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 우리에게 1945년 여름은 일제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한 해방의 계절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여름은 전쟁의 끝자락, 수많은 생명이 기울어진 전선에도 죽어갔으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투하되며 인류 역사에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일어난 계절이기도 하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수많은 민간인을 희생시킨 결과는 단지 전쟁의 종결만이 아니다. 그것은 가해와 피해의 서사가 뒤엉킨 채 기억의 방식까지도 분열시키는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1945년 8월의 기억은 한국의 광복과 일본의 패전, 그리고 세계가 목격한 핵의 파괴력이라는 서로 다른 지층 위에 쌓여갔다. 일본은 이 시기를 ‘전쟁 피해의 기억’으로 기념하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의 원폭 피해를 강조한다. 이 기억은 주로 전쟁의 참혹함을 강조하는 동시에, 침략 전쟁의 책임을 흐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일본 제국주의가 오랜 세월 아시아 이웃 나라들에 가한 침략과 식민 지배, 그리고 대동아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만행에 관한 책임과 사죄는 희미하게 자리할 뿐이다.
과거의 아픔을 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화해를 향하자는 주장 역시, 그 안에 권력의 비대칭성이 작동할 때 다분히 문제적이다. 특히 용서의 맥락과 조건을 무시한 채 피해자에게 용서가 강요될 때, 이는 또 다른 폭력과 다름없다.
그리스도의 용서는 이러한 맥락 속에서 자주 오해된다. 실제로 가정 폭력 피해자들 가운데 가장 깊은 내적 고통을 겪는 이들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인들이라는 보고도 있다. 교회 안에서조차 ‘용서의 신학’이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도구로 기능해온 탓이다. 피해자들은 너무 자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가해자를 용서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고통받으셨듯이 우리의 고통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그 말은 폭력의 지속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작동하며, 피해자에게는 상처 위에 침묵을 덧씌우는 이중의 고통이 되기도 한다.
한편 우리는 자신을 피해자로만 여기는 익숙한 서사에서 벗어날 용기가 있는가. 한국은 분명 긴 식민의 역사를 견뎌낸 피해자였지만, 현대사의 어느 시점에서는 가해자의 위치에 서 있기도 했다. 예컨대 베트남 꽝남성 퐁니·퐁넛 마을에서 발생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은 오늘날까지도 진상 규명과 사과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역사의 법정 앞에서 우리 역시 단순한 피해자일 수는 없음을 인정할 때, 누구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정직한 기억에 기초한 용서와 화해의 과정은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용서는 과거를 덮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그런 과거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다짐임을 믿는다. 해방이면서 또 다른 억압이었고, 빛이면서 동시에 어둠이기도 했던 80년 전의 여름을 기억하며,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어떻게 용서하고, 무엇을 사죄하며, 왜 기억해야 하는가?
정다빈 멜라니아(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