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안봉근의 이야기’는 1969년 가을 한 신문 기사로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10월 26일 자 한국일보에 안중근 의사를 뤼순 형무소로 찾아가 성사를 주고 미사를 봉헌한 빌렘 신부의 조카인 당시 73세 요세핀 비트만(Joséphine Witmann, 1896~1978) 부인과의 인터뷰 기사가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실렸다. 기사를 쓴 이는 특파원 정종식 기자였다. 기사 내용에 따르면 비트만 부인은 작은아버지 빌렘 신부가 프랑스로 돌아올 때 같이 온 안봉근이 자신의 집에서 지냈으며 그로부터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일흔이 넘은 그녀는 아직도 우리말로 숫자도 조금 세고 몇 마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안봉근의 고향 한국을 기억했다. 기자가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질 때 배웅나온 비트만 부인이 그의 손을 잡고 나직하게 “대한 만세”를 외쳤다는데 아마도 안봉근이 가르쳐 준 것이리라.
우연히 이 기사를 읽은 안봉근의 아들 안민생(安民生, 라우렌시오, 1911~1995)씨는 기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기자는 반갑게 비트만 부인의 주소를 알려주면서 그녀가 안봉근으로부터 받은 두꺼운 책을 보물처럼 소장하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그 책에는 “요세핀에게 드립니다”라는 안봉근의 글씨가 적혀 있다고도 했다. 노 부인은 안봉근을 잊지 않고 있으며 인터뷰 동안 아득한 회상에 잠기기도 했다고 한다. 정종식 기자는 이 발굴 기사로 제4회 독립신문기념상 국제 보도부문 장려상을 받았다.
빌렘 신부가 찍은 안봉근 가족 사진.
위 사진 뒷면의 갈색 글씨가 빌렘 신부의 친필이다. “나의 복사 요한과 그의 가족. 요한은 토마스의 사촌”
최초로 공개되는 안봉근의 사진
이후 안민생은 비트만 부인에게 편지를 보냈고 서신 왕래가 시작되었다. 비트만 부인은 편지를 보낼 때 자신과 동생 앙투아네트 홀터(Antoinette Hoelter, 1898~1977)가 간직하던 안봉근과 그의 가족 사진을 여러 장 보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로부터 한국 대구에 도착한 사진은 13장이고 편지는 13통, 엽서는 2장이었다.
“우리에게도, 라우렌시오(안민생)에게도 똑같이 소중한 사진들을 보냅니다. 당신이 그 사진을 받으면 기뻐하리라 생각하며 우리가 양보했어요.” 비트만 부인은 “옛 한국 친구의 아들과 손자들이 그 시대에서 살아남은 이제 몇 안 되는 우리 노인들에게 기꺼이 연락해주어 기쁘다”고 했다. 13통의 편지는 모두 서로를 궁금해하며 안부를 묻는 내용이다. 당시 수술을 앞두고 있던 안민생의 건강을 걱정하며 수술은 잘 되었는지, 간병할 사람은 있는지를 묻고 병원비에 도움이 될 소액의 돈을 보내고 싶다고도 했다(알자스 로렌 산업은행에서 발행한 송금 증명서도 있다).
사진 중에는 17세의 앙투아네트가 한복을 입고 있는 사진도 있었다. 비트만 부인은 사진 속 한복이 ‘안봉근의 선물’이었으며, 사진도 안봉근이 직접 촬영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삼촌과 같은 외방전교회 소속이고 한국 대전에서 사목하는 퀴니 신부를 아는지도 묻고, 신부의 소식을 알고 싶으면 서울대교구 주교인 김수환 추기경에게 물어보라고도 했다. 또 최석우 신부가 발굴한 ‘안중근의 최후 이야기’의 프랑스어 번역본을 퀴니 신부로부터 받아 감동적으로 읽었다는 내용도 있다. 안봉근과 한국에 관한 변함 없는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녀는 안민생의 부인이 황해도 청계동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는 매우 기뻐하면서 주변에 빌렘 신부를 기억하는 청계동 사람이 있는지도 물었다.
비트만 부인이 안봉근의 아들 안민생에게 보낸 편지(1970. 2. 25.)
빌렘 신부의 조카 요세핀(오른쪽)과 앙투아네트(1970년, 스트라스부르 비트만 부인의 집 정원)
안봉근이 선물한 한복을 입은 빌렘 신부의 조카 앙투아네트.
안봉근
편지·사진으로 남은 안봉근과 빌렘 신부 이야기
빌렘 신부의 후손과 안봉근의 후손이 직접 만난 적은 없다. 편지와 사진으로 서로를 확인하고 기뻐했다. “기명의 필체가 할아버지 (안봉근) 요한의 필체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똑 닮은 것 같아서 반가웠어요. 아무쪼록 기명도 할아버지가 지녔던 훌륭한 사람의 자질과 미덕을 모두 그대로 이어받았으면 좋겠어요.”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역사 속의 그 남자 ‘안봉근’의 흔적을 따라가 보니 격변하는 역사의 흐름 속에 흔들리면서도 희망을 향해 걸어간 그가 보였다. 안봉근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손을 잡아주었고 낯선 유럽에서 한국의 문화를 알리면서 그의 방식대로 독립을 외쳤다. 광복 80주년, 사진 속 안봉근은 그의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게 만들었다. 편지와 사진으로 남은 안봉근과 빌렘 신부 이야기는 그래서 더 애틋하고 고맙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