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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유경촌 주교 선종] 삶과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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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품을 받은 지 10년도 더 지났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발을 제대로 닦아주지 못했습니다. 고통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의 발도 닦아주지 못한 채 1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습니다.”

 

2024년 12월 25일. 서울대교구 명일동본당 신자들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서울대교구 유경촌(티모테오) 주교의 편지였다. 그는 10년의 주교 직분을 겸손하게 이야기하면서 “이제는 많은 분이 제 병의 치료를 위해 오히려 제 발의 더러움을 씻어주고 계시다”며 모든 신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평생 이웃의 발을 씻어주고도 “제대로 닦아주지 못했다”고 겸손되이 고백하던 목자.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새벽 선종한 유 주교의 삶과 신앙을 돌아본다.

 

 

■ 신앙을 향한 열망을 키운 어린시절

 

 

1962년 서울에서 여섯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유경촌(티모테오) 주교는 세례받은 둘째 누나를 따라 중학교 1학년 때 서대문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명동성당에서 복사를 서며 사제를 꿈꿨다. 그는 가톨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복사를 서고 싶은 마음 하나로, 어두컴컴한 새벽길도 신나게 내달렸었다”고 회상했다. 복사단으로 전례 봉사를 하고 서울시립소년소녀합창단 활동을 통해 그레고리오 성가의 경건함과 아름다움에 매료된 그는 1978년 서울 성신고등학교(소신학교)에 입학하며 성소의 꿈을 키워 나가게 된다.




 

 

■ 정의와 평화를 깊이 탐구한 사목자

 

 

가톨릭대학교 대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유 주교는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를 거쳐 프랑크푸르트 상트게오르겐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논문 주제는 「공의회적 과정에서의 창조 질서 보전 문제」로, 생태윤리와 사회윤리, 정의와 평화를 깊이 탐구했다. 귀국 후에는 목5동 본당 보좌신부로 짧게 사목을 시작했고, 이후 대신학교 윤리신학 교수로 부임해 후학을 양성했다. 이어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 소장으로서 교구 사목 체계 정비, 규정 마련, 전문 인력 양성 등 교회 행정과 현장 사목을 잇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2013년 12월 30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된 유 주교는, “왜 저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순명과 기도를 선택했다. 2014년 2월 5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당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주례로 거행된 서품식에서 그는 “착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의 발을 씻어주며 겸손과 사랑, 희생을 통해 진심으로 이웃을 섬겨야 한다고 당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모토로 사목표어를 “서로 발을 씻어 주어라”(요한 13,14 참조)로 삼았다.



 

 

■ 사랑으로 이웃의 발을 씻어 주다

 

 

주교 임명 이후 유경촌 주교는 특별히 사회사목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서울대교구 사회사목 담당 교구장 대리로서 “사회적 약자 돌봄은 신앙의 필수 요소”라 강조했고, 교구의 환경사목, 빈민사목, 이주사목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발로 뛰었다. 2020년 농민 주일 미사에서는 도시와 농촌이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며 “농민뿐 아니라 도시민 모두를 위한 주일”이라고 전했다.

 

 

주교회의에서는 사회홍보위원회, 사회주교위원회,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언론과 소통을 통한 복음 선포, 공공선 증진, 사회적 위기 대응에 앞장섰다. 그는 사회사목이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 ‘복음이 세상 속에서 숨 쉬게 하는 일’임을 일관되게 설파했다.

 

 

유 주교는 사회의 아파하는 이들을 만나는 일에 앞장섰고, 동시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교회의 잘못에 대해서도 무거운 책임을 통감했다. 2018년 성가정입양원을 통한 입양 절차 중 발생한 은비 양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성가정입양원의 운영책임자로서 입양 절차 중 관리 부실이의 결과적으로 은비의 죽음을 초래했다”며 “늦었지만 은비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은비의 생모를 비롯해 이번 일로 상처 입으신 모든 분께 용서를 구한다”고 고개 숙이기도 했다.


 

 

사목 철학은 저술 활동으로도 이어졌다. 2014년 펴낸 「21세기 신앙인에게」에서 그는 다섯 편의 논문을 통해 개인의 신앙이 사회와 환경, 그리고 우주 공동체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풀어냈다. 이 책은 신앙이 사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 책임과 생태적 감수성으로 확장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사순, 날마다 새로워지는 선물」에서는 사순 시기를 영적 회복과 내적 성찰의 기회로 바라보며, 신자들이 일상 속에서 회개와 변화를 실천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묵상과 길잡이를 제시했다.

 

 

특히 2022년 출간된 「우리는 주님의 생태 사도입니다」는 그가 오랫동안 준비해온 생태 관련 강론과 논문을 모은 책으로, 교회의 생태 교리를 정리하고 ‘우리 모두가 생태 사도’라는 선언을 선명하게 담았다. 그는 “지구라는 집에 불이 났다”는 비유로 현 상황의 긴급성을 알리며, 작은 생활 속 실천이 창조세계를 살리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길임을 설득력 있게 전했다. 이 책은 단순한 환경운동 권유가 아니라, 신앙인의 삶 전체를 생태적 회심으로 이끄는 제안이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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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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