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목실(병원)에서 가장 많이 집행되는 성사가 무엇일까요? 바로 병자성사입니다. 사제들은 병자성사(도유-안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 손길을 환우들에게 전하고, 이를 통해 환우들은 예수님 현존을 깨닫고 은총을 받으며 그분의 고통과 시련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병자성사에 집중하고 있던 원목실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일반병상에서 혼인성사를 집행하는 것이었습니다. 혼인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병실. 꽃향기가 아닌 약품 냄새 속에서, 아름다운 성가가 아닌 여러 기계의 소음 속에 혼인성사를 봉헌할 수 있을까?
가슴 아프게도 전이가 빠른 암에 걸리셔서 남은 시간이 한 달 정도인 환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떤 도움을 원하는지 물으니 정말 의외의 답변을 하셨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단 하루만이라도 상관없으니 꼭 주님 은총과 혼인성사를 통해 한 부부로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준비와 교육받을 시간이 부족해 혼인성사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 늘 응어리로 남아있었습니다.”
어렵게 성사가 준비되고 신랑·신부가 친지들과 병상 위 혼인성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얀 드레스 대신 하얀 환자복을 입었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신부였습니다. 수액이 달린 가녀린 손으로 반지를 들고 남편에게 혼인서약을 하는데 지켜보는 모든 이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남편으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일생 신의를 지키며 존경할 것을 약속합니다.” “나의 사랑과 신의의 표지로 당신께 드리는 이 반지를 받아 주십시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드립니다.”
이 순간만큼은 암도 죽음도 힘을 잃는 사랑의 시간이었습니다. 혼인성사가 끝나고 주님 은총으로 태어난 부부 한 쌍의 웃음과 손을 꼭 잡은 모습을 보면서 사랑이 지닌 위대함과 영원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병원과 원목실은 상실과 소멸만이 있는 곳이 아니라 사랑과 완성이 넘치는 곳이기도 합니다.
서울대교구 병원사목위원회 부위원장 조성동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