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 제267대 교황으로서 즉위 미사를 봉헌하며 보편 교회의 목자로서 ‘베드로 직무’를 공식 시작한 레오 14세 교황이 오는 8월 26일로 공식 즉위 100일을 맞는다. 1955년 9월 14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난 교황은 70번째 생일도 앞두고 있다. 교황 즉위 후 보여준 그의 행보는 향후 보편 교회의 방향과 시대적 과제에 대한 대응 방식 그리고 목자로서의 비전과 리더십을 가늠하게 한다.
교황은 즉위 미사 강론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맡긴 사명 두 가지는 ‘사랑’과 ‘일치’라고 밝힘으로써 첫 교황 베드로의 후계자인 자신도 그 사명을 수행할 것임을 천명했다. 분열의 상처를 치유하고 사랑의 길 위에서 일치된 교회를 이끌어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위 12년 동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을 비롯해 평화, 이주민, 환경 문제 등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 14억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 이미 존재하던 분열의 틈을 더욱 넓힌 측면도 있었다. 때문에 레오 14세 교황은 오늘의 가톨릭교회가 ‘통합의 지도자’(Unifying Leader)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레오 14세 교황이 전임 교황들을 그대로 닮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했던 말을 자주 인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그리고 성 바오로 6세 교황의 말도 인용하지만 레오 14세 교황은 자기만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전통적인 교황의 옷을 입었고, 여름휴가를 교황 별장인 카스텔 간돌포에서 보내는 등 전임자와는 다른 변화를 보여줬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거주한 것과 달리, 현재 리모델링 중인 교황청 사도궁에서 생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레오 14세 교황은 시노드적인 교회를 포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고, 가난한 이들과 환경, 평화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모두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했던 가치들이기도 하다.
레오 14세 교황의 그간 행보와 앞으로의 방향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그가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출신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예수회 배경과 카리스마를 아는 것이 필수적인 것과 같다.
레오 14세 교황은 5월 8일 교황으로 선출됐을 때 자신을 “성 아우구스티노의 아들”이라고 표현했고, 교황 선출 후 첫 달을 보내는 동안에도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을 자주 언급했다.
7월 28일부터 8월 3일까지 로마 일대에서 열린 ‘젊은이들의 희년’에서도 청년들에게 성 아우구스티노를 주제로 이야기했다. 교황이 교부 성 아우구스티노를 자주 언급하는 이유는 신자들의 시선을 그들의 주님이며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다시 향하도록 하려는 데 있다.
교황은 8월 2일 젊은이들의 희년 밤샘기도회에서 “오래전 성 아우구스티노는 오늘날처럼 기술적 발전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 깊은 곳의 욕망을 이해했다”며 “그 역시 불안정한 청년 시기를 보냈지만, 작은 것에 안주하지 않았고, 마음의 외침에 침묵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어떤 교부인지에 대해서는 “그는 실망시키지 않는 진리, 시들지 않는 아름다움을 추구했는데 어떻게 그것들을 발견하고, 어떻게 희망을 주는 진실된 우정을 찾았을까?”라고 물은 뒤 “자기 자신을 이미 찾고 있던 분을 발견함으로써, 곧 예수 그리스도를 찾음으로써”라고 답을 제시했다.
미국 출신 첫 교황이라는 점은 큰 주목을 받았으며, 그는 몇 가지 인상적인 미국 문화를 드러내 보였다. 예를 들어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카고 화이트 삭스 야구 모자를 쓰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시카고 피제리아(Chicago pizzeria) 피자를 직접 건네받는 모습 등이 있었다.
하지만 교황은 그가 오랫동안 사제 그리고 주교로 사목했던 페루 주민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7월 말에는 교황청에 찾아온 페루 대표단을 만났고, 교황청에는 페루 출신 요리사도 일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교황이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양쪽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며,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사목 경험이 앞으로 그의 결정과 관점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가을이 다가오면서 교황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공석이 된 교황청 주교부 장관 자리에 누구를 임명할지 주목된다. 아울러 사랑과 일치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가운데, 전통 라틴어 미사의 지위를 어떻게 다룰지도 관심사다.
이제 교황은 보편교회와의 ‘허니문 단계를 지나 사도직의 본격적인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그는 지난 100일 동안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사실과, 다른 이들 역시 그리스도를 사랑하도록 돕고자 한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