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1550m에 자리한 마리아 바이센슈타인 순례 성당. 에겐탈 골짜기의 주민들에게 가장 소중한 순례지이자 티롤 지역의 대표적 성모 성지 중 하나다. 돌로미티 자락에 있어 ‘돌로미티의 대성당’이라고도 불린다.
하늘과 맞닿은 휴양지 돌로미티
이탈리아 북부, 오스트리아 국경과 맞닿은 알토 아디제 지방은 알프스 산맥 연장선에 있는 고산 지대로 언어도 지리적 풍경도 독특한 곳입니다. 독일어로 남부 티롤이라 불리는데요, 행정상으로 이탈리아 지역이지만, 문화적으로는 독일어권 지역이죠.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 지역이 오스트리아에서 이탈리아로 편입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심 도시인 볼차노를 비롯해 지역 주민 다수가 독일어를 일상 언어로 쓰고 있으며, 의식주뿐 아니라 신앙생활에서도 알프스 티롤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것이 다들 아시는 돌로미티 산맥입니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해질 무렵 하늘에서 빛이 내려앉은 듯 산봉우리가 붉은빛으로 물드는 풍경은 언제봐도 장관입니다. 석회암과 백운암이 혼합된 연한 회백색 암석 덕분에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오늘 떠나는 성지는 바로 이런 장관을 즐길 수 있는 마리아 바이센슈타인(Maria Weißenstein)입니다. 복자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이 즐겨 찾던 휴양지이기도 했죠.
고통의 성모 순례 성당과 주 제대 중앙에 자리한 흰 돌의 피에타상. 건축가 조반니 바티스타 델라이의 설계를 바탕으로 안톤 산타 다 몬테 산 피에트로가 1638년 착공하여 1654년 완공했다. 레온하르트가 소성당 공사 중 발견한 흰 돌의 피에타상은 16세기 초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같은 모양의 피에타상과 그림이 성당 곳곳에 있다.
레온하르트 소성당. 성모님이 골짜기 아래로 떨어진 레온하르트에게 나타나 도움을 주신 장소로 수도원 주차장에서 숲길을 따라 15분 걸어가면 나온다. 소성당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레온하르트의 은수처가 있고 그가 떨어져 9일 만에 구출된 장소가 나온다. 노바 포넨테에서 오는 하이킹 루트가 이곳을 지난다.
돌로미티의 흰 돌의 성모 성지
돌로미티 남서쪽 산기슭에 자리한 마리아 바이센슈타인 성당은 500여 년 동안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성모 성지입니다. 1988년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순례하며 전 세계에 알려졌지요. 해발 1520m 고지대에 있어 이탈리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순례 성당으로 꼽힙니다. 이곳의 순례자들은 장밋빛에 물든 자연에 감탄하며 마치 성모 마리아께서 하늘 높은 곳에서 미소를 띠는 것만 같다고 느낍니다.
유럽의 순례지가 그렇듯 마리아 바이센슈타인의 역사는 작은 기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조금 다른 두 전설이 전해져 옵니다만, 주인공의 신분만 농부와 은수자로 다를 뿐 사연은 거의 같습니다. 때는 1553년, 이곳에 살던 독실한 레온하르트가 골짜기 아래 떨어졌다가 9일 만에 기적적으로 구출됩니다. 그동안 성모님이 나타나 그를 도와주셨고, 사람들이 같이 기도할 수 있는 소성당을 지어달라고 부탁하셨다고 하지요. 레온하르트는 감사의 마음으로 소성당을 지었는데, 기초 공사 중 흰 돌로 조각한 피에타상이 발견됩니다. 이를 성모님의 뜻이라 생각해 완공 후 소성당에 모셨고, 소문을 듣고 이곳을 찾은 많은 이가 성모님의 전구를 통한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합니다. 이탈리아어로는 ‘피에트랄바’, 즉 ‘흰 돌의 성모’라는 뜻의 마리아 바이센슈타인 지명도 여기서 유래됐습니다.
순례자들은 티롤 지역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남부와 독일 바이에른에서도 찾아왔습니다. 순례자들이 크게 늘면서 1561년에 좀더 크게 소성당을 지었고, 그 위로 다시금 1638년부터 1654년까지 새롭게 바로크 양식으로 순례 성당을 지었습니다.
고통의 성모 소성당. 레온하르트가 처음 지은 소성당 위로 17세기 현재의 순례 성당이 들어섰다.
피에트랄바 수도원. 1722년 마리아의 종 수도회가 진출하면서 순례 성당 양옆으로 수도원을 증축했다. 수도원 뒤편의 순례자를 위한 부대 시설은 1630년대부터 들어서기 시작했다. 순례 성당은 1968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준대성전으로 지정됐다.
은총 가득한 돌로미티 대성당
마리아 바이센슈타인이 산지에 있지만 볼차노에서 가까워 찾아가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볼차노역에서 바로 가는 버스도 있습니다. 국도를 빠져나와 노바 포넨테를 향하는 좁은 산악 도로로 접어들면 차창 밖 풍경이 바뀝니다. 저 멀리 깎아지른 듯한 석회암 절벽과 함께 라테마르(2846m)·팔라디산타(2489m) 등 돌로미티의 거친 산세와 고산의 초원이 펼쳐집니다. 하늘과 가까워졌다고 느낄 무렵, 언덕 위의 웅장한 피에트랄바 수도원과 순례 성당이 서서히 나타납니다.
피에트랄바 수도원은 1722년에 지어졌습니다. 1718년 마리아의 종 수도회가 이곳 순례 사목을 맡으면서 기존 순례 성당을 끼고 양쪽 날개 건물을 증축했지요. 이 지역의 영주는 일찍이 티롤 지방에서 마리아의 종 수도자를 초빙해 수도원을 설립하려고 했습니다만 교구의 반대로 좌절되었습니다. 1718년에야 클레멘스 11세 교황과 신성 로마 제국의 카롤루스 6세의 승인을 받아 이곳에 진출합니다. 그러면서 황제는 기적을 일으키시는 피에트랄라 성모님에 대한 신심을 적극적으로 장려했지요.
순례 성당 내부는 17세기 남부 티롤 바로크 양식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독일 남부 바이에른이나 오스트리아의 성당과 비슷한데요, 산악 지형과 평범한 농촌 신심에 기반해 빛과 재료의 질감을 활용해 주님 영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주 제대 한가운데에 그때 발견된 흰 돌의 피에타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성당 왼쪽 작은 공간이 옛 소성당입니다. 소성당 제대에는 1888년 봉헌된 같은 모양의 큰 목각 피에타상이 보이는데, 아드님을 바라보는 성모님의 눈길이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립니다.
마리아 바이센슈타인 순례자의 봉헌판. 성당에서 수도원으로 지나가는 복도에서 순례자들이 체험한 기적에 대해 성모님께 감사의 마음으로 봉헌한 4000개의 봉헌판을 볼 수 있다. 두 세계대전에서 무사히 돌아온 이들의 봉헌판도 보이며, 1952~1970년 사이에도 197건의 ‘은총’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돔의 천장과 벽면·아치 프레스코화에는 성모님 생애의 중요한 순간이 그려져 있는데, 하나하나 장면마다 하느님 섭리와 성모님의 순명을 되새길 수 있습니다. 성모 승천의 프레스코화의 하늘은 돌로미티의 하늘처럼 찬란한 황금빛과 옥색으로 물들어 있는데, 그 사이로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한 천사들의 모습이 살아 움직이듯 생생합니다.
수도원 주변에서 설립자 레온하르트의 흔적을 답사할 수 있습니다. 수도원 맞은편으로 난 숲길을 따라 잠시 걸으면 성모님이 나타나 도와주셨다는 곳에 세워진 레온하르트 소성당에 도착합니다. 조금 더 내려가면 그의 은수처가 있고, 그 아래로는 1553년 추락했던 곳이 있지요.
순례를 떠나는 사람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습니다. 앞서간 순례자들이 남긴 봉헌판, 아들 그리스도를 가슴에 품은 성모님을 보면서 느끼는 건 같을 겁니다. 우리 고통을 함께 느끼고 받아주시는 성모님과 만남 속에 일상을 다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순례 팁>
※ 볼차노에서 20㎞로 떨어져 있다. 볼차노역에서 181번 버스가 다닌다. 기차로는 노바 포넨테까지 와서 버스로 환승. 노바 포넨테에서 숲과 들판을 지나 성지까지 가는 루트(11.8㎞, 고도차 500m) 등 다양한 하이킹 순례 루트가 있다.
※ 고통의 성모 기념일(9/15)에 피에타상을 모시고 ‘어머니의 길(via matris)’ 기도를 바치며 거동 행렬을 한다. 주일 및 대축일 미사 10:00·14:00·16:00, 평일 미사 10:00.
※ 유럽의 다른 순례지에 관한 더 자세한 정보는 「독일 간 김에 순례– 뮌헨과 남부 독일」(분도출판사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