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길을 택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 ‘좁은 문’이다. 너무 많이 쓰여 오히려 표현의 탁월함이 사라진 어구 중 하나다. 그러나 이 표현의 시작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이번 주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좁은 문’은 은유의 절정이며 후대의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프랑스의 문호 앙드레 지드의 소설 「좁은 문」이다. 1909년 쓰인 이 소설에서 작가는 자신의 현실을 투영한다. 외사촌 누이 알리사를 짝사랑하는 제롬은 방학 때마다 그녀가 있는 삼촌 집에 가서 마음을 키운다. 그러나 알리사는 어머니의 자유분방한 행동으로 큰 상처를 입었으며, 주님과의 영적인 사랑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점점 그녀의 신앙이 깊어지며 보다 신실한 것만을 갈구하게 되며, 제롬은 주일 미사에서 알리사와 함께 들은 강론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마태 7,13-14)
제롬은 모든 괴로움과 슬픔을 넘어 하느님의 길에 이르듯이 노력한다면 알리사와의 사랑이 열매를 맺으리라 믿었지만, 그가 고백하자 알리사는 하느님 안에서 하나가 되자며 그의 구애를 뿌리친다. 고백에 실패하고 절망에 빠진 제롬은 군에 입대해 알리사를 단념하고 3년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오랜만에 다시 만났을 때 여전히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된 제롬은 알리사에게 다시 한 번 구애하지만, 이미 그녀는 스스로 지상의 사랑을 버리고 ‘좁은 문’을 거쳐 행복에 이르는 길을 걷고 있었다. 마지막 만남에서 조금이라도 기회가 있다면 수정 목걸이를 하고 와달라는 제롬의 요청도 그녀는 뿌리친다.
긴 시간이 지난 후 그를 짝사랑했던 알리사의 동생 줄리에트가 알리사가 요양원에서 숨졌다고 편지로 알린다. 알리사의 일기장에서 그녀 역시 제롬을 사랑했지만 하느님의 ‘좁은 문’을 걷고 싶은 의지에 부딪쳐 고민의 나날을 보낸 것을 알게 된다. “주여, 당신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길은 둘이서 나란히 걸어가기에 너무도 좁은 길입니다.”
스토리는 답답하게 전개되지만, 한번 책을 읽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빠져들게 된다. 순수한 믿음을 갈구하는 순백의 영혼이 세속의 큰 기쁨과 찬연한 주님 품에 안기고자 하는 욕망 사이에서 고뇌하는 것은 주님에게 모든 것을 바친 성직자들이 뼈저리게 고민했던 ‘좁은 문’이다.
앙드레 지드의 또 다른 소설인 「전원 교향악」 또한 신앙과 삶의 갈등에서 구원받으려는 처절함이 가득하다. 베토벤의 음악은 소설보다 덜 어둡고, 덜 비극적이다.
카를 뵘이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교향곡’
//youtu.be/DHJsjZFu89U?si=8IcEiRVUz4NV6mVs
작곡가 류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