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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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원, 영등포 28년 역사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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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원 마지막 진료일인 7월 18일. 고영초 병원장이 진료를 하고 있다.


마지막 날까지 최선 다해 진료

“2022년부터 요셉의원 다니셨네요? 오늘 요셉의원 마지막 날이에요. 아시죠?”(요셉의원 병원장 고영초 교수)

18일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요셉의원 진료실. 신경외과 고영초(가시미로) 원장이 환자에게 말을 건넨다. 모자를 푹 눌러쓴 환자가 큰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한다.

“네, 1년 넘게 당뇨에 고혈압이 있다 보니까?. 한방 파스 두 개씩 주시면 좋겠고요. 근로능력평가용 진단서도 써주세요. 엄마 생각도 많이 나고 힘드네요. 제 몸이 종합병원이에요. 여기 앉아서 원장님께 이런저런 하소연을 많이 했네요. 원장님 덕분에 제가 살았죠.”

그가 떠난 뒤에도 진료실 앞에는 마스크를 쓴 환자들이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대기실 한편에는 초대원장 선우경식(요셉, 1945~2008) 의사의 사진이 걸려 있다. 요셉의원의 설립 정신이 담긴 선우 원장의 어록이 적혀있다.

“진료비가 없는 환자야말로 진정 의사가 필요한 환자입니다. 그런 귀한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나는 하느님이 선물로 보내주시는 환자들을 뿌리칠 수가 없었습니다.”

2023년부터 요셉의원 제5대 병원장을 지내고 있는 고영초 교수는 선우경식 원장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고 교수는 선우 원장의 마지막 주치의로, 급성 뇌경색과 위암으로 고통받은 선우 원장의 병상을 지켰다. 고 교수는 사제의 꿈을 안고 소신학교에도 다녔지만 의대에 간 것을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여기고 40년 넘게 의료 취약 지역을 찾아다녔다.

요셉의원 1층 접수 창구 앞에는 환자들이 대기표를 받고 기다린다. 대형 TV 화면에는 마지막 진료 과목과 의사 이름이 안내되어 있다. 이날 문을 연 진료과는 신경외과·내과·피부과·치과다. 건물 앞은 소란스럽다. 요셉의원으로 들어오는 골목 초입에 있는 무료 급식소 ‘토마스의 집’에서 배식을 기다리는 행려인들이 우산을 쓴 채 줄을 섰다.

“번호표 안 받으신 분?”

정재진(요셉)씨가 환자들에게 번호표와 마스크를 나눠준다. 10년 전 서울 대방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자마자 봉사를 시작한 그는 현재 요셉의원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정씨는 13년간 노동부 공무원으로 지내며 장애인 취업을 알선하는 일도 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저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사는 게 제 삶의 가치관입니다. 이곳에 오는 봉사자와 후원자들 모두 같은 사명감을 갖고 있어요.”
 
요셉나눔재단법인 사무총장 홍근표 신부가 수도자들과 봉사자, 직원들과 함께 쪽방촌에 나눌 떡 나눔에 앞서 기도를 바치고 있다.


1997년 5월 진료 시작

요셉의원을 설립한 선우경식 원장은 가톨릭대 의대 출신으로 미국 뉴욕에서 내과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뉴욕에서 일하다 돈만 버는 의사로 사는 삶에 회의를 느껴, 미국 의사의 삶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1980년대 초 종합병원의 내과 과장으로 일하던 그는 달동네의 무료 주말 진료소에서 의료 봉사를 시작했다. 1987년 8월 29일 서울 신림동에 요셉의원을 개원했고, 10년 후인 1997년 4월 29일 요셉의원 간판을 내리고 영등포역 쪽방촌 골목으로 이전한다.

요셉의원은 진료뿐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데에도 힘을 써왔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의 재활 쉼터인 목동의 집(1996년)과 치료받고 갈 곳 없는 행려인들을 위해 쉼터 ‘성모자헌의 집’(2000년)도 마련했다. 인문학 수업은 물론 음악치료로 진행한다. 행려인들은 이곳에서 진료만 받은 것이 아니라 회복과 자활할 힘도 얻었다.

“오늘, 영등포에서만 28년 역사를 마감하는 한 페이지가 됩니다. 식구이자 이웃인 쪽방 주민들에게 아쉬움과 이별, 감사의 의미를 담아 떡을 전하고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은총 주시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별 나눔 시간을 갖겠습니다.”(요셉나눔재단법인 사무총장 홍근표 신부)

매주 목요일 허기진 행려인들의 배를 채우던 요셉의원 1층 식당. 이날은 직원과 봉사자들이 모여 주모경을 바친 뒤 쪽방촌 주민 500여 가구에 떡을 전하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봉사자들이 문을 두드리자, 1평 남짓한 방의 문이 열린다. 방에는 작은 선풍기 하나가 돌아가고, 발 디딜 틈 없는 공간에 열기가 가득하다. 홍 신부는 집 안에 들어가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기도도 해줬다.

 
요셉의원 고영초 병원장이 쪽방촌 주민에게 나눠줄 떡을 든 채 현관문을 나서고 있다.

“우리 이제 떠나요. 아프시면 서울역으로 오세요.”

쪽방촌 방문에는 방문진료팀장 김경미(레오니스)씨도 함께했다. 25년간 미국 응급실에서 간호사로 일한 그는 7개월 전 면접 당시 ‘어떤 환자든 자신 있다’고 생각했지만, 쪽방촌 방문 진료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담배 연기, 배설물 냄새에 말도 못했어요. 술을 못 끊고, 질병에 대한 인식도 없으시죠. 집 안에 살림이 많아 문도 잘 안 열리고요. 같은 설명을 반복해야 해요. 욕도 많이 들었죠. 그래도 고독사만큼은 막고 싶어요.”

그는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는지 모르고 살았다”며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몰랐던 제 삶이 부끄러웠다”고 털어놨다.

요셉의원 앞에서 40년 넘게 은혜수퍼를 운영한 김애순(77)씨는 “선우 원장님 운구 차가 쪽방촌을 돌았을 때 배웅하며 많이 울었는데 정든 이웃이 떠난다니 쓸쓸하다”고 했다.

16년간 근무한 김성권(프란치스코, 71)씨는 “이곳은 소란스러웠지만 하느님을 가까이에서 느낀 곳이었다”며 “꼬깃꼬깃한 지폐를 현관문 밑으로 밀어 넣던 환자들의 마음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요셉의원이 18일 진료 종료 감사 미사를 봉헌하고, 영등포 쪽방촌에서의 진료 역사를 마무리했다.


18일 ‘진료 종료 감사미사’ 봉헌

직원과 봉사자들은 이날 오후 5시 경당에서 홍근표 신부 주례로 ‘영등포 요셉의원 진료 종료 감사미사’를 봉헌하고, 영등포 요셉의원의 불을 껐다. 오랫동안 봉사해온 황돈(마태오) 도서관장과 장민훈(요셉) 방사선사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38년간 봉사한 김정식(안드레아) 치과의사와 신완식(루카) 4대 병원장 등 가난한 환자들 곁을 지킨 의료 봉사자들도 함께했다.

손 안젤라(작은 자매 관상 선교 수녀회) 수녀는 “1989년 요셉의원 직원으로 있다가 수녀원에 들어가 인연이 많다”며 “요셉의원은 가난한 환자들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심장과 같은 곳”이라고 밝혔다.

진료 종료 감사미사가 끝나고, 요셉의원을 밝히던 간판에 불이 꺼졌다. 현관 앞에서 직원과 봉사자들을 기다리던 주민 손술임(마르타, 89)씨는 눈물을 글썽였다.

“너무 정들었어요. 떠나는 거 보려고 일부러 나와서 기다렸어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하지?.”

손씨는 직원과 봉사자들의 뒷모습을 향해 한참 동안 손을 흔들었다.

요셉의원은 8월 29일 서울역 바로 인근 동자동의 새 공간에서 축복식을 거행하고, 더 많은 노숙인을 찾아 나선다. 선우경식 원장이 신림동에 요셉의원을 개원한 날은 1987년 8월 29일이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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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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