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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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이냐 입양이냐, 단 7일 만에 결정되는 아이의 운명

[우리 가운데 계시도다] 위기임신 보호출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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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임신부가 출산 후 출산 기록을 익명으로 처리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는 기간은 최소7일이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단 일주일. 위기임신부가 출산 후 출산 기록을 익명으로 처리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는 기간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위기임신 보호출산제 지역상담기관에서 상담을 받고 직접 아이를 키우기로 한 산모는 160명이다. 이들이 아기의 생명을 지켜 안전하게 출산하면서도 홀로 키우는 용기 있는 결정을 하게 된 배경을 좇아가 봤다. 엄마를 붙잡을 수 있는 시간 ‘7일 밤의 기적’이다.


입양 포기하고 아이 선택한 강씨

 “지금은 아기와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해요!” 강자윤(가명)씨는 보호출산을 하기 위해 강원지역 미혼부모기관인 마리아의 집에 들어갔다가 위기임신부 상담을 통해 아기를 직접 키우기로 마음을 바꿨다. 그는 미혼부모기관에 입소하자마자 아기에게 정을 주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보호출산으로 입양을 보낸다는 마음을 이미 굳게 먹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산 직전, 미혼부모기관장인 전순남(착한목자수녀회) 수녀가 당부했다. “낳고 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아기는 꼭 보러 가세요.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보셔야 해요!” 아기를 보고 싶다거나 모성이 느껴져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동안 마리아의 집에서 보살핌을 받았기에, 강씨는 최소한의 도리를 한다는 마음으로 아기를 만나러 갔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고 입원 마지막 날이 됐다. “아기가 눈을 떴는데, 저와 눈이 마주쳤어요. 그때 마음이 싱숭생숭했어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병실에 올라와서 계속 울었어요.”

산후조리원에서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마리아의 집으로 돌아와 보호출산제를 숙려하는 일주일 동안 상담을 받으면서 “아이가 좋은 부모님을 만나서 행복하게 컸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남겼다. 그러다 전 수녀의 한마디가 그의 마음을 울렸다. 강씨는 “수녀님께서 ‘엄마와 함께 있어야 아이가 정말 행복하지 않을까요?’라는 말을 하자마자 정말 심경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아기의 얼굴을 본 순간, ‘입양을 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엄마를 붙잡는 요인들

보호출산제를 고려하는 여성들이 24시간 상담받을 수 있는 위기임산부 지역상담기관은 전국에 16개가 있다. 이 중 절반이 가톨릭교회가 운영하고 있다. 경남지역상담기관인 생명터의 박형주 상담사는 “보호출산을 신청하러 오는 대부분은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며 “신청자들의 사정은 제각각이지만, 그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혼자만 겪는 일이 아니다’라는 말로 먼저 공감과 지지를 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남지역상담기관 성모의집 염영숙 상담사는 ‘원가족의 지지’를 강조했다. 염 상담사는 “처음에 베이비박스 유기를 고려하던 산모가 마지막 단계에선 결정을 바꿔 출생신고 후 기관에 들어왔고, 이후 가족의 지지를 바탕으로 원가정양육을 선택한 사례가 있다”며 “이를 통해 경제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의 지지가 미혼모가 양육을 결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실제 강자윤씨 또한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했을 때, 가족의 반대가 심했다. 그러나 강씨는 “위기임신부 상담을 받으면서 많은 용기와 응원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지금은 누구보다 가족이 아기를 너무나 예뻐해 사랑으로 키우고 있다. 강씨는 보호출산제를 고민하는 다른 엄마들에게도 전했다. “만약 그 당시 상담을 통해 용기와 힘을 얻지 못했다면, 아마 지금 제 옆에는 이렇게 예쁜 아이가 없지 않았을까요? 비록 제가 종교는 없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보호출산을 철회하고 아이를 키우겠다고 마음을 바꾼 게 하느님의 뜻이 아닐까 해요.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짧은 숙려 기간 

위기임산부 지역상담기관은 모두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에도 엄마가 아기에게 충분한 사랑을 줄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단 ‘일주일 엄마’라 하더라도, 그 속에서도 사랑은 피어난다. 다만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엄마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유정민(가명)씨는 집에서 출산을 했다. 갑작스러운 출산에 가족은 매우 놀랐고, 소문이 퍼지는 걸 우려한 유씨의 아버지는 멀리 생명터를 찾아 보호출산 신청 의지를 밝혔다. 조산원에서는 유씨와 아이가 같이 생활하도록 했다. 유씨는 매일 아이에게 편지를 쓰면서 일주일 을 넘겨 12일 동안 숙려기간을 가졌다. 아이를 입양 보내기로 한 날, 결국 유씨는 맨발로 따라 나와 눈물을 훔치며 다시 아이를 데려왔다.

박 상담사는 “일주일이라는 숙려기간은 위기임산부의 상황에 따라 길거나 짧게 느껴질 수 있다”면서도 “아이와 함께 숙려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해야 진정한 의미의 ‘심사숙고’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숙려기간이 탄력적으로 운영되거나 연장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보호출산제의 도입 취지는 단순히 위기임산부의 익명 출산을 보장하는 것을 넘어 여성 홀로 외롭고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상담사들과 ‘충분히’ 논의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궁극적으로는 “위기임산부가 아기를 혼자서라도 직접 키울 수 있도록 한부모 제도를 충실히 안내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허 조사관은 “한부모 제도에 대한 홍보가 부족하다”며 “한부모가 두려움 없이 아이를 혼자 잘 키울 수 있을 만큼 우리나라의 제도가 잘 정비돼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부모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도록 독려하는 방법은 한부모 가족 지원 제도를 두텁게 만드는 것뿐”이라며 “이는 물질적 지원을 포함해 한부모 가정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인식, 즉 우리나라에 팽배한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바로 ‘국가가 함께 키워주는 시스템’인 것이다.

허 조사관은 “한부모 가족에 대한 편견이 없고, 어떠한 가족 형태이든 누구나 권리를 보장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라면 위기임산부가 주눅 들거나 오명에 휩싸일 이유가 없다”며 “흔히 ‘한부모 가정의 자녀는 비행 청소년이 될 것’이라는 등의 편견이 있는데, 한부모라는 가족 형태가 불행의 씨앗이 아님을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받아 얻은 인간의 충만한 생명은 위대하며 측량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에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생명의 복음」에서 “모든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고, 사랑하며, 그것을 위해 봉사하십시오! 오직 이 방향에서만 여러분은 정의·개발·참된 자유·평화와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가톨릭교회가 생명을 보호하는 데 있어 국적과 종교에 관계없이 앞장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위기임산부와 그 아기를 보호한다는 점에서 시행된 보호출산제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어두운 이면을 지니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것이 참된 의미에서 ‘생명을 살리는’ 제도로 안착할 수 있도록 계속 머리를 맞대야 한다.

 박예슬 기자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


“보호출산제는 이 제도가 필요없는 사회를 꿈꾸며 도입됐습니다.”

위기임신 보호출산제 중앙상담지원기관인 아동권리보장원 정익중 원장은 역설적이게도 보호출산제에 대해 이 같이 표현했다. 정 원장은 “보호출산제와 관련해 나오는 우려들을 잘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정보 취약 계층인 위기임산부가 가장 적합한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와 상담을 제공하고, 위로와 격려를 전하며 아이를 직접 키우는 방향으로 마음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정 원장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위기임신 지역상담기관 상담사들의 역할”이라며 “제도 시행 1년을 돌아볼 때 위기임산부가 보호출산(올해 6월 기준 107명)보다 원가족양육(160명)을 훨씬 많이 선택한 것은 대단한 일이고, 이것은 지역상담기관의 노고 덕분”이라고 치하했다. “위기임산부 상담에 있어 원가족양육을 선택하도록 설득하는 것을 ‘제1원칙’으로 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전국 16개 지역상담기관 중 절반이 가톨릭 기관인 데 대해서는 “일부러 가톨릭 기관을 선정한 것은 아니지만, ‘위기임신부의 병원 밖 출산을 방지하고 아기를 살리자’는 제도 취지에 맞춰 출산지원시설이 지역상담기관으로 선정된 것 같다”고 전했다. 가톨릭 미혼부모기관은 아이와 엄마를 모두 ‘보호’하기 위해 위기임산부를 돕는 출산지원시설로 대부분 운영되고 있다.

정 원장은 특히 보호출산제 결정에 필요한 ‘일주일 이상’이라는 짧은 숙려 기간에는 “입양도 숙려 기간이 일주일이라 거기에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며 “개선될 필요가 있지만, 보호출산제로 태어난 아기가 입양되기 전까지 언제든 철회할 수 있다는 점도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아동의 알권리 침해’ 우려도 물어봤다. 정 원장은 “이 또한 매우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제도를 정비해나가는 과정에서 법원에서 부모의 신원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한다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현 제도에서는 보호출산제를 통해 태어난 아기가 성인이 되어 부모에 대한 정보 공개를 신청해도 그 부모가 한 번 거절하면 신원을 알 수 없다.

다만 정 원장은 “상대적으로 부모의 신원을 더욱 알 수 없는 베이비박스 유기보다는 국가에서 부모의 정보, 특히 엄마의 정보를 정확하게 수집해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도 개선의 여지가 있다”며 “보호출산제 시행에 있어 근본적인 고민은 제도가 잘 알려지지 않아 여전히 베이비박스 유기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아울러 정 원장은 “위기임신이라는 상황은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며 “사회에는 ‘축복이 동반되지 않은 임신과 출산’도 있고, 이러한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줄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좋은 공동체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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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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