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드 프랑스(?le-de-France, 파리와 그 주변의 수도권 지역을 포함하는 행정구역)의 하늘 높이 치솟은 랭스 대성당과 아미앵 대성당은 고딕 성당의 전성기를 이룬 대표적인 성당입니다. 하지만 이후에는 고딕 성당의 특징이었던 유기적인 첨단의 건축 구조술이 쇠퇴하고, 생트샤펠과 같이 낮은 높이의 건물에 스테인드글라스가 벽면을 가득 채운 장식 위주의 후기 양식이 나타났습니다.
어떤 양식이 정점에 오르고 나면 잠시 머뭇거리다 뒷걸음질로 내려올 때가 많습니다. 이때 생겨난 후기 양식은 어느 정도 그 양식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어렴풋하게나마 변화를 재촉합니다. 양식의 변화가 무 자르듯이 되지 않고 중첩되는 기간이 있다는 것인데, 그러는 사이에 후기 양식 안에는 새로운 씨앗이 뿌려집니다. 고딕 성당에서는 레요낭 양식과 플랑부아양 양식이 그런 경우입니다.
브라만테에서 시작된 전성기 르네상스 건축은 라파엘로에 이르러서 완성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앞선 시대의 양식처럼 르네상스 건축 양식에서도 로마 고전주의의 대오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소위 매너리즘이라고 부르는 양식의 등장을 말하는데, 여전히 건재한 르네상스와 새롭게 나타난 매너리즘 사이의 긴장 관계는 15세기에서 16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의 유럽 상황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이때 발생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1517년 루터가 95개 조항의 대사 명제를 발표하면서 촉발된 종교개혁입니다. 교회는 아비뇽 교황청 시대와 대이교를 겪으면서 영적인 공동체로서 지녀야 할 교회의 본질에서 멀어지고 가시적 공동체로서의 교회 모습으로 기울었습니다. 결국 바오로 3세 교황은 트리엔트 공의회를 개최하여 종교개혁에서 제기된 문제를 극복하고 교회를 개혁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이탈리아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 전쟁은 교황령과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 그리고 프랑스, 스페인, 신성로마제국 등의 서유럽 국가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동맹에 동맹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충돌한 전쟁입니다. 1494년 프랑스 왕 샤를 8세의 이탈리아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1499년 루이 12세의 롬바르디아 침략으로 이어졌고, 이후로도 이탈리아에서의 강대국 간의 세력 다툼은 1559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오랜 침탈의 과정에서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피폐해졌고 국력은 더욱 약해져 강대국의 대열에서 밀려났습니다.
콜럼버스와 아메리고 베스푸치에 의해서 아메리카 신대륙이 발견되고, 마젤란의 빅토리아호가 세계 일주를 성공한 시기도 이때인데, 그로써 유럽이 세상의 전부이고 중심이라는 세계관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더욱이 코페르니쿠스 신부의 지동설은 천문학 체계를 완전히 바꾸어놨고 인간이 사는 지구가 우주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는 시기에, 르네상스 건축 양식도 매너리즘 양식으로의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매너리즘이란 말은 부정적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은데, 예술 분야에서는 반복과 모방 그리고 그것에서 발생하는 진부함을 지칭하고, 일상에서는 단조로운 생활 리듬이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건축 분야에서도 매너리즘은 전성기 르네상스가 후기로 접어드는 시기에 로마 고전주의를 따르는 르네상스의 특징을 변질시킨 양식으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너리즘을 이끈 건축가들의 작품을 보면, 그들이 르네상스를 변질시킨 것이 아니라, 르네상스의 본질인 기하학과 비례로 정형화한 로마 고전주의를 건축가의 천재성과 독창성으로 변화시킨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변형(變形)이 변질(變質)인지 변화(變化)인지의 차인데, 아무튼 이 시대에 르네상스 건축이 한계에 다다른 것은 사실이고 건축가들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여야 했습니다. 매너리즘은 이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14~15세기에 고대 로마의 고전주의를 재현한 것이 르네상스라면, 16세기의 매너리즘은 르네상스가 재현한 로마 고전주의를 한 번 더 변화시켜 재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6세기의 예술가이자 미술사가인 조르조 바사리는 매너리즘(이탈리아어로 마니에리즈모)의 어원인 마니에라(Maniera, 방식)를 훌륭한 예술 작품이 갖는 조건으로 말하면서 16세기에 마니에라가 잘 실현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곧 매너리즘은 방식(스타일)을 잘 구현한 독창적인 양식인 것입니다.
건축 분야에서 매너리즘은 예술 분야의 전성기 르네상스 말기와 후기 르네상스에 해당하는 1520~1600년에 나타났습니다. 사실 건축사에서는 후기 르네상스라는 용어를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기의 양식이 르네상스의 흐름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건축 양식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매너리즘 시기의 건축 작품들을 면밀히 보면 반(反)고전주의적 경향만이 아니라 고전주의적 경향도 공존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매너리즘의 반고전주의는 앞에서 언급했던 16세기 유럽의 어둡고 혼란한 시대 상황에서 생겨난 현상입니다. 이 경향은 당시 개인이 겪은 소외에 대한 저항의 표출로써 매너리즘이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건축가들은 부정적 상황에 대한 반발심으로 자신의 설계에 소외와 저항의 메시지를 반영하였습니다. 그들은 르네상스와 마찬가지로 로마 고전주의의 요소들을 사용하였으나 규칙에 어긋나게 구성함으로써 어두운 사회로부터 겪게 되는 무력감을 표현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질서의 회복이라는 공동체적 움직임보다는 개인적 일탈이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발다사레 페루치와 줄리오 로마노, 미켈레 산미켈리, 안토니오 다 상갈로 일 조바네 등에서 이러한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사회적으로 불안정했던 로마나 만토바 등에서 나타난 반고전주의가 이탈리아 매너리즘의 주류는 아니었습니다. 이탈리아 북부와 로마의 팔라초, 빌라, 성당 건축에서는 여전히 로마 고전주의가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갈레초 알레시, 자코포 산소비노와 안드레아 팔라디오는 매너리즘에서 고전주의적 경향을 따르는 건축가에 해당합니다. 그들의 활약상이 새로운 극장에서 막을 올릴 것입니다.
글 _ 강한수 가롤로 신부(의정부교구 건축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