화동본당 봉삼학교를 방문했다.<사진 3> 봉삼학교는 매화동본당 주임 우도 신부가 교리교육과 문맹 퇴치를 목적으로 세운 황해도 최초의 사학으로 남학교와 여학교가 있었다.
“매우 특색 있는 학교가 있다. 또한, 양잠 분야에 능력 있고 검증된 한국인 교사를 채용하여 수업 일부를 맡겼다. 그는 일종의 성인학교로 상급반 여학생들에게 양잠과 비단 제조와 상품화에 관해 칠판에 써 가며 가르치고 학생들은 공책에 베껴 썼다. 쓰기와 읽기 공부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이론 수업에 더하여 실습도 행해졌다. 인접한 큰 방뿐 아니라, 교실에도 벽을 따라 널빤지를 대고 누에의 부란 상자를 설치했다. (?) 우도 신부가 누에치기에 기여한 업적은 지대하다. 그는 마을 살림의 기틀을 더욱 다질 요량으로 성당 뜨락을 장식한 미루나무의 꺾꽂이 재배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벌써 5만 그루의 묘목을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미루나무는 제지 공장뿐 아니라 각종 상자를 만드는 데도 쓰인다. (?) 한국인 수녀 둘이 여학교를 맡고 있다. 수업이 여성의 수공예에 중점을 두고 이루어져 두루 환영하는 분위기다. 학생들의 활기에 다들 큰 감명을 받았다. 그들의 명랑한 표정이 밝은색 옷과 어우러져 온 학교가 주일의 정취를 폴폴 풍긴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464~4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