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사상가 루소는 인간의 감정이 신성하여 힘과 가치 면에서 다른 모든 것을 능가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종종 행복을 자신이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 상태인 ‘주관적 안녕감’이라고 규정한다. 이에 따르면, 개인이나 사회가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모두 감정들을 억누르는 데서 기인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스토아학파는 정념 또는 감정을 이성과 법에 위배되지 않기 위해서 그에 맞서 싸우고 버려야 하는 강렬한 감각 충동으로 취급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감정을 따라야 할까, 아니면 버려야 할까? 이 질문에 새로운 빛을 줄 수 있는 이론이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서 발견된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정념’에 대한 정의
토마스는 행복에 필요한 인간적 행위의 내적 원리를 탐구하면서, ‘정념’에 대한 논고를 가장 먼저 다루며, 엄청난 분량(I-II, qq.22-48)을 할애한다. 그런데 토마스는 ‘감정’으로 번역될 수 있는 ‘에모시오’(Emotio)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다른 단어(Affectus)를 사용할 때도 있지만, 주로 ‘파씨오’(Passio)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파씨오라는 단어는 무엇인가를 받는 것, 어떤 행위를 당하거나 거기에 종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토마스는 통상적으로 정념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를 “감각적 욕구와 관련해서, 영혼이 외부의 사물에 의해 움직일 때 일어나는 내적 변화”(I-II,22,1)라고 정의한다. 모든 감각 활동과 마찬가지로 정념은 육체적 변화를 수반한다.
사람은 화가 나면 얼굴이 붉어지고, 두려우면 창백해지고, 갈망이 있을 때는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그런데 정념과 관련된 육체적 변화를 직접적으로 일으키는 주체는 인식 능력이 아니라 욕구 능력이다. 더 나아가 정념은 지성적 인식이 아니라 감각적 인식을 따르는 현상이므로 의지가 아니라 감각적 욕구 능력에 속한다.(I-II,22,3), 즉 정념은 감각적으로 인식된 어떤 것이 유익(선)하거나 유해(악)하다고 평가될 때 발생한다.(I,78,4)
이와 같은 설명을 바탕으로 토마스는 정념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정념은 그 자체로 도덕적으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다만 그것이 이성에 따라 인도될 때 선이 되고, 이성에서 어긋날 때 악이 된다.”(I-II,24,1)
토마스는 인간이 정념을 느끼는 것 자체가 윤리적인 잘못은 아니지만, 정념에 휘둘려 행동할 때 책임이 따른다고 본다. 즉 분노를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이에 따라 공격적인 행동을 할 경우, 이성적 판단의 부재로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토마스는 감정을 버리라고 요구하지 않고, 인간 행동의 원동력으로 본다. 오히려 잘 훈련되고 이성에 의해 ‘길들여진 감정’은 도덕적 덕을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달콤한 음식에 갈망이나 즐거움을 느끼더라도 이를 절제할 수 있다면 건강이 유지된다. 이렇게 인간의 윤리적 정당성은 이성의 판단에 뒤따라 “결과되는” 정념에 의해서 증대될 수도 있다.(I-II,24,3,ad1)
따라서 토마스는 ‘정념’을 그 자체로 악한 것으로 보는 스토아적 관점을 비판하며, 고통은 오로지 이성에 의해서 조정되지 않았을 때만 혼란이나 질병으로 불릴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I-II,24,2)
‘욕정적 정념’과 ‘분노적 정념’의 구분
토마스는 더 나아가 정념을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 ‘욕정적(Concupiscibilis) 정념’은 그 자체로 선하거나 좋은 것으로 인식된 대상을 향해 끌리는 것으로 ‘무엇을 원하거나 갈망하는’ 내적 움직임이다.(I-II,22,2) 예를 들어 목마를 때 맑은 물을 향해 생기는 욕구나, 좋은 성적, 친구와의 우정에 대한 기대 등이 해당한다. 여기에는 사랑, 갈망, 기쁨과 이에 상반되는 감각적 악에 대한 반응인 미움, 등 돌림(꺼림), 슬픔이 속한다.
둘째, ‘분노적(Irascibilis) 정념’은 도달하기 어려운 선 또는 악을 대상으로 어떤 고통스러운 난관이나 불의, 방해에 맞서 저항하고 극복하려는 마음의 움직임이다. 여기에는 추구하기 어려운 선을 향한 자세인 희망과 담대함, 극복하기 어려운 악에 대한 반응인 절망과 두려움, 그리고 이미 겪은 악에 대하여 일어나는 분노가 속한다.(I-II,23,4) 토마스는 이렇게 정념을 11가지로 요약하는데, 각 정념은 ‘사랑-미움’, ‘기쁨-슬픔’, ‘희망-절망’처럼 서로 짝지어 대립하거나 연속되는 구조를 지닌다.
정념에 대한 적절한 조절이야말로 행복의 든든한 토대
토마스는 지나친 정념이 이성을 압도하여 도덕적 결정을 방해하고, 부적합한 행동 선택을 초래하는 것을 우려했다. 심지어 분노나 사랑 때문에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I-II,77,1) 비록 정념이 단독으로 행복을 결정하지 않더라도, 이성에 의해 잘 길들여지고 도덕적 덕과 결합될 때(I-II,59,5) 행복 실현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분노’라는 정념이 있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그 분노를 약자를 도우려는 실천과 정의 실현으로 인도한다면, ‘용기’라는 덕으로 승화될 수 있다. 이렇게 행복은 정념의 긍정적 형상화 및 통제에서 비롯하는 ‘참된 기쁨’, ‘완전한 즐거움’과 연결된다.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감정이나 정념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도, 무조건 버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스토아 철학처럼 지나치게 감정을 억누르거나 버리려 할 경우, 심리적 불균형이 생겨 내적 갈등과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 오히려 감정과 정념은 인간 존재의 본성에 속하며, 행복에 필요한 동력이자 경험이다. 그렇지만 감정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것도 인간을 짐승 차원으로 격하시켜 불합리하고 해로울 수 있다. 따라서 진정한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정념을 억압하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통제와 덕의 실천을 통해 올바르게 조절하고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토마스는 「신학대전」 제II부에서 정념에 대해 일반적으로 규정할 뿐만 아니라, 각각의 정념들을 철저히 다루며 일상에서 정념을 조절하는 실제적인 방법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그는 모든 정념의 출발점이 ‘사랑’(Amor)임을 강조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사랑으로부터 출발해서 중요한 정념들을 하나하나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겠다.
글 _ 박승찬 엘리야 교수(가톨릭대학교 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