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로는 브루넬레스키에서 알베르티와 브라만테에 이르는 로마 고전주의를 계승한 건축가입니다. 그는 로마 유적을 발굴하고 실물을 탐구하였으며, 비트루비우스의 「건축론」을 연구하여 건축과 회화에 적용하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라파엘로는 고대 로마 고전주의와 인문주의에 충실한 전성기 르네상스의 건축가입니다.
하지만 라파엘로는 고대 로마의 유적을 포함하여 르네상스 건축물로부터 받은 영향에 머물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으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였습니다. 로마 고전주의에 입각한 전성기 르네상스의 양식을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재창조한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천재성으로 라파엘로는 전성기 르네상스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 이후의 새로운 양식인 ‘매너리즘’(Mannerism)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매너리즘, 이탈리아어로 ‘마니에리스모’(Manierismo)라고 하는 이 표현은 브라만테의 작품과 라파엘로와 발다사레 페루치(Baldassare Peruzzi, 1481~1536)의 초기 작품에서 나타나는 스타일과, 라파엘로와 페루치의 후기 작품과 줄리오 로마노(Giulio Romano, 1499~1546)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스타일이 작품에 대한 화가의 의도에 있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며 생겨났습니다.
사실 마니에리스모란 용어가 생기기 전에, ‘마니에라’(Maniera, 방식)라는 말이 15세기에 등장했는데, 이는 어떤 예술가 혹은 어떤 시대의 ‘스타일’을 의미했습니다. 조르조 바사리는 당시 미술의 ‘현대적 방식’(Maniera Moderna)에 대해서 말하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는 치마부에와 조토에서 시작된 예술의 진보 과정에서 정점에 이른 예술가들이라고 언급합니다. 따라서 이후의 예술가들은 로마 고전주의를 능가하는 형식의 완벽과 아름다움의 이상에 도달한 그들의 ‘아름다운 방식’(Bella Maniera)을 습득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이러한 긍정적 의미의 마니에라는 18세기를 지나며 부정적으로 전가되어, 르네상스의 이상을 포기하고 세 거장의 위대한 스타일만을 반복적으로 따르는 것이 마니에리스모(매너리즘)라고 일컫게 되었습니다. 19세기의 저명한 미술사학자 야코프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 1818~1897)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의 중간 시기에 대한 다소 폄훼의 표현으로 매너리즘이란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반고전적 구성 요소와 자연보다 우월한 아름다움, 그리고 강제적이고 고전적 규범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관점에서 매너리즘의 의미를 다시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매너리즘 화가들이 나타났고,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의 영향으로 매너리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이루어졌습니다.
실로 라파엘로는 로마 고전주의를 완벽하게 부활시킨 사람입니다. 이전의 건축가들은 로마 고전주의에서 전체를 받아들이지 않고 유형별로 나누어서 부분적으로 수용했습니다.
결국 로마 고전주의를 대표적인 몇 가지 요소로 단순화하여 적용하였기 때문에 고대 로마의 실재와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라파엘로는 원본을 실재대로 재현하려고 애썼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주요 키워드인 ‘재현’은 라파엘로에게 있어서 단순한 복사가 아니라, 로마의 실재와 거리를 좁히면서도 르네상스의 실재에 맞도록 재해석하여 재창출하는 것입니다.
라파엘로가 이렇게 고대 로마의 건축물을 르네상스 시대에 맞게 해석하여 재현하는 방법은 투시도법을 이용하여 거대한 공간의 규모를 작게 줄이는 것입니다. 사실 이전의 건축가들도 로마의 건축물을 재현해 왔으나 고대 건물의 규모와 르네상스의 규모가 달라서 부분적으로 변형하거나 생략해서 재현하였습니다.
하지만 라파엘로는 고대 로마 건축물의 전체적 구성을 유지하면서 공간의 골조, 장식, 부재 등을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에 기초하여 조금씩 압축한 것입니다.
라파엘로가 세운 건축물은 많지 않기 때문에 그의 건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회화 작품에서 배경으로 그려진 건축물을 살펴보는 것이 유용합니다. 생각해 보면 회화에 나타난 건축물은 시공을 위한 설계도에서 투시도 같은 것입니다.
첫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성모 마리아의 결혼>(1504년)입니다. 브라만테의 ‘몬토리오의 산 피에트로 템피에토’와 거의 흡사한 성전이 그림의 배경에 나옵니다. 이는 라파엘로의 건축 개념이 중앙집중형의 전성기 르네상스 시기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바티칸 박물관 라파엘로의 방에 있는 연작 가운데 <아테네 학당>(1511년)이나 <헬리오도로스의 추방>(1511~1512년) 등을 보면 투시도법을 이용하여 거대한 건축물이 주인공들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건물을 보면 돔이 있는 중앙집중형 공간이 배럴 볼트에 의해 연속되고 있습니다. 브라만테가 설계한 성 베드로 대성당의 그릭 크로스 평면이 반복되는 듯한 이 건물들은 확실히 전성기 르네상스의 표현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로마 고전주의에 대해서 공간을 축소하여 재현하는 것은 전성기 르네상스의 방식입니다. 하지만 라파엘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로마 고전주의를 자신의 방식으로 만들어냈습니다. 곧 회화적 장식을 통해서 건축적 기능을 구현하는 것으로, 이런 점에서 라파엘로가 매너리즘의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것입니다, <아테네 학당> 속의 건물이 전성기 르네상스의 요소를 갖추었다면, <헬리오도로스의 추방> 속 건물은 기존의 형식을 벗어나서 빛과 어둠의 대비로 공간의 긴장감을 표현한 점에서 매너리즘에 가깝습니다.
일상에서 흔히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표현을 씁니다. 뭔가 새로움에 대한 돌파구 없이 틀에 박힌 생활을 반복하는 것, 그래서 타성에 젖어 사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르네상스 건축은 브라만테와 라파엘로 이후 더 이상 로마 고전주의를 색다르게 표현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방식을 반복하다가 막다른 길을 만났고, 그곳에서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해진 것이 아닌 유동적인 것이 새로운 표현 방식이 되었습니다. 무기력하게 틀에 박혀 타성에 젖지 않았던 것입니다.
글 _ 강한수 가롤로 신부(의정부교구 건축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