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고 난 후 가장 아쉬웠던 것 중의 하나는 악의 존재에 대한 나의 무지였다. 내 주변 사람 중 정말로 악의가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마흔이 넘어서였다. - 우리 부모님을 비롯한 형제자매 등 가족들은 아직도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러고도 괜찮은 삶을 사셨고, 또 살고 있기 때문이리라. - 사춘기 시절, 나를 그토록 매혹했던 가톨릭 교리들도 그랬다. 그리하여 내 삶은 어쩌면 엉망진창이 되었다.
우리 집안에서 제일 많이 들리는 말은 “그 사람이 나쁜 뜻으로야 그랬겠니?”였다. 이것처럼 무책임한 어른들의 충고가 또 있을까. 내가 악의 문제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가졌던 것은 냉담 중에 정신과 테라피를 받으면서였다. 그때 프로이트와 융과 빅터 프랭클을 지나자 한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났는데, 그가 미국의 유명한 작가이자 정신과 의사 스캇 펙이었다. 그의 출세작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여전히 그리고 쭉 훌륭한 책이지만, 「거짓의 사람들」은 내가 좀 깊은 교제를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꼭 권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다른 일 때문에 다시 이 책을 들추다가 나는 며칠 꼼짝 없이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이 책에서 그리스도교 신자인 펙은 “이 책은 위험한 책이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 책은 악의 심리학이며 악을 하나의 잘못된 상태 즉 병으로 치부하려는 시도를 담은 책이다. 여기서 말하는 악은 교도소에 가득 찬 그 사람들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말하자면 그는 현대의 바리사이들, 다시 말해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말이다. 그는 요즘처럼 나르시시즘이 유행하기 전에 이미 악을 나르시시즘이라고 규정했다.
“내가 악한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이 사람들의 가장 지배적인 특징은 나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책임 전가이다. … 자신의 잘못을 직면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을 공격한다. 그들의 문제는 그들이 자신의 그릇된 부분을 미워하지 않는 데 있다. 그들은 선해지려는 욕망은 눈곱만큼도 없으며 선해 보이려는 욕망은 불같이 강하다. 그들의 선함이란 가식과 위선의 수준에서 선함일 뿐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거짓이다. 그들이 “거짓의 사람들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가 지적하는 악한 이들은 사실 우리 수준에서 보면 그저 평범한 혹은 평균 이상의 사람들이다. 그중 큰아들이 자살한 부부가 있었다. 그리고 작은 아들마저 우울증에 걸린다. 이 부부는 그 후 작은 아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권총을 선물했는데, 그 권총은 바로 큰아들이 자신의 머리를 쏘아 죽은 바로 그 권총이었다.
그 부부와 면담 중 의사인 펙이 ‘왜 하필이면 작은 아들에게 그 권총을 주었느냐’고 묻자, 그 부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아 돈도 좀 쪼들린 상태였고 10대 아이들은 권총을 좋아하니까요” 등등의 말을 하다가 펙이 그게 아니라 그것이 어떤 의미인 줄 아느냐고 묻자, 그들은 반문한다.
“총기 반대론자이신가요?”
예전에 읽었을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이 구절 때문에 나는 나도 모르게 엷은 비명을 질렀다. 내가 저잣거리에 나가지 않는 것은 세상이 이런 사람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새삼 깨달아졌다. 교회 내에서라고 예외일까. 교만. 결국 왜 이 교만으로 인해 우리는 에덴을 잃었는지, 죄를 부르고 죽음을 가져왔는지, 내게는 계속되는 묵상의 숙제가 펼쳐진다. 덥다.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