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N 한국지부 이사장 정순택(서울대교구장) 대주교가 10일 서울 명동 파밀리아 채플에서 ACN 한국지부 설립 10주년 감사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아시아 최초 설립…보편 교회와 연대
기념 심포지엄 열고 현장 목소리 공유
2015년 7월 아시아 교회에서는 최초로 설립되어 신앙으로 인해 고통받는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을 돌보는 데 앞장서온 교황청재단 가톨릭 사목 원조기구 고통받는 교회 돕기 ACN 한국지부가 올해 설립 10주년을 맞이했다.
ACN 한국지부는 10일 서울 명동 파밀리아 채플에서 설립 10주년 기념 심포지엄과 미사를 거행하고, 전 세계에서 여전히 자행되는 수많은 박해 사례 가운데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때문에 고통받는 형제자매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10년의 성과를 내세워 이야기하기보다 이 순간에도 절실히 도움을 청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ACN 설립 10주년 심포지엄을 위해 방한한 부르키나파소 교회의 전 와가두구대교구장 필리프 우에드라오고 추기경은 현지 박해 상황을 상세하게 전했다. 그는 “10년 전부터 시작된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의 무차별 테러로 2024년 기준 8000명의 신자가 목숨을 잃었고, 220만 명이 실향민으로 전락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교회를 표적으로 삼은 공격으로 많은 사제와 교리교사·신자들이 살해당했다”면서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은 종교를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데, 이는 이들이 표방하는 것이 종교가 아닌 이데올로기라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박해를 ‘종교의 탈을 쓴 이데올로기 싸움’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부르키나파소 전 와가두구대교구장 필리프 우에드라오고 추기경이 10일 서울 명동 파밀리아 채플에서 열린 ACN 한국지부 설립 10주년 심포지엄에서 극단주의 세력의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가고 있는 부르키나파소 교회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레지나 린치 ACN 본부 수석대표도 한국지부 10주년 기념차 방한해 “ACN은 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며 “특히 교회는 사목적 돌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사회 교리를 통해 인간 존엄을 수호하고 평화를 증진하는 등 사회에서 강력하고 눈에 띄는 존재로 남아야 하기에 우리가 원조기금 조성과 지원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포지엄 후에는 ACN 한국지부 이사장 정순택(서울대교구장) 대주교 주례와 초대 ACN 한국지부 이사장 염수정 추기경, 우에드라오고 추기경, 서상범(군종교구장) 주교 공동집전으로 한국지부 설립 10주년 감사미사를 봉헌했다.
정 대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ACN 한국지부가 10주년을 맞은 것은 단순한 교회 단체의 기념일을 넘어 한국 교회가 보편 교회와 함께 사랑을 나누고 실천해 온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세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염 추기경은 “박해받고 도움받던 역사를 지닌 한국 교회는 박해받아 도움을 청하는 형제자매들을 마땅히 도와야 한다”면서 “고통 속에서 소중한 생명을 기꺼이 내놓으며 믿음을 증거하는 형제자매를 위해 사랑으로 믿음을 증거해나가자”고 격려했다.
ACN 한국지부는 10년 동안 아시아 교회를 대표하는 ‘사목 원조기구’로 활약을 이어왔다. 우크라이나와 시리아·레바논·부르키나파소 등 전쟁과 박해로 사목에 어려움을 겪는 공동체를 지원하고, 몽골어 가톨릭 성경 번역 사업, 우크라이나 어린이 성경 지원 등 신앙의 불모지에 복음을 전하는 데에도 앞장서왔다. 또 본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코너를 통해 어려움에 처한 그리스도인 공동체 사연을 전하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다리 역할도 했다.
“ACN 한국지부의 10년 역사가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은 신자들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황청재단 가톨릭 사목 원조기구 고통받는 교회 돕기 ACN 한국지부장 박기석 신부는 지부 설립 10주년을 맞아 11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아시아 교회에서 최초로 한국에 ACN 지부가 설립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위한 기도에 적극 참여하는 신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ACN 한국지부는 2015년 7월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었던 염수정 추기경이 아시아 지역 최초로 ACN 지부 설립을 결단하면서 설립됐다. 아시아에서도 필리핀보다 한국 교회에 먼저 지부가 설립됐다. 박 신부는 “ACN 본부가 신자도 훨씬 많고 교회 역사도 긴 필리핀·인도 교회 등을 제치고 한국 교회를 택한 것은 숫자보다는 신자들이 얼마나 기도하고 얼마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참여하는지를 봤기 때문”이라며 “신자들의 깊은 신앙심과 사랑이 ACN 한국지부의 10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ACN 한국지부는 지난 10년간 신자들의 기도와 지원 속에 다양한 사목 지원 사업을 펼쳐왔다. 신자들의 후원금을 ACN 본부에 전달해 전 세계 고통받는 교회를 위한 사목을 지원하고, 국내에서는 ‘100만 어린이 묵주 기도’ ‘ACN 십자가의 길’ 프로젝트도 펼쳤다. 2023년에는 몽골 교회를 위해 진행한 가톨릭 성경 번역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개신교 성경밖에 없던 몽골에 가톨릭 성경을 전하기도 했다.
ACN은 정부나 교회 지원을 받지 않고 오직 신자의 후원금으로만 운영된다. 그 기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박 신부는 “10년간 개인 기부만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 은총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며 “한국지부는 계속 박해받는 교회의 고통을 알리고 이들의 부활과 재건을 지원하는 데 아낌없이 투자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ACN 본부 레지나 린치 대표 인터뷰
“도움 받던 한국 교회, 이제는 희망 전하는 교회로”
“ACN 지부가 있는 23개국 교회 가운데 도움을 받던 교회가 도움을 주는 교회로 전환한 사례는 흔치 않습니다. ACN 한국지부의 존재는 박해받고 도움을 필요로 하던 한국 교회가 전 세계 어려운 이들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교회로 전환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ACN 한국지부 설립 10주년을 맞아 방한한 레지나 린치(68) ACN 본부 수석대표는 인터뷰에서 “아시아 최초로 설립된 ACN 한국지부의 10년을 축하한다”며 인사를 전했다. 특히 “가톨릭 신자가 소수인 한국에서 고통받는 그리스도인 형제를 돕고자 나서는 점이 무척 인상 깊었다”며 “한국 교회 신자들의 관대한 지원과 기도는 전 세계 고통받는 교회 공동체에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그들이 신앙을 지키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린치 대표는 ACN 한국지부가 본지의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코너를 통해 고통받는 이들을 위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데에도 관심을 표했다. 린치 대표는 “박해받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목소리를 낼 수 없기에 미디어가 그들의 목소리가 돼줘야 한다”며 “ACN 한국지부와 cpbc가 협력해 지원 창구가 돼주는 것도 물론 좋지만, 무엇보다 목소리를 잃은 이들의 목소리가 돼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했다.
린치 대표는 1980년 ACN 독일지부에서 시작해 무려 45년째 ACN에서 일하고 있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을 고통받는 교회를 돕는 데 헌신해온 것이다. 린치 대표는 “계속 교회를 위해 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희망의 힘’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1983년 당시 34살의 젊은 로베르 사라 대주교(현 추기경)가 아프리카 기니 독재 정권의 탄압 속에 무너져가던 교회를 지켜 재건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고, 이라크의 니네베 공동체가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공격 속에도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동반한 경험을 언급하며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면서 하느님을 따른다면 절망적인 상황도 극복해낼 수 있음을 체험했다”고 설명했다.
린치 대표는 앞으로도 가난한 이들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달라고 요청했다. 물적 지원을 넘어, 그리스도인이라면 기도로 함께하며 고통받는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린치 대표는 “ACN은 앞으로도 하느님 도우심을 바탕으로 교회를 위해 계속 헌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