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광복과 분단 80주년의 해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위원장 김주영 시몬 주교)가 8월 15일 ‘한반도 분단 80년 특별 사목서한’을 발표한 것 역시 한 민족이면서도 80년 동안 분단국가로 살고 있는 남북한의 현실을 직시하고, 남북한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교회는 분단 이후 줄곧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일관된 목소리를 내 왔다. 1945년 광복 이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한국교회가 남북 간 평화 정착과 통일 문제와 관련해 국내외에 전해 온 목소리를 살펴본다.
한국 주교단, 광복 이후 첫 연합교서에서 남북 분단 상황 우려
한국 주교단은 광복 이후 처음으로 1948년 2월 주교들의 연합교서를 발표하면서 남북 분단 상황에 우려를 드러냈다. 남북 분단이 주교단의 최우선적 관심사였음을 알 수 있다. ‘모든 감목의 연합교서’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교서에서 주교단은 “국토는 남북으로 분열되어 있고, 국민의 사상은 좌우로 분열되어 있어, 정치·경제·민생 각 방면에 혼란이 극도에 달하고 있다”는 말로 분단 현실을 표현했다.
주교단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4월 9일 ‘모든 감목들의 연합교서’라는 제목으로 다시 교서를 발표했다. 이 교서에서 통일정부를 수립하지 못한 남북한 상황을 “한국은 아직도 건설 도중에 있다”고 받아들이며 신자들의 어려움을 국가를 위하고, 교회를 위하는 정성으로 감내하라고 당부했다.
6·25전쟁 발발 넉 달 전인 1950년 2월 23일에는 ‘대한 천주교 주교 일동’ 명의로 ‘사회 질서 재건에 대하여 교도와 동포에게 고함’을 발표하면서 전쟁을 예견한 듯이 “20세기의 괴물 38선은 악마와 같이 이 국토를 양단하였고, 이어서 나온 정치적 혼란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건국 초의 백성됨의 어려움에 설상가상의 고난을 사정없이 추가했다”고 전했다.
한국교회는 6·25전쟁의 쓰라린 체험을 통해 국가 안보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됐고, 주한미군 철수 문제에도 민감하게 대응했다. 1977년 2월 21일 한국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는 메시지 ‘한국 민족 수난사에 도덕적 지원을’을 내고 미국 행정부가 추진 중이던 미군 철수 계획이 자칫 한반도 전쟁 재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세계 교회에 ‘도덕적 협조’를 요청했다.
한국천주교 정평위는 개헌을 앞두고 있던 1980년 1월 16일에는 건의문 ‘헌법 개정을 위한 원리적 건의’를 통해 “대한민국 헌법은 그 전문에 민족 통일을 위한 강인한 의지를 표방해야 한다”고 요청함으로써 통일이 민족의 과제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한국천주교 200주년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방한을 준비하던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주교위원회’ 위원장 윤공희(빅토리노) 대주교는 1984년 4월 29일 발표한 ‘한국천주교회의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도의 날 거행에 즈음한 성명서’에서도 “한국천주교회는 국민 여러분에게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자고 호소한다”고 말해 한반도 통일에 대한 교회의 지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한국천주교 정평위 명의로 1989년 4월 21일 나온 성명서 ‘현 시국을 우려하는 우리의 호소’는 노태우 대통령의 ‘7·7 선언’이 민족 분단 종식에 대한 희망을 줬지만, 정부가 민족의 과업인 통일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는 교회 입장을 전하며 실제적인 남북 상호 교류를 촉구했다. 한국천주교 주교단도 7월 27일 ‘민족 통일 문제 주교 간담회를 마치고’ 제목의 담화문에서 7·7 선언이 본래 취지대로 충실히 이행되기를 촉구했다.
남북 관계 위기 때마다 평화 촉구 메시지 발표
2000년대 들어 ‘북핵’ 문제가 남북 관계에 최대 변수로 등장하자 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는 2003년 10월 13일 ‘이 땅의 평화를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입장문을 발표하고 대화를 통한 평화적 방법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제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에 대해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와 정의평화위원회는 공동으로 10월 13일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통해 참을성 있는 대화와 1991년 남북이 공동 채택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실천을 강조했다.
주교회의가 2003년 이후 8년 만인 2011년 6월 17일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한반도 평화 기원미사’를 봉헌하는 기회에 주교회의 민화위는 호소문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를 촉구하며’를 발표하고, 한반도의 긴장 상태가 항구적으로 종식되기 위해서는 한반도 비핵화를 포함한 남북 군축 문제가 실질적으로 진전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가 이어지자, 한국 정부는 북한에 대한 제재 차원에서 2016년 2월 10일 개성공단 운영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남북 관계의 마지막 끈까지 끊어졌다는 위기의 목소리가 나오자, 주교회의 민화위와 정평위는 3월 6일 호소문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를 통해 남북 당국자들에게 “끝을 모르고 치닫는 대결 국면을 멈추고, 평화를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 줄 것”을 간절히 요청했다.
이러한 호소에도 북한이 2016년 9월 9일 제5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주교회의 정평위는 9월 12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호소문’을 발표해 북한에는 핵실험과 핵무기 개발 포기를, 우리 정부와 세계 기구에는 평화 구축을 위한 북한과의 적극적인 대화를 재차 요청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북한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선수단과 응원단, 예술단을 파견하기로 했다. 주교회의 민화위는 1월 19일 담화문 ‘평화의 여정을 시작하며’를 발표하고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듯 “우리는 평화를 향한 긴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고 호응했다. 아울러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공동 선언문이 나오자, 당시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히지노) 대주교는 같은 날 ‘남북 정상회담 공동 선언문에 대한 주교회의 의장 담화’를 통해 “한국천주교회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여정에 한마음으로 동행하겠다”는 의지를 표했다.
불행히도 윤석열 정부 들어 남북 관계가 단절되고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자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는 2024년 11월 5일 ‘한반도 긴장 고조에 대한 한국천주교회의 호소문’을 발표하고, “한국교회는 한반도의 긴장을 예의주시하고 이 땅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남북이 상호 간에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남북 만남의 장 회복하고 넓혀야
남북 관계 해법을 연구해 온 변진흥(야고보)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 자문위원은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선제적으로 남북 화해 조치를 하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라며 “새 정부는 이전 정부가 훼손한 남북 관계 복원을 위한 법적, 제도적 회복 조치에 나서야 하고, 한국교회도 이에 기도로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 중에는 북한을 적대시하고 남북 교류를 부정적으로 보는 분들도 있지만 남북 관계를 회복하려는 현 정부에 협력해 주기를 바란다”고도 덧붙였다.
북향민 지원 사업을 하는 조성하 신부(도미니코·도미니코수도회) 역시 “정부는 인도적인 민간외교, 그중에서도 남북 종교인들 만남의 장을 적극 지원하고 차츰 남북 교류의 범위를 넓혀 가면 좋겠다”면서 “과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사업처럼 남북이 경제, 사회, 문화 분야에서 실질적 교류를 진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