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4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수원교구 성당 순례] 구산성지 성당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경기 하남시 망월동에 자리한 구산성지(전담 정종득 바오로 신부)는 서울·수원 등 수도권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는 순례지로 한국교회 초창기 순교사를 간직한 신앙의 터전이다. 특히 103위 한국 순교 성인 중 한 명인 김성우(안토니오) 성인이 태어나고 묻힌 자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박해 속에서도 “나는 천주교인이오.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을 것입니다”라 고백하며 굳은 믿음을 증거했다. 성지는 그의 신앙을 기억하며, 성당과 묘역 그리고 순례 공간을 통해 믿음을 지켜온 선조들과 함께 걷는 길로 순례자들을 초대한다.




믿음과 순교의 흔적이 살아 있는 길


성지는 김성우(안토니오) 성인과 8위 순교자가 태어나고 묻힌 자리로, 오랫동안 후손들이 교우촌을 이루며 살아온 신앙의 땅이다. 1980년 성지로 선포됐고, 2001년에는 하남시 향토유적 제4호로 등재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신도시 개발의 여파로 지금은 사방을 둘러싼 고층 아파트 숲이 성지를 감싸고 있지만, 그렇기에 개발의 파고 속에서도 지켜내야 할 순교 성지의 의미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성지 입구, 야트막한 동산을 닮은 정문이 순례자를 맞이한다. 납작한 기와를 층층이 쌓아 올린 구조는 구산(龜山)이라는 지명의 유래와 걸맞게 거북이 등을 형상화했다. 그 위에는 꽃과 십자가 모양의 도자기 조각이 알알이 박혀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자연스레 시선은 형형색색의 도자기 작품으로 둘러싸인 ‘우리의 도움이신 성모 마리아상’으로 향한다. 성모자상은 초대 주임 고(故) 길홍균(이냐시오) 신부가 꿈에서 본 성모님의 모습을 토대로, 고(故) 김세중(프란치스코) 화백이 조각해 1983년 봉헌한 특별한 작품이다.


성모상 왼편 묵주기도의 길에는 주님의 기도와 성모상을 의미하는 흰색과 푸른색 도자기 알이 항아리 위에 놓여 있다. 특히 항아리는 박해시대 신자들이 새우젓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간 삶을 기리기 위한 조형물이다. 성지 안에는 옹기 가마도 있다. 옹기는 신앙을 지키며 살아낸 신자들의 땀과 눈물을 품은 생활의 그릇이자, 그들의 굳은 믿음을 상징한다. 박해 속에서도 믿음의 삶을 이어간 신앙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다. 


오른편 길에는 고즈넉한 기와지붕의 ‘안당문(安當門)’이 서 있다. ‘안당’은 안토니오의 중국어 음역으로, 신앙의 길을 함께 걸어온 순교 성인들과 동행하는 관문이다. 문을 지나면 맞은편에는 순교자 묘역이 자리하며, 김성우 성인을 비롯해 여덟 순교자의 묘소가 진묘와 의묘 형태로 보존돼 있다.




형구의 창과 고요한 공간, 순례자를 품는 성당


성지 성당은 순교자들의 묘소 옆에 자리하고 있다. 길게 뻗은 구조의 성당 외벽에는 각기 다른 모양의 창들이 나 있다. 가까이 다가서면 단순한 장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창 하나하나가 박해시대에 쓰였던 형구와 형벌을 형상화한 것이다. 포승줄과 철편, 뜨거운 인두를 본뜬 화저창, 곤장을 모티브로 한 창 등 16가지 창은 신앙 선조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생히 전하며, 동시에 어떤 고문과 칼날도 순교자들의 믿음을 꺾지 못했음을 증언한다.


성당 벽은 층층이 쌓아 올린 기와로 이루어져 있어 마치 신앙의 세월이 켜켜이 담긴 듯한 인상을 준다. 입구에 놓인 기와에는 순례자들이 저마다의 기도 지향을 적어 봉헌할 수 있게 했는데, 이 기와들은 다시 성역화 작업에 사용되거나 성지 정문을 꾸미는 데 보태진다. 순례객의 손끝에서 시작된 작은 기도가 성당의 벽돌이 되고, 성지의 문을 세우는 재료가 되어 눈앞에 살아 있는 신앙의 흔적으로 남는 것이다.


벽돌과 나무 기둥이 주는 안정감 속에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은 기도와 묵상의 분위기를 더한다. 중앙 제대 위의 십자가와 성모상, 전통 회화 양식으로 그려진 순교자 초상화는 순례자들의 마음을 고요히 이끄는 신앙의 중심으로 살아 숨 쉰다.


성당 외부 벽면에는 서양 선교사로는 처음 조선에 입국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성 모방 신부의 청동 부조가 걸려 있다. 방인사제 양성과 조선 선교를 위해 목숨을 바친 모방 신부는 김성우(안토니오) 성인과도 깊은 인연을 맺었다. 달레 교회사에는 “1836년 모방 신부가 입국하자, 김성우는 자기 집에 작은 공소를 마련하고 여름에는 모방 신부를 모시며 우리말을 가르치고 전교를 도왔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성당 벽면에 새겨진 그 얼굴은, 선교와 순교의 길을 함께 걸었던 두 신앙 선조의 우정을 지금까지도 증언한다.




변경미 기자 bgm@catimes.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5-09-03

관련뉴스

말씀사탕2025. 9. 4

요한 13장 34절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