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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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가 곧 삶입니다] 전국 성지 14회째 순례하는 김광식·최복순 씨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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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는 해마다 9월을 순교자 성월로 지내며, 순교자들의 신앙을 특별히 묵상하고 배우는 시간을 갖는다. 이 시기에 신자들이 가장 많이 실천하는 신앙 활동은 성지순례다. 순교자들과 신앙 선조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성지, 순교 사적지, 순례지는 교회의 뿌리이자 씨앗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순교자 성월을 맞아 “성지순례가 곧 삶”이라고 말하는 열성적인 신자들을 차례로 만나 본다. 
첫 번째 주인공은 주교회의 순교자현양과 성지순례사목위원회에서 발간한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에 수록된 167곳을 무려 13차례 완주하고 올해 안에 14번째 완주를 목표로 순례를 이어가고 있는 인천교구 가좌동본당 김광식(요셉·70)·최복순(안나·69) 씨 부부다.



아들의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


부부는 전국 성지를 순례하는 신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 인사다. 13차례 완주했다는 기록도 특별하지만, 이들 부부가 뇌병변 장애를 안고 있어 혼자서는 거동조차 힘든 큰아들 김병선(베드로) 씨와 언제나 함께 순례했다는 사연이 큰 감동을 줬기 때문이다. 


체구가 큰 아들을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가 차에 태우는 과정부터가 고난이었지만, 부부는 큰아들이 2020년 10월 2일 47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늘 동행했다. 


큰아들이 하늘나라에 가기 전까지 세 식구는 전국 성지를 8차례 완주했다. 9번째 순례에는 큰아들의 빈 자리를 최복순 씨 여동생 부부가 함께하며 발걸음을 이어갔다.


“몸이 불편한 아들 데리고 성지순례 다니느라 고생 많으셨을 텐데 이제 좀 편하지 않으세요?”라는 질문도 받는다. 최 씨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베드로와 함께했던 성지순례가 인간적으로나 육체적으로 10배, 100배 힘들었을지 모르지만, 정작 아들 없이 순례에 나서니 허무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부부는 9번째 순례부터는 늘 베드로의 영정사진을 꼭 지니고 길을 나선다. 최 씨는 “옆에서 부축해 줘야 걸을 수 있었던 베드로나 저희 부부는 모두 목숨을 걸겠다는 각오로 성지순례를 했다”며 “영정사진을 꼭 지니고 계속 순례를 이어가는 것도 처음 품었던 순교의 각오를 잃지 않으려는 뜻도 있다”고 밝혔다.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전국 성지를 13차례 완주했다는 말을 들으면 놀라는 신자들이 많다. 한 번 완주할 때 평균 이동 거리는 7000km. 현재 진행 중인 14번째 순례에서도 이미 100곳을 찾았으니, 지금까지의 총 이동거리는 10만km에 가깝다. 지구를 두 바퀴 반 도는 거리와 맞먹는다. 가끔 “성지순례 가서 도장만 찍고 오는 것이 아닌가”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김광식 씨는 “도장 찍는 것만이 목표라면 순례해야 할 아무 의미가 없지만, 도장을 찍음으로써 성지순례에 동기 부여가 되는 측면은 무시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한다. 


전국 성지를 완주하는 것 혹은 그 횟수는 애초부터 목표가 아니었다. 최 씨는 “성지라고 하면 신자들은 각 교구에서 일정 공간에 조성한 장소를 떠올리지만, 박해 시대 순교자들은 관헌의 눈을 피해 늘 걸어 다녔기 때문에 한국 땅 어디에나 순교자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기에 “성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성지로 조성이 됐건 안 됐건 우리 땅 어디나 성지라는 생각으로 순례한다”고도 했다. 2012년 9월 첫 완주 이후 13번이나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 역시 ‘성지는 곧 영적 고향’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최 씨는 “사람들이 명절에 고향에 가듯, 우리 부부는 성지가 고향이라는 생각으로 꾸준히 찾아가고 있다”며 “본당에서나 가정에서 신앙생활에 아무리 힘써도 영적으로 침체될 때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럴 때 순례하면 영적 에너지를 충만히 얻고 돌아온다”고 밝혔다.



성지순례가 주는 신앙의 신비


부부는 종합병동이라 할 만큼 성한 몸이 아니다. 개인택시 운전을 하던 김 씨는 2007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건강이 좋지 않아 평소에는 오전 중에만 생업으로 운전하고 오후에는 쉬는 생활을 했다. 최 씨 또한 뇌협착증으로 오래 고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신기하게 성지순례를 떠나는 날에는 새벽 4시30분에 집을 나와 밤 10시까지 하루에 1000km를 운전해도 피곤한 줄을 모른다.


김 씨는 “핸들은 내가 잡지만 성지순례 출발할 때는 하느님, 예수님, 성모님 세 분을 차 안에 모신다고 마음속으로 기도한다”면서 “운전을 업으로 해 온 내가 생각해도 신비롭기만 하다”고 말했다.


부부가 강조하는 더 큰 신앙의 신비가 있다. 바로 ‘전대사(全大赦) 양도’다. 매년 위령 성월인 11월 1~8일 고해성사, 미사 참례 등 조건을 지키면 전대사를 받을 수 있고, 이 전대사는 연옥 영혼에게 양도할 수 있다. 


위령 성월 외에도 교황청에서 성지순례를 포함해 일정 요건 하에 전대사를 부여하는 경우가 있다. 부부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불쌍한 연옥 영혼에게 전대사를 양도할 수 있는 은총이 얼마나 큰지 신자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성지순례를 함으로써 한 번이라도 더 연옥 영혼에게 전대사를 양도할 수 있는 기쁨과 은총은 영적으로 체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몇 번이라고 횟수를 정해 놓지는 않았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전국 성지순례를 계속할 것입니다.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작은 아들 김병철 바오로가 한국에 돌아오면 함께 성지순례를 하는 것이 소망입니다.”



[김광식·최복순 씨 부부 추천 성지] 우곡성지와 천호성지
부부에게 특별하지 않은 성지는 없었다. 모든 성지에서 순교자들의 뜨거운 신심을 느끼고 무릎 꿇고 기도했다. 그러나 특히 기억에 남고 신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성지가 있다. 안동교구 봉화 우곡성지다. 첫 완주 때, 냉담하던 작은아들이 형을 돕겠다고 순례에 동행했고, 완주를 완성한 마지막 성지였기 때문이다.  우곡성지에서 가족이 함께 미사드리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또한 우곡성지에 있는 수덕자(修德者) 홍유한(洪儒漢, 1726~1785) 선생 묘소를 볼 때면, 그의 삶을 본받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홍유한 선생이 실천했던 칠극(七克)의 정신은 오늘을 사는 신자들에게도 꼭 필요한 덕목이라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또 한 곳은 전주교구 완주 천호성지다. 천호성지에는 혹독한 박해와 교우들의 고단하지만 뜨거운 신앙생활의 역사가 배어 있다. 박해시기 교우촌이 형성된 장소인 만큼 매우 외진 곳이다. 역시 첫 번째 완주 때, 승용차에 기름이 바닥나 고생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신앙생활은 항상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부는 천호성지의 기억을 떠올릴 때면, “하늘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라는 마태오복음 25장 ‘열 처녀의 비유’를 생각하면서 기름을 미리 담아 가지고 있던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살기를 기도드린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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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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