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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가난해서 아프고, 아파서 더 가난해지는

임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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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6일 국립보건연구원은 2008~2021년 건강보험 자료를 토대로 13만 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30세 미만 2형 당뇨병 유병률이 인구 10만 명당 73.3명에서 270.4명으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저소득층 청소년의 발병 위험이 중·고소득층보다 최대 5배 높았다. 즉 당뇨병이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며, 건강 불평등이 구조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며 생겨난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건강의 양극화다. 한때 비만과 당뇨는 왕이나 부자의 병이었지만, 지금은 가난한 자의 병이다.

토마 피케티는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태생에 따라 사회적 계층이 결정되는 세습자본주의의 등장을 경고했다. 우리 사회에서도 부의 대물림이 일어나고 있고 그 이면에서는 가난과 질병이 대물림되고 있다. 이런 시대에 기회의 균등만으로 건강 불평등을 비롯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극복할 수는 없다. 가난해서 아프고, 아파서 더 가난해지는 이들과 그 자녀들은 설령 기회가 균등하게 있어도 그것을 잡을 수 없는 몸과 마음의 상태가 되어 있는 것이다.

개인의 건강은 유전·성별·연령과 같은 개인적 요인뿐 아니라 생활습관, 직업, 교육, 물리적 환경, 의료 서비스 접근성을 결정짓는 국가 의료체계 등 다양한 인자의 영향을 받아 결정된다. 생활습관과 환경, 의료서비스 이용 등은 소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이미 30년 전인 1995년 발표된 회칙 「생명의 복음」에서 빈곤과 인간 이하의 생활 조건, 노동자들이 이윤 추구의 도구로 취급당하는 굴욕적인 노동 조건을 생명에 대한 위협이라고 한 바 있는데, 건강 문제를 오롯이 개인의 책임이라 생각하는 시각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에 건강 불평등을 정의의 문제로,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7년 전 세계적 건강 불평등을 주제로 한 교황청 국제 학회에서 「새 의료인 헌장」을 인용하며 건강을 보호받을 권리는 정의와 관련되며 공동선과 연대의 원리에 따라 지켜져야 한다고 밝혔다. 물론 그 이전인 2013년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불평등은 사회 병폐의 뿌리이며 불평등의 구조적 원인에 맞서 싸움으로써 가난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이 세상의 문제들에 대한 어떠한 해결책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한 바 있다. 그러면서 이 싸움이 소수에게만 맡겨진 사명이 아니며, 다른 이를 “어떤 의미에서 나 자신과 하나”로 여겨 모두가 관심을 쏟고 연대하여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 공동체 차원에서 모든 사람의 삶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가짐 없이 구조만 바꾸면, 그 구조도 오래지 않아 부패하여 억압적이고 비효율적으로 될 뿐이란 경고도 잊지 않는다.

부의 양극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고, 인공지능 등 인간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줄 것이란 기대를 받으며 등장한 첨단 기술들은 오히려 양극화를 심화·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더 많은 사람이 구조적 불평등으로 건강 문제를 경험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런 전망을 마주한 지금, 불평등의 구조적 원인을 식별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고 모든 사람의 삶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가짐으로 구조적 불평등에 대항하는 일상의 연대 행위를 찾아 실천하는 것은 지금 곤경에 빠진 이웃을 위한 것이면서 결국 미래의 나 자신을 위한 일이 될 것이다.



임선희 마리아(가톨릭대 생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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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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