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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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만 만날 수 없는 엄마, 막혀있는 알 권리

[우리 가운데 게시도다] 위기임신 보호출산제 시행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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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경찰서 실종수사팀 경찰관이 6월 12일 김태현(가명)씨의 DNA를 채취하고 있다. 김씨는 33년 전 자신을 버린 부모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DNA 등록, 기약 없는 기다림

지난 6월 어느 날. 이른 아침 회사원 김태현(가명, 35)씨가 평소보다 서둘러 나설 채비를 했다. 출근 전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들르기 위해서다. 실종수사팀에 들어선 김씨는 33년 전 자신을 버린 부모를 찾고 있다.

경찰관은 면봉으로 김씨의 입 안을 닦고, ‘DNA 감식 시료 채취카드’라고 적힌 종이에 색칠하듯 면봉을 문질렀다. “DNA가 일치하는 이가 있으면 연락이 갈 것”이라는 경찰관의 말과 함께 김씨의 DNA 채취가 10분 만에 끝났다. 다시 기약 없는 기다림만 남았다.

위기임산부의 익명 출산을 보장해 병원 밖 출산을 막고, 아기의 생명을 살리는 ‘위기임신 보호출산제’가 시행된 지 1년이 됐다. 각기 다른 이유로 어려움에 있는 임신부의 출산을 돕고, 아기의 생명을 국가가 나서 지키고자 만든 제도다. 하지만 현 제도 아래에서는 자녀가 성인이 되어 부모를 찾고자 할 때 반드시 ‘그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만 한다. 이를 통해 태어나 부모와 끊어진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이 땅에는 김씨처럼 평생 부모를 찾아다니지만, 신원은커녕 생존 여부도 모른 채 사는 이들이 지금도 많다. 2018년 설립된 고아권익연대에 부모를 찾아달라고 도움을 요청한 이들만도 현재 300명이다. 그러나 자신의 손을 놓은 부모와 핏줄이라도 찾으려는 자녀의 연결은 쉽지 않다.

보호출산제는 부모가 동의하지 않거나, 동의 여부를 확인할 수 없으면 부모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도록 한 제도다. 부모가 한 번 거절하면, 다시는 만날 수도 이름 석 자조차 알 수 없다. 보호출산제가 태아의 생명과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정작 자녀들의 알 권리는 보호받지 못하고, 또 한편으로 평생 부모를 알 수 없는 고아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부모를 모르는 삶을 산다는 것, 먼저 평생 부모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보호출산제를 바라봤다.


 



부모를 찾는 사람들 
부모의 존재와 성을 알고 싶어도
부모가 거절하면 모든 게 불가능 

독일의 신뢰출산제는  
16세 이후 부모 정보 열람 가능하게 
부모 찾을 기회 4번 주고 있어

무엇보다 필요한 것 
숙려기간 길수록 양육 선택 많아
원가족이 키우도록 다양한 제도 뒷받침    
 



뿌리를 찾습니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성장기 누구나 해볼 법한 고민이지만, 지천명이 지나도 이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한 이가 있다. 고아시설피해생존자인권신원연합 유진수(56) 대표는 성인이 되어 보육원을 나오자마자 어린 시절 자랐던 서울 성북동으로 향했다. 그나마 당시 기억이 조금 남아 있었던 덕분이었다.

유 대표는 서울 성북동에서 살다가 아버지가 민주화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어머니와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그곳 복도를 놀이터 삼아 뛰어다녔던 어린 유 대표는 형사 손에 이끌려 아동보호소에 맡겨졌다. “20살이 된 뒤 한동안은 어릴 때 살았던 동네를 하염없이 돌아다녔어요. 혹시 마주칠까 봐요. 부모님이 저를 알아볼 수도 있잖아요? 그게 제 일상이었죠.”
 
고아시설피해생존자인권신원연합 유진수 대표.

어릴 때 기억이 전혀 없어 “출발선에도 서지 못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진아(가명, 53)씨는 3살 때 경찰이 길거리에서 발견한 미아였다. 부모가 없는 게 당연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어느 날 아파서 학교를 조퇴하고 보육원으로 가는 길에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날 이씨는 자신이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고작 9살이었다.

부모에 대한 기억이 없는 이씨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최근 김태현씨처럼 경찰서에서 DNA 기록을 남겼다. 이마저도 부모 중 한 명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해서 DNA 기록이 있어야 대조가 가능하다. 이씨는 “부모님 성이라도 알고 싶다”며 “3년 전 유방암을 진단받아 투병하고 있는데, 죽기 전 소원이 있다면 그저 부모의 존재만이라도 아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의 모습은 앞으로 ‘보호출산제’로 태어난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동의 알 권리 침해’는 보호출산제의 가장 큰 맹점으로 꼽힌다. 이토록 애타게 부모를 찾는 이유에 대해 이들은 “내 뿌리를 찾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고아권익연대 조윤환 대표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려진 이들에게 ‘부모를 찾는다는 것’은 좋은 환경에 입양되는 걸로는 채워질 수 없는 삶의 지표와 같다”며 “이러한 간절함은 시간이 지난다고 절대 사그라지지 않고, 화산 속에 숨겨진 용암처럼 언제 터질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부모가 거절하면 다시는 서로 만날 수 없는 보호출산제에 대해서는 “보호 아동에게는 ‘사형선고’와 같다”고 일축했다.

실제 취재를 위해 만난 이들 대부분은 “보육원에 있을 때 부모가 죽은 줄로만 알았고, 다시는 부모를 만날 수 없다는 상실감에 극단적 선택도 여러 번 시도했다”고 전했다. 부모가 아직 살아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은 성인이 되어 자라온 보육원에서 자신의 서류를 떼면서부터다. 평생 부모를 애타게 찾는 이들은 “보호출산제가 ‘아동을 살리기 위한 제도’라는 미명 아래 사실은 ‘아동 유기’를 합법화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이 보호출산제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독일이 시행하는 ‘신뢰출산제’다.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의 연구 보고서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상 보호출산제에 관한 헌법적 검토’를 보면, 독일은 신뢰출산제로 태어난 아기가 16세가 되면 연방가족·시민사회업무청에 생모 정보가 담긴 혈통증서 열람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생모가 열람을 반대하면 연방가족·시민사회업무청은 생모와 소송을 통해 열람을 결정한다. 만약 연방가족·시민사회업무청이 패소해 열람이 불가할 경우, 신뢰출산제로 태어난 자녀는 다시 가정법원에 증서 열람에 대한 결정을 구하는 청구를 할 수 있다. 이 또한 기각 결정이 확정되면 3년 뒤 다시 청구가 가능하다. 사실상 부모를 찾을 기회가 ‘네 번’ 있는 것이다. 이는 부모가 ‘한 번’ 거절하면 신원을 알 수 없는 보호출산제와 가장 큰 차이로 꼽힌다.

국회입법조사처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이에 대해 “여성이 보호출산을 선택하는 이유는 익명이 보장돼서인데, 나중에 결국 실명이 드러날 수 있다면 다시금 병원 밖 출산이나 영아 유기·살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며 “신뢰출산제 또한 조심스럽게 접근해 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짧은 숙려 기간, 일주일

문제는 아기와 부모의 삶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보호출산제를 결정하는 데 주어지는 시간이 일주일뿐이라는 것이다. 생부의 책임과 권한을 간과한다는 점도 우려를 낳고 있는 만큼 익명 출산을 결정할 때엔 더욱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보호출산제의 본래 명칭인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에서는 여성이 출산한 날부터 최소 ‘7일 이상’ 아동을 직접 양육하기 위한 숙려 기간을 갖고, 이후부터 아동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조윤환 대표는 이에 대해서도 “아기를 생명이 아닌 상품으로 보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조 대표는 “저도 가정을 이뤄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부모 또한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애정도 쌓인다”며 “보육원과 입양 기관들도 아이가 어릴수록 가정에 입양이 잘 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보호출산제의 짧은 숙려 기간은 가정을 지킬 수 있도록 독려하기보다 아기를 하루 빨리 버리게끔 재촉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보호출산제 숙려 기간에 대한 우려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특히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나 원가정에서 자랄 수 있도록 설득하는 일을 하는 관련 상담기관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실정이다. 한 미혼부모기관장은 “보호출산과 양육을 고민하는 단계에서 출산 후 숙려 기간을 오래 가질수록 양육을 더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며 “엄마들은 목도 못 가누는 아기가 어느 순간 눈을 맞출 때 엄청난 모성애를 느끼는데, 최소 7일로 설정한 기간으로는 위기임산부에게 원가족 양육을 설득하기가 촉박하다”고 설명했다. 이 모성애는 아기를 직접 키우겠다고 다짐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짧은 숙려 기간을 조금이나마 개선하기 위해 그 기간을 ‘14일 이상’으로 늘리는 내용을 담은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지난해 말 국회에 발의되기도 했지만 계류 상태다.

협성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성정현 교수는 “출산 후 보호출산제를 선택할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일주일로 정한 것은 너무 짧다”며 “가능한 한 원가족이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다양한 육아 및 복지혜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숙려 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보호출산제 중앙상담지원기관인 아동권리보장원의 정익중 원장은 “보호출산제의 숙려 기간은 위기임산부가 아동을 직접 키울 것을 고려할 수 있도록 설정됐다는 점에서 연장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면서도 “아이가 입양되기 전까진 보호출산 철회가 가능하므로,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위기임산부들을 계속 설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에필로그, 위대하고 소중한

인터뷰를 마친 이진아씨가 먼지 덮인 일기장 한 권을 꺼내왔다. 그 속에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신이 결혼해 아기를 처음 가졌을 때 심경이 담겨 있었다.

‘나의 아기를 가졌다. 난 태어날 때 엄마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이제까지 살면서 너무 외로웠다. 고통스러웠고, 날 낳아준 그분을 원망했다.

그러나 이젠 내가 그 위치다. 난 내 뱃속의 아기를 너무나 사랑한다. 옛날엔 그분을 원망했지만, 내가 막상 아기를 갖고 보니 그분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열 달의 구역질·입덧·아픔을 나를 위해 참으셨으니 말이다. 그분의 몸을 빌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살고 있다. 그분을 보고 싶다.

난 가난에 쪼들려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내 아기는 아주 많은 사랑으로 키울 것이다. 내가 사랑에 굶주려 살았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소중한 것인 줄 알므로…’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 보호출산제 : 위기임산부가 익명으로 출산하고, 아동의 출생신고를 국가가 대신하는 제도(출생통보제)로, 2024년 7월 19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병원 밖 출산으로 인한 아동 유기나 산모·신생아 사망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됐으며, 임산부는 지역상담기관을 통해 가명과 관리번호로 의료기관에서 출산하거나 출산을 기록할 수 있다.


제도의 명(明) : 위기임산부의 익명 출산을 보장해 병원 밖 출산·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유령 아동·낙태 등을 방지해 여성과 아동의 생명 모두 보호.

제도의 암(暗) : 아동의 알 권리(부모 신원) 보장 미비, 생부의 알 권리 및 친권·양육권 침해, 이주 여성은 해당하지 않아 차별 논란, 장애 아동 양육 포기 조장 우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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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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