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는 해마다 7월 셋째 주일을 농민 주일로 지내고 있다. 농민은 나라의 근본으로 여겨져 오기도 했지만 수많은 직업군 중 농민을 특별히 취급하는 것은 이들이 사회의 중요한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문명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착민이 필요하다. 유목민의 경우 가축을 기르기 위해 초지를 찾아다니기 때문에 일정한 거처에 머무는 것이 어렵다. 농사는 작물을 파종한 후 일정 기간 돌보고 수확해야 하기 때문에 거주가 정해지며, 노동집약적인 농사의 특성상 많은 이가 한곳에 모일 수밖에 없다.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대한 안정적인 기반을 제공하고 경제·사회 공동체로서의 발전이 용이해지는 것이다. 세력을 만들고 세금을 걷기에도 농민 만한 집단이 없다. 대부분 거대 문명들이 농사에 유리한 강과 인접한 데서 발원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농사짓는 이들의 사회적 지위를 현대로 가져오면 아마도 샐러리맨이 아닐까 한다. 유리봉투라고 불릴 만큼 수입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 세금 확보가 쉽고, 직장과 멀리 떨어질 수 없으니 사실상 거주·이주의 자유가 자율적으로 제한된다. 이직이 쉽지도 않으며 어느 기업에 다니는가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달라지는 것도 두 삶의 비슷한 점이다. 확실히 농민과 샐러리맨은 저소득층과 부자 사이, 즉 중산층을 의미한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몇몇 유명 음악가의 이름이 언급되지만, 그리스도교 세상에서 초기 서양음악은 딱히 음악인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는다. 작곡과 연주는 신앙 행위의 일부였으며 주님을 위한 도구일 뿐이었기에 이에 전문적으로 종사한 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직업으로서 존재하지 않았으니 음악에 대한 수요가 있겠느냐고 의문을 가져볼 수도 있겠지만, 뜻밖에도 음악 시장은 존재했다. 영지를 떠돌며 부르는 가수들(음유시인·마이스터징어, Meistersinger)의 시와 노래는 당시 농민들에게 신문이었으며 유일한 여흥이었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각 지방 특유의 선법과 리듬을 차용했으며, 가사의 내용은 옆 마을 아름다운 아가씨부터 악덕 지주까지 다양했다.
농민들이 즐기던 이 음악들은 ‘세속 음악’이라 불렸으며, 추후 그레고리오 성가에 세속 음악의 리듬이 결합되며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오게 된다. 당시 농민들이 즐기던 음악이 천하고 세속적이라며 멀리하던 성직자·귀족·왕족들은 그레고리오 성가를 차용한 새로운 음악의 적극적인 후원자 및 감상자가 되었으며, 음악가들을 모아 자신의 교회·왕국·영지를 대표하는 단체를 만들었다.
산업혁명 후에는 부르주아 계급이 사회 전면에 나서며 이들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부르주아 계층의 폭이 두꺼워지며 소득의 상향 평준화로 중산층이 늘어나자, 이들을 위한 1000석 이상의 공연장이 지어지고 많은 음악인이 연주로 생활하게 되었다. 음악가들의 지위 향상에 중산층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이야기다. 자고로 농자의 삶이 편안하면 나라도 편안하였고, 중산층이 두껍고 여유로울 때 나라가 안정되었다. 이번 농민 주일을 우리를 위한 주일로 여기고 공연장에 한 걸음 하시길 기대한다.
바그너 뉘른베르그의 마스이터징어 서곡
//youtu.be/fDIkzHjHRhI?si=zamZtSMQjakP3Ojw
작곡가 류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