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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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확인됐지만 화해는 아직”

[이상도 선임기자의 톡(talk)터뷰] 활동 종료 앞둔 2기 진화위 박선영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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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말 임기 종료를 앞둔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박선영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과거사 진실규명은 진실은 있으나 화해가 없다며 아쉬워했다.
 

종교인 희생·선감학원 인권침해 등 묻혔던 현대사 진실 규명

“군경·적대 세력 희생자 배·보상 불균형… 공정한 대우 필요”

“책임질 사람 책임져야 아픔 되풀이 안 해” 미래 위한 제언



2020년 12월 출범한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가 올해 말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다. 그동안 진화위는 군경의 민간인 집단희생사건, 적대 세력에 의한 종교인 희생사건, 북한 인민군에 의한 서울대병원 집단학살 사건, 미귀환 납북어부 가족에 대한 인권침해 등 수많은 사건을 진실규명함으로써 묻혀 있던 현대사를 양지로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박선영(매임 데레사) 위원장을 집무실에서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75년 만에 나온 수류성당 희생자 후손 증언

전북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 수류성당은 조선 박해 시대인 1800년대 중후반 숨어 지내던 신자들이 이주해 터를 일궜다. 1889년 설립된 전주 전동성당과 함께 호남 천주교를 대표하는 성지로 2021년에는 한국 근현대사와 천주교 역사에 중요한 장소로 인정돼 전라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6·25전쟁 당시 수류성당으로 피신한 주교와 신부·수녀·신자들이 다수 잡혀가고 숨진 깊은 상처가 남아있는 곳이다.

1950년 9월 15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전세가 역전됐고 호남을 장악했던 인민군은 철수를 서둘렀다. 그들 중 일부가 수류성당에 들이닥쳤다. 인민군은 주일이던 9월 24일 미사 참여를 위해 모였던 신자들을 성당 안에 감금하고 불을 질렀다. 그날 유서 깊은 성당과 신자들은 모두 화마 속에 사라졌다.

진화위가 이날의 사건을 조사했지만, 당시 몇 명이 숨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빨치산 등 적대 세력이 생존자들을 추적해 그해 10월부터 1951년 1월 사이 신자 13명을 살해했다는 중요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 후 이들 중 희생 경위가 밝혀진 7명에 대해 진실규명하고 명단을 공개했다.

4월 17일 박선영 위원장이 수류성당을 찾았다. 박 위원장을 기다리고 있던 30여 명의 신자가 가슴 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풀어놨다.

한 노신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말했다. “제 아버지는 수류성당 재정부장이었습니다. 그동안 누구라도 아버지의 죽음을 말하려고 하면 애써 막았습니다. ‘말하지 말라고 듣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민군이 들이닥쳐 재정부장이던 아버지에게 쌀이며 곡식을 내놓으라고 했답니다. 아버지가 이들을 피해 수수밭에 숨었지만 동네 사람의 밀고로 잡혔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숨졌습니다.”

진화위 조사 결과 수류성당 외에도 신태인·상관·정읍·장수·고산·진안 등 전주교구 지역 7곳을 비롯해 서울 도림동·춘천 소양로·목포 산정동·당진 합덕 등 전국 각지에서 적대 세력에 의해 숨진 천주교인이 64명에 달했다. 박 위원장은 “2기 진화위 출범 후 직권조사를 통해 종교인 희생사건을 국가가 진실규명한 것은 처음”이라며 “재임 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밝혔다.

“모두 11차례에 걸쳐 공적기록과 참고인 진술 등을 통해 600명의 종교인 희생자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했습니다. 종교별로는 천주교인 64명, 개신교인 533명, 대종교인 3명입니다. 진실규명은 이들의 죽음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확인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기록과 증언이 부족해 그렇게 못한 분들이 더 많습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천주교에서도 희생자와 유가족들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선영 위원장이 4월 17일 수류성당을 찾아 희생자 후손, 주임 김대영 신부 등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출처=박선영 위원장 페이스북

 
박선영 위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진실규명 사건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수면 위로 올라온 선감학원 피해자의 절규

경기도 안산시 선감도에 위치했던 선감학원은 부랑아 보호 및 직업훈련 명목 아래 아동들을 강제 수용한 시설이다. 1942년 일제가 설립해 1946년 2월 경기도에 이관된 후 36년간 운영하다가 1982년 9월 폐원했다. 문제는 이 시설에서 벌어진 수용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인권침해였다.

이모씨는 1969년 형을 만나러 갔다가 수원에서 부랑아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혀 수용됐다. 그 후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혀 두들겨 맞고 며칠 동안 햇빛이 들지 않는 창고에 갇히기도 했다. 이런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진화위는 이런 피해자 63명에 대해 진실규명했다.

“저희가 원아대장 4689명을 분석한 결과, 퇴소 사유 가운데 탈출이 824명으로 무려 17.8에 달했습니다. 그만큼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6월 4일 서울고등법원 민사1부와 2부도 ‘국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장기간 이뤄진 중대한 인권침해’라며 선감학원 피해자 13명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분들은 이미 연로한 피해자들입니다. 정부는 무분별한 항소와 상고를 하지 말고 이 분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줘야 합니다.”

6·25전쟁 이후 한국에서 해외로 보낸 입양아는 약 20만 명에 달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가 영문도 모른 채 해외로 떠나야 했다. “2022년 미국·덴마크 등 11개국에 입양된 한인 375명은 자신들의 입양 서류가 조작된 의혹이 있다며 저희에게 조사를 요청했습니다. 그 결과 미아였던 아동을 고아로 기록하고, 입양알선 기관이 새로 인수한 아동을 기존에 수속 진행 중이던 아동의 신원으로 조작해 해외로 보낸 경우도 확인했습니다.”

박 위원장은 또 “6·25전쟁 초기 벌어졌던 서울대병원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1950년 6월 28~29일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 50여명과 성동구 노동당원 9명이 병실 곳곳을 다니며 병상 환자 150여 명을 총살했습니다. 전시에 전상병과 민간인 환자를 무차별적으로 살해한 것은 제네바 협약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자 인도주의에 반하는 명백한 전쟁범죄입니다. 이제라도 국가 차원의 추모사업을 서둘러야 합니다.”



진실은 있으나 화해는 없어

2기 진화위는 11월 26일 모든 활동을 종료한다. 2021년 조사를 개시한 후 4년 동안 전체 사건 2만 924건 중 1만 8808건을 처리했다. 그 과정에서 역사 속에 묻혀 있던 굵직한 사건을 여럿 해결했다. 박 위원장은 “진실은 확인됐지만 화해는 없다”며 진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배·보상의 불균형을 들었다.

“현재 군경에 의해 희생된 피해자나 유족에 대해서는 최대 1억 3000만 원의 배·보상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적대 세력이나 외국군(중공군)에 의해 희생된 분들에겐 전혀 배·보상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수류성당에서 희생된 7명이 진실규명됐지만 이들 유족은 한 푼도 받을 수 없습니다. 가해자가 누구든 피해를 본 국민은 균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롭게 대우받아야 합니다.”

다만 우리 사회가 진실규명을 넘어 배·보상에 집착하는 건 경계했다. “우리 진화위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모델로 삼았습니다. 남아공은 진실을 밝히는 데에 힘썼지, 배·보상을 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돈에 집착하면 화해는 쉽지 않습니다.”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박 위원장은 “3기 진화위가 출범한다면 적대 세력에 의한 희생자 배·보상법 제정, 진실화해재단 설립을 비롯해 저희가 규명하지 못한 삼청교육대 사건·형제복지원 사건 등 대표적 국가폭력사건을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이 과거사 정리의 모범국가가 되길 기원했다. “미래에 똑같은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져야 미래를 새롭게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박 위원장은 MBC 기자와 가톨릭대·동국대 법대 교수, 18대 의원을 지냈다. 조선 시대 순교 성인의 모범을 본받고자 세례명을 ‘매임 데레사’로 정했다. 남편 민일영 전 대법관은 불교 신자로 두 사람은 성당과 절을 오가며 봉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독도를 지키기 위해 독도로 본적을 옮길 정도로 행동력이 뛰어나다.

raelly1@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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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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