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는 어린 시절 즐겨 먹던 ‘달고나’가 나온다. ‘뽑기’라고도 불리던 이 간식은 설탕이 주재료이며 식소다를 첨가해 부풀게 한 후 납작하게 누른 다음 그 위에 별이나 우산 등의 모양을 새긴다. 한 번은 집에서 달고나를 만들려고 어머니 몰래 국자에다 설탕을 넣고선 가스 불에 달군 적이 있다. 그런데 설탕은 잘 녹지 않고 국자 위에서 톡톡 튀기만 했다. 아뿔싸! 국자 속에는 설탕이 아닌 소금이 들어가 있었다. 흰색 알갱이인 설탕과 소금이 비슷해 보여 착각한 것이다. 설탕의 녹는점은 185℃로 낮아서 가열하면 쉽게 녹아 액체 상태가 되지만 소금의 녹는점은 801℃로 높아서 쉽게 녹지 않는다.
설탕과 소금의 녹는점은 왜 다를까? 설탕(C12H22O11)은 탄소·수소·산소 원자가 서로 전자를 공유하며 형성된 공유결합 물질로 분자 간 결합력이 약해 녹는점이 낮아 열을 가하면 쉽게 녹는다. 하지만 소금(NaCl)은 양이온인 나트륨 이온과 음이온인 염화이온이 강한 정전기적 인력으로 결합한 이온결합 물질로 녹는점이 매우 높다.
주기율표에 있는 118개 원소들 중 75 정도는 나트륨 같은 금속 원소다. 금속 원소는 원자핵을 둘러싼 가장 바깥쪽 전자껍질에 있는 전자를 쉽게 버리고 전기적인 중성 상태에서 (+)성질을 가진 양이온이 되어 에너지 관점에서 더 안정한 상태가 된다. 그렇게 전자를 버리고 형성된 양이온은 전자를 얻은 음이온과 결합하여 새로운 물질을 형성하는데 비누의 주성분인 수산화나트륨(NaOH), 달고나를 만들 때 사용하는 식소다(탄산수소나트륨, NaHCO3), 제습제로 쓰이는 염화칼슘(CaCl2) 등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이온결합으로 형성된 물질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원소들은 가지고 있던 전자를 버릴 때 더 안정된다. 이것이 자연의 원리다. 버린다는 것은 비운다는 것이며 비웠을 때 비로소 새로운 것을 채우며 변화할 수 있다. 금속 원소들이 전자를 버리고 양이온이 형성되는 원리는 어찌 보면 ‘비워야 채워지고 버려야 얻는다’는 노자의 사상을 연상시킨다. 2500년 전 노자는 도덕경에서 ‘旣以爲人己愈有(기이위인기유유 : 남에게 베풀어 내 것이 생겨나고), 旣以與人己愈多(기이여인기유다 : 남과 나누어 내 것이 많아진다)’라고 했는데 노자는 이미 물질의 본성과 자연의 이치를 간파하고 있었던 것일까?
버리고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노자의 사상은 무소유를 강조한 불교와 에픽테토스 같은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의 사상에서도 볼 수 있다. 유형이든 무형이든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유효기간이 있는 물건을 한시적으로 관리하는 것과 같다.
부와 명예 그리고 사회적 지위 그 어떤 것을 소유하든 영원히 살 수 없는 인간에게 영원한 소유란 불가능하다.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영원히 소유하려 할 때 불행은 시작된다. 시대를 앞서간 미니멀리스트 노자에게서 그리고 무소유의 참 의미를 간파한 옛 현인들에게서 비우고 버리는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원자들의 화학결합을 통해 본 자연의 원리와 옛 현인들이 통찰한 비움과 버림의 의미를 되새겨보며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33)는 이번 주 복음 말씀을 묵상해 본다.
전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