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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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예레미야 [류재준의 음악여행](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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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언자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요한 사도를 필두로 아브라함·모세·미리암·이사야·사무엘·에제키엘·말라기·욥 등이다. 모세는 유다교에서 가장 중요한 예언자로 여겨진다.

오늘 제1독서에서 언급하는 예언자 예레미야는 구약 성경의 저자이며 교회 전승에 따르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하필 주요 활동 시기가 유다의 멸망 직전이라 예루살렘에 나타날 심판만을 전했기 때문에 그를 좋아할 수 없었다. 그를 증오하고 배척하는 무리에게 갖은 핍박을 당하다 이집트로 피신하였다. 모세가 유다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탈출하지만 후대의 예언자가 피신을 위해 이집트를 찾은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다.

예레미야는 그의 암울한 예언들과 바빌로니아에 복종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선포함으로써 제사장과 다른 예언자들에 의해 소송을 당하거나 매국노로 찍혔으며 반국가 사범으로 몰려 여러 차례 고문과 투옥을 당했다. 나라의 운명을 가른 갈그미스 전투 이후 메소포타미아 땅으로 강제로 끌려온 유다인들에게 “70년 후에나 돌아갈 수 있다”라는 예레미야의 말은 에제키엘을 포함한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들은 분노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백성인데 우리를 버릴 리가 없지 않습니까?”라며 예레미야를 거짓말쟁이로 몰았다. 이런 이유로 그를 눈물의 예언자, 수난의 예언자라 부르기도 한다.

예언자들은 분명 지도자나 대표와는 다르다. 이들은 동향 사람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을 위해 활동하는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희망에 찬 달디단 거짓이 아닌 진실만을 이야기하고 이를 소리 높이 외친 이들은 배척당하고 경원시되었다. 예수께서도 예언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못 받는 것은 숙명이라고 하실 정도였다.

사실 예언자는 자칫하면 무속적인 혹세무민의 대명사가 되기도 하며, 사교의 대부분이 이런 가짜 선지자에 의해 만들어진다. 예레미야를 가장 괴롭힌 이들이 동시대의 다른 예언자들이었다. 우리도 바로 얼마 전 몇몇 거짓 선지자에게 홀린 지도자를 보았고 그 폐해를 보았다. 가짜 선지자의 선동에 넘어간 사람들을 보면 이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님께 갈구할 수밖에 없다.

유다인인 레너드 번스타인의 교향곡 1번의 제목이 ‘예레미야’다. 유다인의 아픈 역사와 선지자의 고행을 장대하게 그려낸 20세기 교향곡의 정점이다.

Bernstein: Symphony No. 1, “Jeremiah”

//youtu.be/1XZUhHAftgI?si=Lugn4Jjm_VRnXHm1

르네상스 시대의 작곡가 라수스(Orlande de Lassus 1532~1594)의 곡도 들어볼 만하다. ‘예레미야의 비탄’이라는 작품인데, 목·금·토요일에 연주하는 작품이 각각 다르다. 자신의 예언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동포의 불행한 앞날을 걱정하는 예언자의 아픔에 동감해보자.

Lassus: The Lamentations of the Prophet Jeremiah

//youtu.be/XM__o0DKORI?si=698qNAxkuXvUkAVu













작곡가 류재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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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3장 4절
저는 하느님의 제단으로, 제 기쁨과 즐거움이신 하느님께 나아가오리다. 하느님, 저의 하느님 비파 타며 당신을 찬송하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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