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만물과 약자에게 주님 사랑을 전하는 사회사목에 헌신
2014년 2월 5일 주교 서품식에서 정순택 대주교(현 서울대교구장)와 함께 주교품을 받은 유경촌 주교. 염수정 추기경과 이한택 주교 이후 12년 만의 '쌍둥이 주교' 탄생에 온 교구민이 한마음으로 기뻐했다.
“주님 말씀에 따라 솔선수범하며, 교구장님의 좋은 협력자로서 주어진 일을 성실히 수행하겠습니다.”(2013년 12월 30일 주교 임명 발표 후 첫 인터뷰)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서울대교구 보좌 주교이자 푸피(Puppi) 명의 주교로 임명된 날. ‘어떤 주교가 되길 원하느냐’는 질문에 고 유경촌(티모테오) 주교가 답한 말이다.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담당 교구장대리 유경촌 주교가 2023년 10월 29일 명동대성당에서 교구 사제단과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 미사를 집전한 뒤, 유가족의 손을 잡으며 위로하고 있다.
교회와 사회 잇는 데 헌신한 주교
이듬해인 2014년 2월 5일 주교품을 받은 뒤 유 주교는 처음 다짐을 잊지 않았다. 줄곧 사회사목담당 겸 동서울담당 교구장대리를 맡아 교구 사목에 헌신했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와 한마음한몸운동본부·한국중독연구재단(KARF)·서울가톨릭청소년회·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등 그가 이사장을 맡았던 굵직한 단체와 기관들의 면면은 모두 교회와 사회를 잇는 가장 중요한 사회사목 분야였다.
유 주교는 그렇게 ‘정의·평화·창조보전 활동’(JPIC)으로 세상 만물과 약자에게 주님 사랑을 전하는 사회사목에 헌신했다. 그는 이웃을 만나는 교회의 얼굴이었고, 특별히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돕는 데 더 열성을 다했다. 여러 차례 쪽방촌 주민과 노숙인들에게 일용한 양식을 손수 배달하고, ‘산타클로스’가 돼 투병 중인 어린이 희소병 환자에게 선물을 직접 나눠준 주교였다. 명동대성당 앞 노숙인을 그냥 지나친 적이 없을 정도로 볼 때마다 챙겼고, 해마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가 서울역 등지 노숙인을 찾아가는 때에 늘 동행했던 유 주교는 한 노숙인에게 선뜻 자신의 패딩을 벗어주고 온 일도 있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22년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위해 미사를 봉헌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며 연대를 표하는 일선에도 늘 유 주교가 있었다.
쪽방촌 도시락 나눔 봉사에 참여한 유 주교. 2020년 3월 21일 교구 단중독사목위원회가 운영하는 가톨릭사랑평화의집 봉사자로 서울역 인근 400가구에 음식을 전달했다.
유 주교는 2014년부터 올해까지 병환 중에도 해마다 ‘장애인의 날’ 담화를 통해 ‘교회가 약자에게 친화적인 공동체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으로서도 ‘자선 주일’ 담화를 통해 이웃 사랑을 독려했다.
그렇게 주교로서 10년간 두 교구장(염수정 추기경·정순택 대주교)을 보필한 유 주교는 수많은 신자의 기도 속에도 암 투병 끝에 15일 지상 여정을 마무리하고 하느님 품에 안겼다.
늘 겸손하고 소박한 성품을 지닌 목자. 가난하고 약한 이를 향해 깊은 사랑을 품은 성직자. 일찍이 창조질서와 환경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노동·환경·농민·장애인 등 이웃을 두루 챙겼던 주교. 1992년 1월 30일 사제품을 받고 33년간 사제요 주교로서 유 주교가 보여준 면모다. 그 됨됨이는 자신을 주교로 임명한 프란치스코 교황과도 닮았다.
2021년 11월 가을, 서울대교구 주교단이 모처럼 명동대성당 일대를 함께 거닐던 때의 모습.
타고난 사랑의 소유자
유 주교는 1962년 9월 4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 유탁(베드로)·박금순(루치아)씨 사이 4남 2녀 중 막내였다. 방송연출가 고 유길촌(레오)씨가 큰형, 유인촌(토마스 아퀴나스)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셋째 형이다.
먼저 신자가 된 가족을 따라 유 주교는 중학교 1학년인 1975년 서대문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성당에서 여러 권 빌려 읽은 성인전은 그에게 ‘복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심어줬다. 중학생 복사가 있는 주교좌 명동대성당까지 가서 전례 봉사를 했다.
복사로 활동하면서 사제의 꿈을 키운 그는 3년 뒤인 1978년 서울 성신고등학교(소신학교)에 입학했다. 1981년 가톨릭대학교(대신학교)로 진학하자 동기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성인 사제 되려면 경촌이처럼만 하라.’ 성품이 바르고 성적이 우수한 데다 교우관계가 좋았기에 동료 선후배 사제들이 모두 좋아했다.
유 주교는 장애인을 비롯한 약자를 돕는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무의탁 결핵환자 요양시설 ‘희망의 집(경기 양평)’를 자주 찾아 함께 기도했다. 가장 낮은 곳을 향한 유 주교의 관심과 사랑은 훗날 사회사목담당 교구장대리로 사목하는 데 자양분이 됐다.
주교 수품 성구 역시 그의 이웃 사랑 정신을 드러낸다. “서로 발을 씻어 주어라”(요한 13,14).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에게 한 마지막 당부다.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겸손과 사랑·희생을 통해 진심으로 이웃을 섬겨야 한다는 뜻이다.
유경촌 주교가 2014년 6월 24일 새로 단장한 서울 건국대학교에서 원목실 축복미사를 주례한 뒤, 환자를 축복하고 있다.
2016년 12월 20일 부천성모병원에서 열린 환아들을 위한 '산타가 되어 주세요' 캠페인에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이사장으로 참여한 유경촌 주교.
창조질서에 주목한 윤리신학자
유 주교는 독일에서 10년 넘게 공부한 윤리신학자다. 처음 유학을 떠난 때는 대신학교 4학년 과정에 군 복무까지 마친 1988년.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윤리신학을 전공했다.
1992년 사제가 된 이후로도 배움은 이어졌다. 1998년 마침내 프랑크푸르트 상트게오르겐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땄다. 졸업 논문 주제는 ‘공의회적 과정에서의 창조질서 보전 문제’였다. 당시 유럽은 정의·평화·창조질서 보전을 주제로 교회 일치 운동이 활발했다. 마침 한국에선 산업화로 인한 환경 파괴 문제가 심각했다. 유 주교는 ‘창조질서 보전’에 주목, 윤리신학적 관점에서 고찰했다.
유경촌 주교가 타고다닌 은색 프라이드. 유 주교의 근검절약하는 생활습관을 보여준다.
본래도 검소했던 ‘유학생 유경촌’의 일상은 부족한 교구 지원으로 인해 철저한 근검절약이었다. 그때 습관이 몸에 익어 유 주교는 30년이 넘는 사제생활 내내 소탈하게 살았다. 주교 임명 당시 어느 동기 사제는 “(주교님이) 아직도 속옷을 손수 꿰매 입고 20년이 된 소형차를 타고 다닌다”고 했다.
1999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유 주교는 목5동본당 보좌로 첫 사목을 시작했다. 그러나 6개월 만에 대신학교 교수로 발령, 10년간 교단에서 윤리신학을 가르치게 된다. 겸손한 그는 신년 하례 때 신학생들에게 세배를 받지 않으려 성당 제대에 안 올라가기도 했다.
교수 시절인 2004년 유 주교는 실천을 강조한 사순 묵상집 「내가 발을 씻어준다는 것은」을 처음 펴냈다. 2018년 개정 증보판 「사순, 날마다 새로워지는 선물」로 나왔다. 또 윤리신학자로서 주교가 된 뒤인 2014년 펴낸 「21세기 신앙인에게」은 그의 논문을 발췌한 가톨릭 사회 교리 해설서다. 개인 신앙부터 생태 환경까지 여러 분야를 조명했다. 2022년 펴낸 「우리는 주님의 생태 사도입니다」는 생태 위기 시대 가톨릭 사회 교리를 다뤘다. 2000년 무렵부터 생태와 관련해 사회에 경종을 울리며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유 주교의 목소리가 담긴 이 책은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와도 상통한다.
2008~2013년 교구 통합사목연구소 소장을 지내는 동안 유 주교는 교구 사목을 더 효율적·체계적으로 뒷받침할 「서울대교구 규정집」을 펴냈다. 교구 설정 180주년을 맞아 추진한 작업으로, 교구 행정을 한 단계 발전시킨 업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에서 활동 시절 모습.
마음을 움직이며 소통한 목자
유 주교는 노래를 즐겨 부르고 잘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에서 활동했다. 그레고리오 성가 등을 부르며 세례 전에 이미 교회 음악에 푹 빠졌다.
‘자모신 마리아’(가톨릭 성가 238번)는 유 주교의 애창곡이었다. 그 노래가 한 번은 그를 울렸다. 2014년 2월 5일 주교 서품식에서였다. 반년도 채 안 돼 주임 신부를 떠나보내는 명일동본당 신자들이 이 노래를 합창했다. 새 목자는 눈물을 참지 못했고, 축하 잔치가 잠시 울음바다가 됐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2016년 5월 26일 명동대성당에서 교구 청년들을 위한 고해성사와 미사가 있던 날. 유 주교는 미래 고민과 불안이 가득한 청춘들을 향해 ‘걱정말아요 그대’를 불렀다. 그리고 그해 여름, 유 주교는 폴란드 크라쿠프 세계청년대회(WYD)에서 젊은이들에게 이 노래를 한 번 더 불렀다. 주교가 부르는 위로의 노래는 청년들에게 큰 힘이 됐다. 유 주교는 그렇게 모든 세대와 마음으로 함께했다. 노래 가사대로 그는 모두의 지나간 아픔을 안아줬고, 후회 없이 사랑한 주교였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