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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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비우는 노년의 삶

한정란 (베로니카, 한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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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모두 직장 근처로 독립해 나가고, 네 식구가 살던 집에 이제 딱 절반인 부부 둘만 남으니 한동안은 집이 휑하고 너무 넓게 느껴졌다. 그러나 아이들이 떠난 공간이 다시 채워지는 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좁은 원룸에 사는 탓에 계절이 바뀔 때마다 교환해 가는 옷가지며, 쓸모를 찾지 못해 두고 간 물건들이 남아있고, 우리 부부가 욕심을 부려 새로 사거나 언젠가는 쓰겠지 하며 버리지 못한 물건들도 적지 않았다. 왜 공간은 늘 부족하기만 한 걸까?

마침 올해 초 한 학기 동안 안식년을 얻어, 서산에 있는 학교까지 오가는 수고와 수업, 행정업무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안식년을 어떻게 하면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며, 해외와 국내를 오가는 여행, 미뤄두었던 저서 집필작업,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지인들과의 만남 등 많은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여유로울 것 같았던 안식년의 시간은 그야말로 ‘순삭(순간 삭제)’되듯 지나가 버렸다. 왜 시간도 공간처럼 늘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걸까?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욕심’ 때문이 아닐까? 필요 이상으로 욕심을 부리고, 능력 이상으로 욕심을 내니 공간도 시간도 늘 부족한 것이다. 꼭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없어도 되는 물건들까지 욕심내다 보니, 주어진 공간을 초과하게 된다. 내 능력과 품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나 관계의 범위를 넘어 욕심을 부리다 보니, 시간에 쫓기게 된다. 해법은 간단하다. 욕심을 버리면 된다. 하지만 욕심을 버리는 일이 어디 그렇게 간단한가?

나이가 들수록 남은 인생의 시간이나 허락된 삶의 공간은 점점 줄어든다. 물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의 시간이 얼마인지, 앞으로 얼마나 더 남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노년은 삶의 절반을 지나 죽음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선 시간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나이가 노년이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면, 자연스레 마음이 조급해지고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미래보다는 ‘지금 이 순간’이 더 소중해진다. 「즐거운 어른」의 이옥선 작가는 “늙는다는 것은 불편함을 견디는 힘이 점점 약해진다는 뜻이다”라고 말한다. 노년에는 얼마 남지 않은 인생에서 가능하면 불편함은 빨리 해결해 버리고 즐거움과 편안함은 더 많이 누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조급하게 서두르고 욕심을 부린다고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다. 서두르다 보면 자다가도 이불킥할 후회만 늘어나고, 그나마 허락된 시간과 공간에는 더 빨리 과부하가 찾아올 것이다. 즉흥적으로 움직이고 당장의 불편을 피하기 위한 일들로만 시간을 채우다 보면, 정작 진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들이나 함께하고 싶었던 사람들과는 멀어질 수 있다. 당장의 편의를 위해 물건을 쌓아두다 보면, 눈앞에는 온갖 잡동사니만 쌓이게 될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면을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 남은 시간이 많을수록 채우는 것보다 잘 비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욕심을 내려놓고 시간도 공간도 잘 비워야 한다. 떠난 후에도 내가 머물던 자리가 깨끗하고 아름답도록, 부디 더러운 탐욕만 남지 않도록.



한정란 베로니카(한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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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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