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하루동안 열지 않습니다.
2025년 8월 20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특별기고] 레오 14세 교황과 성 아우구스티노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8월 28일은 교회 쇄신의 원천으로 존경받는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이다. 올해는 특히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출신 첫 교황인 레오 14세의 즉위로 성인의 영성과 가르침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본지는 대구가톨릭대학교 최원오(빈첸시오) 교수의 특별기고를 통해 성 아우구스티노의 사상과 유산을 살피며, 이를 길잡이 삼아 보편교회를 이끄는 레오 14세 교황의 사목 정신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전한다.


 

5월 8일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 첫 모습을 드러낸 레오 14세 교황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나는 성 아우구스티노(354~430)의 아들이며, 아우구스띠노회 수도자입니다.” 그리고 미소 가득한 얼굴로 세상과 군중을 바라보며 성 아우구스티노의 유명한 문장을 외우듯 말했다. “여러분을 위해 나는 주교이지만, 여러분과 함께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설교」 340,1) 히포의 주교 성 아우구스티노가 자신의 주교 수품 기념일에 행한 강론의 한 대목이다. 이 뜻깊은 날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주교는 직무의 이름이지만 그리스도인은 은총의 이름이고, 주교는 위험한 이름이지만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이름”(「설교」 340,1)임을 기억했고, 새 교황은 교부의 이 말씀을 첫 마음에 새겼다. 

 

 

“여러분에게 우리는 목자이지만, 유일한 목자 아래서 우리는 여러분과 같은 양 떼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직무로 보면 우리는 여러분의 선생이지만, 유일한 스승 아래서 우리는 여러분의 동급생이며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시편 상해」 126,3)라고 늘 강조하던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정신은, 한평생 아우구스띠노회 수도자로 살아온 레오 14세 교황의 자의식이자 사목 지평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누구인가?


 

 

새 교황의 연설과 강론에서는 거의 빠짐없이 성 아우구스티노가 인용되고, 문장과 사목 표어에도 성인의 흔적이 생생하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고대의 모든 사상은 성 아우구스티노로 흘러들고, 후대의 모든 교의 전통은 성 아우구스티노에게서 흘러나온다고 했다.(성 바오로 6세 교황, 1970년 5월 4일 로마 성 아우구스티노 교부학 대학 개교식 연설 참조) 서방 그리스도교와 문화의 길은 성 아우구스티노의 히포 교구로 모여들고, 히포에서 뻗어나간다는 평가도 다르지 않다.(베네딕도 16세 교황, 2008년 1월 9일 일반 알현 강연 참조) 

 

 

“인류가 시작된 이래 성 아우구스티노처럼 탁월한 인간은 아무도 없거나 있더라도 극소수다”라는 비오 11세 교황(1857~1939)의 극찬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1920~2005)도 공감했다.(1986년 8월 28일 교황 교서 「히포의 아우구스띠노」 참조)

 

 

160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성 아우구스티노가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성 아우구스티노를 비롯한 교부들은 현대 교회 쇄신의 원동력이 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에 수많은 영감과 사목적 원천을 제공했다. 교부들은 성경의 원천과 맞닿은 ‘거룩한 전통’(聖傳)의 수맥이기 때문이다.

 

 

이 공의회가 끝나자 교부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한 성 바오로 6세 교황(1897~1978)은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에 교부학 연구소 설립과 운영을 맡겼고, 마침내 1970년에 성 바오로 6세 교황의 축복식으로 성 아우구스티노 교부학 대학이 문을 열었다. 레오 14세 교황이 2001년부터 2013년까지 총장으로 일한 곳이 바로 이 대학을 품은 아우구스띠노 수도원이고 그곳에서 가르치는 교부학 교수들이 동료 수도자들이다. 교회법을 전공한 레오 14세 교황이 페루 신학교에서 교회법과 교부학을 가르친 것도 이런 전통의 열매다.

 

 

교황 문장과 사목 표어

 

 

교황 문장에서 화살에 찔린 심장과 책은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의 표상이다. “당신께서는 당신 사랑으로 우리 심장에 화살을 쏘셨고, 우리는 속마음을 꿰뚫은 당신 말씀을 지니게 되었습니다”(「고백록」 9,2,3)라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고백을 형상화한 것이다. 교황의 사목 표어는 성인이 쓴 「시편 상해」 127장 3절에서 따온 것이다. 네 단어로 된 라틴어 문장은 얼핏 단순해 보인다. 직역하면 ‘그 한 분 안에서 하나(In illo Uno unum)’이다. 주교회의 번역실에서는 맥락을 고려하여 ‘한 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라고 옮겼다.

 

 

그러나 이 짧은 문장에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전체 그리스도(Totus Christus)’론이 함축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고 우리는 그 지체이지만, 그분은 부활 승천하신 뒤에도 이 세상의 시련과 유혹, 가난과 궁핍 속에서 교회가 겪고 있는 고통을 몸소 겪고 계신다. 머리이신 예수님은 천상 옥좌에서 쉬고 계신 것이 아니라, 지금도 당신 지체와 함께 수난 하시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인간과 연대하신다. 머리 따로 몸 따로, 그리스도 따로 그리스도인 따로가 아니다. 그분만 한 분이고 우리는 여럿인 게 아니라 ‘그리스도 한 분 안에서 우리도 하나’다. 이것이 레오 14세 교황이 선택한 사목 표어이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그러므로 머리이며 몸이신 그리스도(Christus caput et corpus)는 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교회!”라고 가르쳐 준 성인은 더 나아가 “우리가 그리스도!”라고 외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뿐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되었습니다!”(「요한 복음 강해」 21,8). 나, 너, 우리가 한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강조한 바 있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놀라운 성찰이다.(「평신도 그리스도인」 1,17 참조)

 

 

레오 14세 교황은 ‘우리 모두 한 그리스도!’라는 사목 지평으로 세상의 모든 형제와 가난하고 고통받는 지체들을 그리스도처럼 품어 안을 것이다.


 

 

교회 쇄신의 원천인 성 아우구스티노

 

 

성 아우구스티노는 가장 많은 문헌을 남긴 교부다. 그의 대표작 「고백록」은 현대인이 사랑하는 고전이 되었다. 그러나 성인은 고전 속 옛사람이 아니다. 그의 말과 글은 오래고도 새롭다. 예컨대,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형제의 예외적 불가피성을 한사코 포기하지 못하던 「가톨릭 교회 교리서」 2267항을 수정하여 “사형은 … 용납될 수 없다”고 분명하게 새겨 넣었다. 2018년의 일이다. 이 교리를 바로잡으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을 가장 폭넓게 인용했고 교부의 권위에 즐겨 기댔다.(회칙 「모든 형제들」 265항 참조)

 

 

레렝의 성 빈첸시오(445년경) 교부가 말한 대로 교의는 자라난다. 아이가 어른으로 커가듯 그렇게 교의는 자라나고 성숙한다. 그리스도교 최초의 사형폐지론자 락탄티우스(약 250~325) 교부를 비롯하여 성 아우구스티노 교부를 이 시대에 새롭게 소개하고 해석해 낸 프란치스코 교황 덕분에 교회는 더 성숙하고 복음적인 사형제 교리를 늦게야 지니게 되었다. 이렇듯 단순하면서도 방대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은 레오 14세 교황에게도 마르지 않는 교회 쇄신의 원천이 될 것이다.


 

 

글 _ 최원오 빈첸시오(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5-08-20

관련뉴스

말씀사탕2025. 8. 20

탈출 24장 3절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실행하겠습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