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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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블랙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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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사흘 폭우가 퍼부었다. 지붕을 뚫어버릴 듯 거센 비였다. 비가 그친 날은 대녀가 견진 성사를 받는 날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둘러보니 집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즐겁게 서울로 갔고, 축복 가득한 견진성사 예식 참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뒤뜰로 나갔는데, 축대가 무너지고 뒤뜰의 3분의 1이 없어졌다. 장미 아치와 장미 덩굴도, 곧 개화할 연보랏빛 꽃범의 꼬리 군락도 완전히 사라졌다.

 

내 가슴 면적의 딱 그만큼이 무너져 사라진 것 같았다. 잠시 망연해하다가 집안으로 돌아왔다. 대한민국의 행정부에서는 이런 답들이 돌아왔다. “농작물에 피해가 있습니까” 아니면 “살고 있는 방이 부서졌나요?”, “둘 중의 하나가 아니라면 보상도 없고, 집계에도 낄 수 없어요. 당신이 공사를 부실하게 한 탓이죠”라고. “이걸 복구해 주실 분을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라는 물음에는, ‘지금 복구해야 할 곳이 한두 곳이 아닌데 장비가 있겠습니꺼?“라고 했다. 경상도 사투리는 왜 이럴 때 더 거칠고 퉁명하게 느껴지는지.

 

 

그들을 비판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나는 일생을 두고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대응을 시작했다. 일단, 그것을 보지 않고 생각하지도 않고 잊어버렸다. -그러려고 노력했다. - 좋아하는 인도식 매운 카레를 만들고, 밀가루 반죽을 발효시켜서 난도 구웠다. 전기를 아끼느라 여리게 조절해 놓았던 에어컨을 세게 틀어놓고 재미있는 영화를 보았다. 절대로 뒤뜰로 나가지도 그곳을 바라보지도 않았던 거다.

 

 

그건 아마도 내가 이제 고통 혹은 시련의 본질이 무엇인지 얼마간 알게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고통은 블랙홀과도 같아서, 그건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하니까. 나는 그저 쉴 새 없이 기도했다. “뜻이 있으시겠지요. 도와주세요.”

 

 

이틀 정도 지나고 나자 약간 충격이 가시면서 몇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먼 곳에 계시기는 하지만 좋은 분들의 얼굴들이 떠올랐고 흔쾌히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때까지 나는 아무에게도 이런 말들을 하지 않았는데, 그때야 비로소 이야기들을 조금씩 털어놓았다. 친구들이 “힘들었겠다” 했다.

 

 

잠시 생각하다, 나는 대답했다. “힘? 그것보다 돈이 문제지, 뭐.” 그래 돈의 문제였어, 내 문제가 아니라. 나는 처음으로 내 문제와 돈의 문제를 핀셋으로 고르듯 구분해 냈다. 그러니까 내가 돈이 없다는 문제이지, 돈이 없는 내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자 비로소 이 와중에도 평화가 왔다. 공사비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도 차분히 세워졌다.

 

 

가끔 나는 인생이 허들 경주 같다. 하나의 허들을 넘으면 더 높은 다음 허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을 놓으신 분은 그분이신 듯하다. 이 허들들을 하나씩 넘다 보면 내 높이뛰기 실력이 조금은 더 향상될 거고, 어느 날은 그분이 내 어깨 밑에 두 손을 넣으시고 열심히 뛰어오르려는 날 번쩍 들어 데려가시겠지. “백 년은 갈 겁니다.” 새로 완성된 축대 앞에서 포클레인 기사분의 말씀을 들으며, 나는 작다면 작은 이 시련이 감사로 바뀌는 기적을 체험한다. 복된 여름날이다.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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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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