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4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성 십자가 경배의 산실’ 하일리겐크로이츠 시토회 수도원

[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38. 오스트리아 하일리겐크로이츠 시토회 수도원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 1133년 오스트리아의 변경백 레오폴트 3세가 설립한 시토회 수도원으로 성 십자가 성유물이 보관되어 있으며, 전례·그레고리오 성가로 유명하다. 현재 23개 본당을 맡아 사목하고 있다. 수도원 아래 건물은 1802년에 설립된 수도원 대학교로 약 340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으며, 교구 신학교 역할을 맡고 있다. 왼편 언덕으로 순례자들을 위해 조성한 십자가의 길이 보인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서쪽으로 20여㎞ 떨어진 곳에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하일리겐크로이츠 시토회 수도원이 있습니다. 원래 이 지역은 깊은 숲과 골짜기로 이뤄진 인적 드문 곳으로 ‘빈의 숲(Wienerwald)’이라 불리지요. 1133년에 오스트리아 변경백 성 레오폴트 3세에 의해 수도원이 설립된 뒤로 주변에 사람이 모여들면서 마을도 생겼습니다.

하일리겐크로이츠는 ‘성 십자가’란 뜻으로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은 성 십자가에 봉헌된 수도원입니다. 제3차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던 오스트리아 공작 레오폴트 5세가 예루살렘의 왕 보두앵 4세에게 성 십자가 성유물을 선물 받아 1185년 수도원에 모셨습니다. 그 후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려는 순례자의 발길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요.
성 십자가 성당. 수도원이 본당 사목을 위해 1982년 수도원 성당 옆에 새로 지어 봉헌한 성당으로 2023년에 주님의 수난을 주제로 한 성화 중심으로 성당을 리모델링했다. 제대에 적갈색의 성 십자가 성유물이 모셔져 있다. 가로 6.2cm/10.7cm 세로 23.5cm 이중 십자가 형태로 다섯 개 나무 조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도원 가대석(1707). 24개 좌석으로 구성된 가대석 상단에는 성경의 인물과 성인들이 묘사되어 있고, 전면에는 말씀과 묵상의 자리에서 영혼의 꽃이 피어나는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오스트리아 지역 사회 형성에 기여한 시토회 수도원

그런데 시토회? 우리나라에는 시토회 수도원이 없어 낯설겠습니다만, 간단히 말해 12세기 초 성 베네딕토의 수도 규칙을 좀더 엄격히 준수하며 살려고 새롭게 탄생한 개혁 수도회입니다. 1098년 프랑스의 시토에 세워진 수도원 이름에서 따왔고, 1112년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가 입회하면서 수도회가 급성장합니다.

10세기부터 베네딕도회 수도원은 내부로는 기도 중심의 장엄한 전례, 외부로는 세속 권력으로부터 자율성 회복을 주창한 클뤼니 수도원 개혁의 영향 아래 있었습니다. 교황의 힘을 빌려 세속 영주의 영향력을 막았고, 수도원 내부 규율을 강화하며 교회 개혁을 해갔죠. 그런데 12세기부터 오히려 세속 권력과 더 밀접한 관계를 지니게 됩니다. 한때 서임권 논쟁에서 교황을 지지했던 큰 수도원들을 황제와 그 측근들이 통 큰 기부로 자기편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한 겁니다.

그 결과 수도원은 부유해졌고, 광대한 수도원 땅을 위해 평민들이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됩니다. 본래 이상과 달리 노동을 소홀히 한 채 기도에만 치중하고, 귀족처럼 관리만 하다 보니 수도원 영성의 침체는 불가피했습니다. 이를 바로잡고자 등장한 것이 시토회입니다. 수도 규칙을 엄격히 준수해 기도와 노동의 균형을 맞춰 세속의 도움 없이 자급자족 생활로 되돌아가려 했죠.

레오폴트 변경백이 시토회 수도원을 설립한 배경에는 프랑스 시토회 수도자였던 아들의 청이 컸지만, 산지가 많은 오스트리아에는 시토회 수도원의 테라포밍(terraforming) 능력이 절실했을 겁니다. 시토회는 외딴 황무지를 개간하며 농업과 수리 기술·목축업·포도 재배 등에서 혁신을 주도했고, 수도원 주변에 마을도 생기며 발전해나갔기 때문입니다. 실제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이 설립된 후 알프스 이북에 20여 개 시토회 수도원이 더 설립됐으며, 오스트리아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 안뜰의 삼위일체 기둥(14m). 1739년 조반니 줄리아니가 제작한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기둥이 세워져 있다. 하단부에 베네딕토·베르나르도·레오폴트의 성상이 배치되어 있다. 전염병이 창궐했던 시기 하느님의 보호에 감사하며 세웠다고 한다. 뒤로 1185년 성 십자가에 봉헌된 수도원 성당 입구가 보인다.


오스트리아 최대 순례길 ‘비아 사크라’의 영적 쉼터

오늘날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을 찾아가기는 쉽습니다. 빈에서 기차와 버스로 농촌 포도밭과 숲 속 풍경을 즐기다 보면 이내 수도원 마을입니다. 수도원을 둘러싸고 인구 1500여 명이 사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지요. 위치에 비해 교통이 편리한 이유는 수도원이 빈에서 마리아첼 성모 순례지로 이어지는 오스트리아 순례길인 ‘비아 사크라’의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버스에서 내려 수도원 단지 사이로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수도원 정문이 나타납니다. 수도원 안뜰에는 14m 높이의 거대한 삼위일체 기둥과 함께 수도원 성당이 보입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단순하고 절제된 장식이 이곳이 내면의 아름다움과 소박함을 지향하는 시토회 수도원임을 명확히 드러냅니다.

수도원 성당에 들어서면 천개(天蓋), 석조 구조와 세밀한 첨탑 장식이 돋보이는 네오고딕 양식의 주 제대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때마침 시간 전례(성무일도) 시간입니다. 13세기 고딕 창으로 들어오는 빛 속에 하얀색 수도복을 입은 수도자들에게서 은은히 울려 퍼지는 그레고리오 성가가 보는 이를 중세로 빨아들입니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의 성체 거동 행렬(위)과 성 십자가 축복(아래).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이 있는 주일에 성 십자가 강복이 있다. 이날 고해성사·영성체·교황님의 지향 기도를 봉헌하면 전대사를 얻는다.

성 십자가 공경의 산실

지금 다각형 수도원 단지는 오스만 튀르크의 공격으로 수도원이 파괴된 후 18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증·개축한 것입니다. 동시에 성 십자가를 경배하려는 순례 붐이 일어납니다. 수도원은 성 십자가 신심 단체인 형제회도 설립하고, 십자가의 길도 새롭게 조성하지요. 성 십자가 신심은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인 9월 14일 절정에 달했습니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순례는 요제프 2세 황제의 억압 정책으로 잠시 멈추지만, 19세기 후반에 다시 시작됩니다. 1933년 9월 오스트리아 가톨릭의 날 행사 주간에 맞춰 빈의 슈테판 대성당에 성 십자가 유물을 모셨는데, 수많은 이들에게 회개의 기회가 됐지요.

현재 성 십자가 성유물은 수도원 묘지 옆 현대식 성 십자가 성당에 모셔져 있습니다. 1982년 새롭게 봉헌한 성당으로 중앙 유리 제단에 성 십자가의 성유물이 모셔져 있습니다. 2000년 희년부터는 옛 전통에 따라 사순 시기 주일에 성 십자가를 모시고 신자들과 야외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주님 수난을 묵상하고 있지요.

가끔 성유물이 진짜인가 묻는 분이 계십니다. 하긴 유럽에 있는 조각만 모아도 몇 개는 나올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유럽의 다른 성유물처럼 진위가 핵심은 아닙니다. 집에 걸려 있는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는 것처럼 성 십자가 성유물 경배를 통해 우리를 구원해주신 그리스도의 행위를 절실히 느끼고 그 수난에 동참하고 싶었던 천 년의 시간, 그 정신이 핵심이겠죠. 일상의 순례에 대한 초대장도 그런 연장선상입니다.
 
<순례 팁>

※ 빈 중앙역에서 바덴역 또는 뫼들링역 이동(S3, REX, 30분 소요) 후 버스 이용(Postbus 364, 365, 25분 소요)

※ 수도원 투어(45분, 오디오 가이드) 추천. 마리아첼 도보 순례자를 위한 순례자 숙소(순례자 여권 및 스탬프).

※ 수도원 전례 : 주일 및 대축일 미사 08:30· 9:30·11:00·18:45, 평일 미사 06:25·08:00 (금·토), 18:00(월/대학교 카타리나 소성당), 18:45 / 매일 5차례 시간 전례.

※ 유럽의 다른 순례지에 관한 알찬 정보는 「독일 간 김에 순례– 뮌헨과 남부 독일」(분도출판사 2025)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08-13

관련뉴스

말씀사탕2025. 8. 14

갈라 5장 13절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