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모와 노인의 날’은 코로나19 사태로 고독과 죽음의 고통을 겪는 노인들을 위로하고, 가정과 사회에서 노인의 역할과 중요성을 되새기며, 그들의 소명을 격려하고자 2021년 제정되었다.
노인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연륜 있는 지혜를 지닌 존재로 여기는가 하면 고집불통이고 이기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사회를 만든 존재인 동시에 젊은이들이 부양해야 하는 무거운 짐으로 인식한다.
불행하게도 대다수의 생각이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일단 피부가 쭈글쭈글해지고 냄새가 나며 허리와 어깨가 주저앉는다. 말이 어눌해지고 논리적인 대화도 어렵게 된다. 몸 곳곳에 병이 스며들고 시각·청각·촉각 능력이 쇠퇴한다. 외모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입지·경제적 기반도 달라진다.
불과 한 세기 전만 하더라도 오래 사는 것은 축복이었다. 병마와 전쟁으로 평균 수명이 현대의 반도 안 된 데다 문맹이 많고 소식이 느렸을 때 노인들이 가지고 있는 경험의 가치는 최고조에 달했다. 지금을 사는 노년 세대는 노인들을 공경하던 그 시대를 경험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당시와 다른 현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이도 많다.
특히 한국에서 곧 닥쳐올 노인 인구의 팽창은 심각한 사회문제다. OECD 최고의 노인 자살률이 그 방증일 것이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사회 간접자본의 부재, 개인에게 부여된 노후 대책 등은 나라의 존망을 걱정할 만큼 풀기 힘든 과제다. 지금처럼 세대 간 대화와 이해가 단절된 상황이 정착해버리면, 정말로 희망 없는 미래가 닥치는 것은 순식간일 것이다.
의외로 클래식 분야에서는 ‘노인’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긍정적이다. 예술, 특히 클래식 음악만큼 노인이 대접받는 곳은 드물다. 그들이 하는 연주는 시대를 계승하는 자산으로 평가받으며, 어지간한 실수는 그들의 업적으로 덮어버린다. 사람들은 이들과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며, 그들의 마지막 연주에 같이 있기를 소망한다. 은퇴하는 음악가가 없지는 않지만, 과거의 위상을 지니고 있으며 어느 정도 연주할 능력이 있는 이들에겐 먼 말이다.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 1903~1989)는 나이 들어서도 최고의 연주를 보여주었던 대표적인 음악가다. 이 피아니스트는 평생 단 한 번의 슬럼프 없이 완벽한 연주를 선보였다. 건강에 대한 불안, 과도한 스케줄과 우울증으로 중간중간 쉬기는 했지만, 공연 때마다 그가 보여주는 불사신 같은 연주에 사람들은 열광하다 못해 광분했다.
1965년 카네기홀에서 열린 그의 리사이틀은 표를 구하려는 청중이 1㎞나 줄을 섰고, 아예 매트리스를 가져와 밤을 지새웠던 이들도 있었다. 오늘날 K-POP의 예매 전쟁을 이미 60년 전에 치른 것이다. 노인들의 연주를 탐탁하지 않게 생각했던 이들도 호로비츠의 연주에 대해서는 함부로 언급하지 않는다. 존중과 배려로 어우러져야 할 노년 세대를 생각하며 호로비츠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준비했다.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당시 연주했던 작품으로, 젊음이 넘치는 지휘자 주빈 메타의 모습도 흥미롭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와 주빈 메타가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youtu.be/D5mxU_7BTRA?si=8087Drb05ZFiLMZZ
작곡가 류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