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르타뉴 생트안느도레의 생트안느 대성당. 루르드·리지외에 이어 프랑스 최대 순례지로 1300년 넘게 성 안나 공경 전통이 뿌리내린 곳이다. 1996년 9월 20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5만 명의 순례자와 함께 이곳을 순례했고, 시현자 이본 니콜라직의 시복 절차도 진행 중이다.
요즘 K팝과 K애니가 대세입니다. 한때 전 세계에서 사랑받았던 프랑스 만화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도 있었습니다. 갈리아의 어느 마을이 로마군에 끝까지 저항한다는 설정의 만화로 애니메이션으로도 여러 편 제작됐지요. 그 배경인 곳이 프랑스 지도에서 살짝 돌출된 서북단의 브르타뉴 지역입니다. 천연 그대로의 아름다운 해안선으로도 유명한데요, 고대 영국 남서부에서 건너온 켈트족이 정착한 지역으로 조상과 자연을 숭배하는 민간 신앙의 뿌리가 깊은 곳입니다.
생트안느도레의 그랑 파르동. 매년 7월 26일 성당 앞에서 전통 복장을 한 남녀들이 성 안나상을 모시고, 그 뒤로 다양한 성인의 깃발을 들고 마을을 행진한다. 400주년인 올해는 마차에 성상을 모시고 브르타뉴의 마을을 돈다. 출처= Sanctuaire de Sainte-Anne-d’Auray
브르타뉴의 성인 공경 전통이 신앙 축제로 승화된 ‘파르동’
만화에서도 그렇듯 이곳 사람들은 프랑스 안에서도 좀 독특합니다. 브르타뉴어를 여전히 사용하고, 정치뿐 아니라 종교에서도 독자적 전통을 유지하고 있지요. 무엇보다 성인 공경 문화가 공동체 신앙으로 승화된 지역입니다. 대표적 예가 ‘파르동’입니다.
프랑스어 ‘pardon’은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용서’를 뜻하며, 일상에서 영어의 ‘excuse me’처럼 씁니다. 그런데 브르타뉴에서 이 단어는 순례를 뜻합니다. 중세부터 대축일과 성인 기념일에 주변 성지를 찾아 참회하며 하느님 은총을 청하는 전통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그러니까 파르동은 마치 아스테릭스 마을 사람들이 마법 물약으로 하나 되어 로마군과 싸우듯 마을 공동체가 순례로 하느님 안에서 하나 되는 축제를 가리키는 말이 된 거지요.
브르타뉴에서 매년 약 1200개의 파르동 축제가 열리는데, 그중 대표적인 곳이 올해 ‘그랑 파르동’ 400주년을 맞이한 생트안느도레(Sainte-Anne-d’Auray)입니다. 1900년경에는 매년 브르타뉴교구의 70개 본당이 이곳으로 순례를 와서 성대한 순례 축제를 벌였습니다.
성 안나와 소녀 마리아상. 1625년 발견된 7세기 성상이 프랑스 혁명 중 불타버려 1825년에 새롭게 제작했다. 옛 성상의 머리 부분이 받침대 아래에 모셔져 있다.
옛 가르멜 수도원 회랑. 생트안느 대성당 후진에 이어져 있다. 가르멜회가 생트안느도레에 정착한 뒤 1638년에서 1642년 사이 건축했다. 위층은 수도자들의 공간이고, 넓은 아케이드가 있는 아래층은 순례자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프랑스 혁명 후 소신학교로 사용했다. 회랑 벽에는 봉헌판들이 걸려 있으며, 안뜰 십자가에 결혼을 원하는 처녀가 핀을 꽂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브르타뉴에 발현한 성 안나
생트안느도레는 원래 브르타뉴어로 ‘안나의 마을(Ker Anna)’이라 불리던 곳으로, 반과 오레 사이의 인구 3000명이 채 안 되는 조그만 마을입니다. 6세기 초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할머니인 성 안나에게 봉헌된 소성당이 여기 있어 붙은 이름입니다.
17세기 초의 일이었습니다. 1623년 여름, 농부 이본 니콜라직은 밤마다 신비로운 빛과 향기·소리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이 체험은 반복되었고 점점 더 뚜렷해졌습니다. 1624년 7월 25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밤, 한 여인이 환히 빛나는 모습으로 나타나 자신이 성 안나라고 밝힙니다. 그러고는 이 마을이 생기기도 전에 성 안나에게 봉헌된 소성당이 있었지만, 900년 넘게 폐허가 되어 있으니 재건해주길 바랐습니다.
본당 신부와 마을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죠. 이듬해 3월 8일 성 안나는 다시 발현해 이웃들과 횃불이 인도하는 곳으로 가라고 전했고, 옛 성당 터에서 고대 올리브 나무 조각상이 발견됩니다. 이 일로 마을은 발칵 뒤집혔죠. 당시 반 교구장은 이 사건을 조사한 뒤 1625년 7월 26일 교구 차원에서 성 안나의 발현을 인정했고, 곧바로 첫 소성당이 세워집니다. 사실상 순례 역사의 시작입니다.
물론 이 전승이 7~8세기 대지 여신을 숭배하던 브르타뉴 지역에 그리스도교를 전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성모 마리아와 성 안나 공경이 중세에도 이어진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기 뿌리와 역사를 되새기며, 신앙 공동체로 하나 되는 계기가 된 건 분명합니다. 1630년대부터 가르멜회가 순례자들을 보살피면서 브르타뉴 최대의 순례지로 자리를 잡고, 성 안나는 브르타뉴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습니다.
생트안느 대성당 내부. 라틴십자가 구조로 1865년에서 1874년 사이에 네오고딕 양식을 기반으로 건축됐다. 흰색 대리석으로 장식된 주 제대 뒤에 파이프오르간이 자리하고 있다. 오른쪽 측랑에 성 안나와 소녀 마리아상이 모셔진 성 안나 제대가 보인다.
스칼라 산타(Scala Sancta). 1662년 가르멜 수도회가 순례자를 위해 예수님이 빌라도의 신문을 받으러 무릎을 꿇고 올라가야 했던 계단을 모방해 만들었다. 원래 성당 옆에 있었으나, 대성당을 지으면서 광장 아래쪽으로 옮겼다. 순례자들은 무릎을 꿇고 계단을 오르며 기도한다.
성 안나 신심으로 탄생한 생트안느 대성당
많은 순례자는 플뤼네레의 생트안느 역에서 내려 생트안느도레까지 걸어 옵니다. 노선버스가 있지만, 한적한 시골길을 걸으며 내면에 침잠하는 시간을 선택하지요. 30분쯤 걸으면 브르타뉴의 낮은 건물들 너머로 75m 높이의 뾰족한 생트안느 대성당 첨탑이 나타납니다. 1866~1872년 새로 세운 네오고딕 양식의 성당입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돔 위의 6m 넘는 성 안나 모녀상이 한눈에 들어오죠. 성당 앞 광장에도 성 안나 모녀상이 있는데, 그곳 분수에서 기도하는 순례자들이 보입니다. 바로 이곳이 성 안나가 처음 발현한 장소로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솟은 샘물을 마시고 병이 치유됐기에 기적의 샘이라고도 부르죠.
주 제대에는 성 요아킴과 성 요셉상이 있고, 상단 십자가 주변으로 네 복음사가가 보입니다. 순례자들이 찾는 곳은 바로 오른편 보조 제대입니다. 제대 위에 왕관을 쓴 금빛 성 안나와 소녀 마리아상이 보이는데, 조각상의 받침대에는 1789년 혁명 당시 불타고 남은 7세기 고대 성 안나 목상의 일부가 모셔져 있습니다. 수백 년 동안 순례자들은 이곳 앞에서 초를 밝히며 하느님 은총을 청했습니다. 그중에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있었죠. 1996년 9월 20일에 15만 명이 넘는 순례자들과 함께 이곳에서 기도를 드렸지요.
생트안느도레는 과거의 순례지가 아닙니다. 루르드·리지외에 이어 프랑스 3대 성지로서 매년 50만 명 이상이 이곳을 찾습니다. 청년들만의 파르동도 열리지요. 매년 7월 26일의 성 안나 축일에는 2만여 명의 순례자들이 가족 단위로 ‘그랑 파르동’에 참여합니다. 전통 복장을 한 순례자들이 성상을 실은 마차를 뒤따라 성당과 마을을 돌며, 브르타뉴어 성가가 울려 퍼집니다. 신앙과 지역 문화가 하나의 제의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모습에서 일상에 녹아든 순례의 모습을 봅니다.
<순례 팁>
※ 낭트와 렌에서 자동차로 1시간 40분. TGV 파리-캥페르를 이용해 오레에서 하차한 후 환승. 오레에서 반을 오가는 기차(TER), 노선버스(no.5)가 다닌다. 성당 뒤 사거리에 니콜라직의 생가가 있다.
※ 미사 시간 : 주일과 대축일 9:30· 11:00·18:00(매월 첫 주일은 9:30 브르타뉴어 미사) 평일 9:30(화~금, 소성당) 11:00·18:00(월~목). 성물방 09:30 ~18:00.
※ 유럽의 다른 순례지에 관한 알찬 정보는 「독일 간 김에 순례– 뮌헨과 남부 독일」(분도출판사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